책이 지겨운 순간이 왔다. 일정 기간을 두고 그런 순간이 정기적으로 찾아 온다.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이틀이나 사흘 정도 그렇다가 마는데, 대개는 책이 너무 좋아라고 속으로 방정을 너무 많이 떤 후에 그런 기분이 들곤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참 꾸준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해서 그런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보다 으....징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꾸준히 뭘 해야지 뭘 하고 싶다라고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조차 안한다. 이럴 때는 인터넷이고 스맛폰이고 책이고 좀 멀리하는 것이 수다. 며칠 좀 그러다 보면 다시 책이 좋아지니까.
얼마 전에 <적과 흑>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엔 <벨아미>를 읽었다. 헐...모파상이 이런 사람이었어? 사람은, 작가는, 고전은 참 적나라한 것 같다. 봐주지 않는다. 속됨을 어떻게 이렇게 얄쨜없이 드러냈는지. 작중 인물들에 나를 대입해보느라,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진이 다 빠졌다. 기분도 나빴다. 이래저래 대입할 수 있는 인물들이 많아서 그 속물스러움이 그 원초적인 열망 같은 것들이 너무 잘 들여다 보여서 짜증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열망 비슷한 것들, 다 버려버려야지. 추악했다. 추악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좍좍 쏟아지는 비를 보며 나를 죽였다. 그래,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떠나 오렴.
언니, <목로주점>재밌어. 이제 좀 소설 같은 소설을 읽는 것 같군. 이란 동생말에 현혹되어 원래 안 읽으려고 했던- 넘 길어서- <목로주점>을 손에 들고 말았다. 아, 뭐야, <목로주점>이 이런 소설이었어. 렘브란트나 고흐나 베르메르, 브뢰겔 그림 속의 색조나 그런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물들이 드글드글하는. 아, 징하다. 삶도, 사랑도, 사람도. 삶이라니, 사랑이라니, 사람이라니,.글자가 다 비슷한 것도 맘에 안든다. 사니까 사람이고 사랑하니까 사람이지. 이 바부탱아.
<목로주점1>을 읽고 <위대한 개츠비>로 건너뛰었다.제로베즈는 멋있다. 바보같고 허황되지만 인간미가 철철이다. <목로주점>을 읽으며 <레미제라블>의 영상이 자꾸 떠올랐다. 어두침침하고 현실적인. 암튼 <목로주점>이 싫어서가 아니라 <위대한 개츠비>가 급해서 다급하기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직 못 읽은 것 처럼 <위대한 개츠비>도 잘 안 읽혀서 늘 읽다가 만 소설이었다. 이번 참엔 꼭 읽고 넘어가야지 라는 마음에 <목로주점>을 중간에 끊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했다. 아...이건 또 뭐야. 이 물흐르는 듯한, 단정하고 아름다운 번역이라니...김영하작가는 정말 깍쟁이 같다. 얄미움이다. 절절..
<외투>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구로프, <목로주점>의 제르베즈, <벨아미>의 조르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위화, 어제 밤부터는 <바디무빙>의 김중혁까지 만나고 있는 중이다. 아, <눈 한 송이가 녹을 동안>의 나,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까지..권여선의 <이모>와 황정은의 <웃는 남자>도 있었네. 일주일 동안 내리 책 속의 인물들만 만났다. 오늘 부터는 현실의 사람도 만나러 가야지. 야나님이 구대회커피를 마시러 가는 날 나도 곁다리 껴야겠다. 더치커피 한 잔 온더락으로 마시고, 다시 책들에게 돌아와야지. 그래야지. 열망일랑은 버리고, 차고 찐하게 쓰디 쓰게 외로워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