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울쑥불쑥 다가 온 행운이라 준비 없이 경황 없이 떠난 길들이었지만 두고 두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드레스덴이다. 좁다란 엘베강을 낀 시내 안에 박물관 대여섯 군데와 교회, 공연장 쇼핑센터가 모여 있었던. 오래 되어 정확한 기억이 아닌데, 보석 박물관, 무기 박물관...이런 작은 규모의 박물관부터 으리으리했던 도자기 박물관. 무엇보다 도시 그 자체가 박물관의 분위기를 풍겼던 곳. 베르메르의 작은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당연히 미술관도 있었고....<제 5도살장>을 펼쳐 읽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읽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내가 <마더 나이트>라고 생각했던 내용이 <제 5도살장> 안에 있다. 음...기억이란 건 원래 왜곡을 포함하는 단어 인건지...
어제 뉴스에 삿포로에 눈폭탄이 내려서 항공기가 전면 결항되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 뉴스엔 오늘 밤부터 영동지방에 대설주의보. 눈 내리는 걸 보는 것도 아니고 눈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어쩐지 짐가방을 꾸려야 할 것 같은 설레임에 시달린다. 사실, 요즘 나는 여행 따윈 가고 싶지 않다. 드레스덴도 삿포로도 영동지방도 그 어디도 떠나고 싶어 지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어제 삿포로의 지붕위에 쌓인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의 두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내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가 몰려 올거라 한다. 한파에 기대어 정신을 좀 차려 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