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잘 살아야 겠다 고민하게 돼

친구가 중얼거린다. 자주 아니면 늘 이런 일로 고민하는 친구다.

무슨 소리야? 너는 존재 자체가 세상의 축복인걸? 그냥 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실실 웃으며 말하지만 마음 깊이 진심이다.

어쩌다 명절을 핑계대고 친구집엘 몰려들 갔다.

밑반찬이며 나물이랑 탕국으로 차려진 밥상을 받고 일어서려는데

주섬주섬 건네주는 책들.

마음에 드는 책들 골라가져.

나는 겉돈다. 그 나무 테이블에 책이 놓여지는 광경, 환호성을 안으로 삼키며

책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마음 자리가 마주 쳐다보기도 아깝게 예쁘고 소중하다.

외면하고 그 자리에 끼어들지 못한다. 다들 책을 기쁘게 찾아들었고, 내 몫은 없어도 좋았다.

그런데 덩그마니 놓인 이 책 한 권.

 

 

 

 

 

 

 

 

 

 

 

 

 

 

이 골목에 가득한 행복...이라니, 제목부터 맘에 들었다. 더구나 계동이다.

출간된지 오래 되었고, 요리 레시피가 있어 요리책인 느낌으로 보여졌나 보았다.

아님 넘 맘에 들어들 양보를 했나? 암튼 이게 왠 떡이냐.

 

계동은 친구 생일 파티를 한 태국 요리점이 있던 곳이다.

맥주 한잔에 튀긴 게요리를 맛있고 먹고 어둑실해진 골목길을 걸으며 얕은 탄성을 내 뱉던 곳.

서울에 이런 골목이 있었어?

서촌이나 북촌이 걷기 좋은 동네로 부상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고즈넉함을 앗아가 버렸다.

그래도 아직 서울에는 걸을만한 오래 된 골목길들이 있다. 종로3가 전철역에 이어져 있는 익선동 골목이 그렇고, 북촌 옆의 계동 골목이 그렇다.

 

오래 되었기에 버려두었다면 쇠락함 그 이상의 느낌을 주기 어렵겠지만, 요즈음의 골목들은

풍취를 그대로 살린 채 사람들이 들어가 복닥복닥 뭔가를 꾸리고 있다. 그 곳이 신기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온기가 퍼지고 그래서 골목엔 행복이 가득해져 버린 것이지도 모르겠다. 급부상한 골목들엔 상업성의 냄새가 코를 비리게 하는 곳도 있지만, 최근에 가 본 계동은 어쩌면 그 바람 마저도 한 번 지나가 평온을 찾은 그런 느낌이었다.

 

빨간 코트를 입고 나타나 어린 소녀는 떡볶이가 끓고 있는 시간 동안 만화책을 펼쳐보며 우직하게 기다린다. 그녀는 당당한 공짜 손님이다. 어떻게 그녀가 공짜 손님이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녀가 너무 당당히 냄비 앞에 서서 떡볶이를 기다렸고, 떡볶이를 담아주면 맛있게 먹었고, 인사를 꾸벅하고 갔기에 우리 사이에는 금전거래 같은 게 성립될 틈이 없었다. 역시 사람은 당당하고 자신 있어야 손해보지 않는다. 꼬마아가씨는 너무 당당했으므로 내가 그녀에게 선심을 베풀어 공짜 떡볶이를 주고 있다는 알량한 자비심 같은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했으니까.

 긴 겨울 노는 게 신물 났으므로 나는 이런 공짜 손님마저 반가웠다. 꼬마 손님들은 떡볶이 값을 치르고도 남을 생기 넘치는 기운을 나에게 주었으니까. 나에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나만의 최강 무기를 발견한 것으로 충분히 기뻤다. 104쪽

 

 이 부분을 읽으며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하하하. 유난히 컨디션이 나빴던 연휴의 끝에 이런 에피소드 하나가 삶의 생기를 북돋운다. <이 골목에 가득한 행복>은 사진가와 요리연구가인 부부가 계동 골목 한 귀퉁이에 차린 원테이블 카페 '카페 무이'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골목의 풍경과 사람을 담은 사진과 골목을 오고가는 또는 카페에 들러 그들만의 하루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따듯한 감성으로 담겨있다. 그냥 카페 이야기가 아니라 골목안의 사람들과 카페에 들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사이 사이에 그 모임에 맞는 그 계절에 어울리는 음료와 샌드위치와 요리 레시피가 촘촘하게 실려있다.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 내게로 온 책이지만, 다시 몇 년 후에 책장정리를 할 일이 있어도 나는 이 책을 내어놓지 않을 것 같다. 처음부터 묵은 느낌으로 내게 왔지만 새 책에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되는 그만한 존재감. 이 느낌 이대로 오래 가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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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느낌으로 좋았던, 읽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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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9-18 09:15   좋아요 2 | URL
저자가 긍정의 아이콘이네요.
빨간코트 꼬마 아가씨ㅎㅎ
명절 핑계로 친구 집에 우르르..캬!

하리 2016-09-18 09:59   좋아요 1 | URL
제목이 마음이 들어요!! 친구가 차려준 밥상도 좋고~!!

dada 2016-09-18 10:07   좋아요 1 | URL
새 책에 자리를 내주지 않아도 되는 책이라니- 궁금하네요. 계동의 그 골목도 궁금하네요. 카페무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요?

책읽는나무 2016-09-18 19:44   좋아요 1 | URL
너의 존재 자체가 축복!!!!
그냥 살기만 하면 된다.
이런말 듣는 친구분 행복하셨겠어요^^
저도 만나는 친구들에게 그리 말해줘야겠어요

요즘은 뭐랄까요?
옛친구를 가끔 만나면 괜스레 눈물이 찔끔!!! 가슴이 벅차곤 하더라구요
연인처럼 `사랑한다`라는 말들
신랑에겐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랑의 대화가 마구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ㅋㅋ

단발머리 2016-09-18 21:53   좋아요 1 | URL
아... 쑥님 친구분은 쑥님이 친구라서 너무 좋으시겠어요.
저도 제 친구들한테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요.
너는 존재 자체가 축복이야~~
그냥 살기만 하면 된단다~~ ㅎㅎ

북촌 옆이 계동인거죠~~~
저번달에 북촌 근처에 두 번이나 갔었는데, 다음에는 계동으로 가봐야겠어요.
즐거운 연휴셨어요? 컨디션도 다시 괜찮아지셨나요?
저는 그냥 저냥 그런 연휴를 보냈어요. 시댁도 친정도 가까워서요.
그냥 띵가띵가 했는데도 많이 피곤하더라구요. 왜 그럴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