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션展 - 세상을 뒤흔든 천재들
이명옥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몇 달전 TV에서 '미술'에 관한 다큐 5부작을 관심있게 본 기억이 있다. 모나리자 작품 ,앤디 워홀같이 내가 관심 있어하는 작가들에서부터 아트페어같은 약간은 전문적인 사람들만이 관심 있어할 세세한 미술의 모습들까지. 그 중에 나를 사로잡았던 그림 한 점은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침대 위에서 관객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단지, 당당함밖에 보지를 못했다. 그러나 1시간여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는 '올랭피아'를 알아버렸다.

이 책은 이런 센세이셔널한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과 시대상황을 뒷받침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시대에 꽤나 신선하고 유명했던 그림이나 행동들을 나에게 흥미롭게 보여주는 식이다. 3가지 섹션으로 나누어 그에 따른 작가들의 그림, 퍼포먼스, 그리고 왜 센세이션작들을 보여주는 지에 대한 작가의 끝없는 관찰의 결과이자 그들에 대한 찬사이다.

사실, 어떠한 작품을 볼 때에는 대중들의 눈이 있지만, 그 속에서도 빛나는 것은 나의 주관이다. 작품을 바라봄에 있어서 나의 상태에 따라 그 작품의 의도하는 바를 비슷하게 알아채는 것. 비슷하게라도 간파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일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그 시대에는 한없이 비평받고 내몰아졌던 작품들에 대해서 파악하기란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서는 한없이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여질만한 것들.

그렇지만, 나는 잘못 말했다. 이 시대에도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생소한 것들의 향연. 아주 즐거운 향연이지만, 속내를 파악하기에는 받아들이기에는 약간의 거부감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점은 이것이다. 지금에 와서 칭송받고 떠받드는 거의 모든 작품들은, 작품이 나올 그 당시에는 지나친 모욕과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왜?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는 그 점을 파악하여 시대상황에 걸맞는 예술 작품 보기를 권장하고 있다.

왜 에곤 실레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는지. 거리에 넘쳐나도록 흐르는 포르노의 물결, 인터넷에 10초마다 한 번씩은 볼 수 있는 음란한 것들.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측은함의 눈길을 건넸다. 작가와 소통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그 그림들이 그 시대에는 그렇게 비난받는 예술 작품이었을지는 몰랐다. 시대가 달랐다.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을 한 눈에, 시대상황과 접목해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만족한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이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간의 개척. 이 시대에도 분명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부감이 이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의 이단아, 데미안 허스트, 그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할 때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은 한 번씩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작가와 소통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것은 거부감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예술적인 신선함과 쓰레기같은 작품을 구별할 줄 아는 새로운 눈을 가지고 싶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재해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아량 정도를 가지고 싶다.

센세이션, 그것은 나의 우뇌에 한 번씩 자극을 가해주는 짜릿한 충격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그런 청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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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책과 함께 동봉되어 있는 CD를 가만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CD 플레이어 안에 넣었다. 그리고 play 버튼을 눌렀다. 내가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그와 나의 미국여행이 시작되었다. 

벼르고 벼르던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았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감성적이다. 그리고 그의 글이 나의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다. 언젠가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 여행에 대한 지론. 나의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여행이 어찌보면 그리 거창한 데에서만 만족감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홀연히 어딘가로, 그저 내가 익숙치 않은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을 현실로 되돌아 생각하여 떠나면 그만이다. 그치만 그 떠난다는 것은, 어느 것에나 발목 잡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것, 사소한 것 하나가 눈에 밟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지고 떠났고, 230일 동안의 미국 여행이라는 결과물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1월에 아무런 계획없이 프랑스와 런던을 돌아다닐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는데 그가 나를 더 높게 붕붕 뛰워준 셈이다.

사실, 책을 읽기전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상큼한 책 표지와 CD가 나의 감성을 충족시켜주기는 했지만, 왜인지 글을 읽으면 문장력이 별로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때로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셔줄 것만 같은, 가슴 속 저 밑에서부터 나를 울렁이게 만들 그 단어들의 나열을 찬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책을 통째로 보여주고만 싶은 그런 단어들의 조합. 

서점에 들렀을 때 같은 책을 두 권 사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어느 작가의 말.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사서 주고 싶었다. 나의 가슴 속 울림이 비슷한 그런 사람에게. 사실, 이 책은 어느 레스토랑의 위치나 전화번호, 아니면 긴 밤, 외로이 자야했던 그 흔한 호텔이나 모텔의 구체적인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아, 에세이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이 책은 그저 자기를 위한 여행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어주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던 셈이다. 

CD에 들어있는 노래를 들으며 그와 함께 여행을 되짚어 본다. 외로움의 끝은 어디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리고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의 울음, 그리고 옛 여자친구의 만남, 모르는 사람과의 아릿한 추억 등을 읽으며 함께 느끼고 호흡한다. 그저 책을 읽고 나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제프 버클리가 죽었다는 그 호수에 가서 여름이 되기 전 수영을 했다는 그가 장난스러웠고, 제프 버클리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가 읽었다는 <on the road>는 당장에 나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들어 있는 듯 싶었고.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 지금의 나와 같기에 한없이 동감했다. 고요한 소리에 몸을 실어 이리저리 가볍게 흩돌아다니는 나의 영혼과 닮아있어서 이 책이 한없이 파고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그를 만나고 싶었고, 여행을 하고 싶었고, 노래를 미친듯이 틀어놓고 Route 66을 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글을 계속 쓰다가는 나도 책 한 권을 낼 것만 같은 감성이지만, 그와 같은 소소한 느낌의 글을 쓸 재간이 없어 그만한다. 유명한 작가에게서 발견하는 멋있거나 뜻깊은 문장은, 그런대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하니까. 그치만 그 반대의 경우에서 보이는 마음을 울렁이게 만드는 글들은 한없이 아릿하고 또 아련하게 느껴진다. 딱, 그런 기분이다. 아, 나도 미국에 가면 에단호크를 만나러 그 카페에 하릴없이 앉아 있어야 겠다. 그가 쓴 책 The hottest state를 읽으며. 혹여 만나지 못한다면 나도 그처럼 쪽지를 하나 써놓고 떠나리. 너무 이상하려나.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녘에 꾼 꿈에 놀라 일어나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밀려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무슨 요일인지 중요하지 않은 당신의 게으른 어느 일요일,
모처럼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며칠 동안 익숙했던 길이 오늘따라 낯설어 보여 지도를 확인하게 되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도 모른다.
당신 옆에 잠들어 있는누군가를 보며 포근함을 느낀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고민해서 산 기념품을 들여다보며 A에게 줄까, B에게 줄까, C에게 줄까
고민하며 행복해하는 마음이 어쩌면 여행인지 모른다.
서랍을 정리하다 영수증 뭉치에 가려진 여권을 찾았을 때의 설렘,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문득 통장의 잔고를 떠올리다가 동시에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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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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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때, 아니 한동안 외국문학에 빠져 있었다. 우리 나라 말로 쓰여진, 번역되지 않은 우리나라 말로 쓰여진 글들이 왠지 읽기가 꺼려지고, 외국문학만이 대단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던 때였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어렸을 때 읽었던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유명하거나 잘 쓰여진 우리나라 소설은 접해본 적이 드물다. 그래서일까, <바람의 화원>.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터닝 포인트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전에 우리나라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난다. '노랑'이라는 단어에도 누르스름하다,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렇다,, 등등의 여러 단어를 영어로, 그리고 외국의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음이라는 그 이유. 화려하고 깊은 그 단어와 문장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그 이유를 절감한다. 단어와 문장으로 이끌어지는 이정명의 문장들을 읽으며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음을. 감탄해 마지 않았음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 그저 허구로 지어낸 인물이 아님에 그 실제에 대한 이야기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여하튼 실재에 있어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므로, 실재에 대한 것이 더 먼저여야 하겠다. 신윤복과 김홍도. 김홍도와 신윤복. 그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나의 뇌리에 떡 하니 박혀있는 화원. 책을 읽은 뒤로는 화가, 미술가 등의 단어보다는 화원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없다. 여하튼 책의 첫 장을 펼치기 전까지는 당연히 신윤복은 여자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남자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당연히 여자로 생각하고 김홍도와의 관계에 대한 상상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남자라니. 이제껏 생각해왔던 나의 선입견을 제대로 뒤엎는 대목이다. 그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색감들은 당연히 여자의 손으로 나오는 것이려니, 했다. 그렇게 배경에 대한 정리로 읽기 시작한 책의 내용은 신윤복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뒤엎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으면 얼굴 그림이 되고, 그리운 산이 있으면 산 그림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문득 얼굴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그립고, 산 그림을 보면 그 산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한문장, 한문장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김홍도가 신윤복에게 묻는다.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그 물음에 위와 같이 대답한 신윤복. 김홍도는 자신의 제자이기 이전에 그를 화원 대 화원으로서의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슬하에 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내치게 된 신윤복과의 이어지는 관계들. 후에 김홍도는 말하게 된다. 신윤복이 사실은 여자임을 알게 된 그 때. 신윤복이 언제 자신이 여자임을 알았냐고 묻는 대답에, 너를 본 처음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라고. 애절하고 애틋한 느낌의 둘 사이의 밀고 당김은 읽는 내내 아릿하기만 하였다.  
 
3대째 화원 집안인 신한평의 아들로서 천재가 될 야심을 가지고 있는 신윤복. 사실은 그 이름, 신윤복일 수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스승 김홍도. 일찍이 그 유별난,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아 신윤복을 감싸고 돌았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그 시대와는 맞지 않는 화풍을 그 누구도 알아주려 하지 않았다. 천하디 천한 춘화라고 비꼬는 양반들이 그득한 도화원에서 신윤복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천재는 천재를 알아 본다 하였을까. 바로 임금은 또 다른 천재였다. 임금의 어진을 그리게 되는 어진화사를 뽑는 자리에 나란히 김홍도와 신윤복이 선택되고 둘의 뛰어난 재능으로 어진을 완성하게 되지만 결과는 불보듯 뻔한 게 되어버렸다. 어진을 그리는 자리에서 임금은 부러 웃었으나 웃는 모습의 어진은 여태까지 있은 적이 없었고, 자세를 비스듬하게 한 것 등 어진을 깎아내리며 그 그림을 그린 자에게까지 그 비난이 쏟아지는 터에 신윤복은 도화서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러나, 주상의 아버지, 장헌세자. 어린 시절 뒤주속에 갇혀 죽어가던 그 장헌세자의 얼굴을 다시 그려달라는 주상의 은밀한 부탁. 임금이기는 하나 화원 하나 감싸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면서 신윤복에 대한 애정의 끈은 놓질 않는다. 이 때부터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시작된다. 또, 치밀하게. 장헌세자의 얼굴은 그렸던 대화원인 강수항의 죽음, 그 죽음을 목격한 자들로부터 범인의 초상화를 그린 신윤복의 친아버지, 서징의 죽음. 주상이 명했다. 장헌세자의 어진을 다시 그려달라고, 아니, 다시 찾아달라고.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이 책은 단지 어떤 사건의 추리, 그 속에서만의 재미가 있지 않다. 두 화원의 본질과 대화의 내용과 서로의 정에 있다. 그리고 그 둘이 실재했으며, 그리고 두 화원의 실재 그림을 소설 속에 녹여 낸 대단함에 있다. 아, 사건의 내용의 기막힘과 그 속에 따라 흐르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 그 위대했던 두 화원의 그림을 다시 되짚어보며, 다시 소설 속의 허구로 돌아간 그들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묘한 분위기, 그리고 사건. 그 모든 것들을 한 데 모아진 이 책을 읽으며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현실과 소설의 모호함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은 듯 했다. 그저, 어렴풋한 실재의 인물을 두고 쓴 내용이었다 해도 상당히 많은 것을 써내려가고 있을 텐데, 거기다가 두 인물이 화원이라니, 그들의 실재 그림이 허구 속에 들어가다니.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 감탄이라는 감정이 꽤 오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 침이다. 무언가 한가지 아쉬운 점이란 게 있을 법도 한데, 혹여 있었다 해도 그것들은 모두 다른 대단함에 의해서 꼬리를 감춘 듯 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화원에 대한 이야기, 그 속에서 피어난 이 모든 내용들을 다 허구라고 할 수는 없다. 종전에 읽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처럼. 모두다 허구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진실이 숨어있을 듯한 예감이랄까. 어느정도의 밑바탕을 가지고 읽어내려간 이 소설의 매력, 한 가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더 잔잔하게 휘몰아친다. 그리고 장헌세자의 어진을 둘러싼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을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바탕으로, 그 둘의 뛰어난 그림실력을 바탕으로 전개해 나간 것도 대단하다. 입술이 침이 마르지 않도록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의 대단함은 괜히 과장된 것이 아니다. 글로써 표현하는 것을 안타깝게도 생각하는 바이다. 한동안 후유증이 몸서리 칠 것이 두렵기도 하나, 위대한 두 화원을 소설속에서 숨소리가 들릴만큼 가깝게 만났던 그 시간들을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책의 이야기 중 신윤복의 대사처럼, "존재하는 대상은 실상이지만,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대상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빛을 받은 물체가 종이 위에 그림자로 비치듯, 실체가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투사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들은 내가 책을 읽는 내내의 느낌과 비슷했다. 실재는 존재하고 그것을 그림으로서 실체를 담아낼 수는 없다. 그저 그림자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 실체를 담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 대상의 혼을 단아냄으로써 가능하다는 신윤복의 말. 그렇다, 이 책은 혼을 글로써 담아냈다, 바람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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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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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고래와 창녀>가 생각이 난다. 고래 속에 파묻혀 있던 그녀. 

아릿한 느낌이 엄습해온다. 언제나 침묵을 지키는 아버지. 그리고 내 편인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의 배신. 발테르는 어머니도 함께 아버지를 욕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믿어왔던 것에 대한 배신. 발테르는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나는 배경음이었다고, 나는 저절로 열렸다가 닫히는 문이었고 삐걱이는 침대였고 갑작스러운 기침소리였고 재채기였다고, 자신은 그 모든 것이었다고. 후에 성인이 된 날 어머니가 선물해준 시계를 내려놓고 떠난다. 

"난 이제 더 이상 당신들의 시간을 살고 싶지 않아요. 내 시간을 원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갑갑했던 시간 속에서도 한줄기 싹트는 무언의 사랑이 있었다. 안드레아. 사랑보다 우정이 훨씬 더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둘은 서로를 생각한다, 기다리고 그리워한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진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한 숙명의 결과라기 보다 서로를 감당하기에, 아니 서로를 생각하기에 지나친 사랑이 만들어 낸 결과일까. 둘은 헤어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에 대한 생각의 합의점을 찾아 낼 운명에 다다르게 된다. 언제나 매순간 기억해내려 애써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 반대로 불현듯 스치듯이 기억이 나는 사람. 그러나 둘 중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것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발테르는 안드레아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용기가 나지 않았는가 보다. 안드레아에게서 한 줄기 빛인 편지가 오기까지 그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보면.

"평범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두 가지 있지. 하나는 예술이고 하나는 행동이야.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행동에는 어떤 종류의 혼란도 내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술보다 위에 있지. 이런 사실을 이해한 예술가는 랭보 한 사람뿐이었어. 그는 처음에 시를 쓰다가 아프리카로 가서 무기를 팔았지."

갑갑했던, 지옥같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함께였던 삶을 뿌리치고 나아갔던 세계는 발테르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 같더니 끝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리고 자아를 찾지 못해 헤매이고 서성이는 그 즈음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땅 속에 그저 묻혀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는 어떠한 동요도 일지 않는다. 아주 비릿한 성장통을 발테르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대가로 자신을 더 매몰차게 내던지는 것이었을지도. 그러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간 고향. 떨어질대로 떨어진 자신의 자존심과 성공에 대한 타락은 고향 가는 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듣게 된 말, "미안하다, 미안해." 발테르는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죽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동안 아버지를 증오하기만 했다는 데에 대한 후회감이었을까. 아니, 후회는 아니었을것이다. 발테르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없었을 뿐. 

집을 둘러보다가 안드레아의 편지를 발견해낸다. 여유롭지 못한 느낌의 난필의 편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오래된 친구, 어쩌면 한 평생을 통틀어 자신을 찾아줄 유일한 사람 안드레아를 만나러 갈 시간.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끝에 맞이하는 것은 친구의 무덤뿐이었다. 유품 중 발견한 노트에서 안드레아는 발테르에게 자신의 길고도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옆을 지키던 수녀와의 대화를 통해 발테르는 점점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가 된 마냥 자아를 찾아내려간다. 

언젠가 읽었던 사르트르의 <구토>. 그의 쉼없는 호흡, 문체의 그 호흡을 느끼고 사르트르, 그가 생각하는 모든 느낌, 기대, 행동 하나하나까지 글로 옮겨 놓은 그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구토가 일었었다. 이 책, 사르트르의 호흡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발테르, 그가 생각하는 하나하나를 글로 옮겨 내려간 문체. 그러나 그 속에서는 구토가 일지 않는다. 한 번쯤 겪어 보았음 직한, 자아에 대한 멀고도 험난한 길 찾기를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글을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하나하나 곱씹어 가며, 아니, 굳이 곱씹지 않아도 그저 읽어내려가는 동안 글 한 자, 한 자가 나의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기억되는 느낌.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이념이 꽤나 심오하다. 나는 발테르와 함께 호흡했고 일정 부분 이상 발테르의 머릿속을 함께 뛰어다니고 있었다. 발테르는 안드레아의 벗이었고, 나 또한 안드레아의 하나뿐인 친구였다. 침묵으로 한 온종일 일관했던 발테르의 아버지는 곧 나의 아버지 같았고, 생각속의 미칠듯한 동요 또한 내가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어지러운 느낌과 같았다. 함께 호흡한다. 그리고, 나는 발테르의 삶을 살았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 쉼없는 자아찾기, 나도 이제 시작이다. 

"그제야 나는 아주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삶이란 직선이 아니라 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원할 때까지 움직일 수 있지만 그 후 정확하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하나의 틈은 세상으로 우리를 내려 보내기 위해 열려 있었고 또 다른 틈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빨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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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폼페이. 사실 체르노빌 사건과의 이미지가 잠깐 겹친 나를 탓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도시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린 폼페이. 읽기 전에는 그저 스처 지나가듯 들어보기만 한 이 유명한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줄까, 아니면 그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뿐이었다. 그리고 폼페이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지식을 얻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방향으로의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이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이러한 사건을 다룬 이 책에 너무나 큰 논픽션을 기대했었나 보다. 기대했던 방향은 달랐지만, 책에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눈 앞에 그 당시의 펼쳐지고, 그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작가는 아주 미묘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작가의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노력, 그리고 관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대해 대단함을 느끼는 바이다.

4부로 나뉘어져, 화산 폭발 2,1전. 화산 폭발일, 그리고 마지막 폭발일까지 나열하고 있는 이야기. 어쩌면 짧은 시간의 집약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하루 24시간을 꼬박 설명하고 느낀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짧기만 할까, 아니면 길기만 할까. 폼페이 폭발이 일어나는 그 시간은 길기만 했다.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듯 하다. 도시에 물이 끊긴다. 그러나 수로의 순서대로 끊긴다면 폼페이도 같은 상황이어야 했다. 그러나 폼페이는 아니었다. 수상한 듯 여겨져 도시를, 아니 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파견된 아틸리우스, 수도기사. 폼페이로 달려가서 그 사건의 정황을 파헤치고 되고 그 속에서 속속들이 밝혀지게 되는 부정부패, 사건의 원인, 또 사랑. 어쩌면 이 책은 폼페이 화산 폭발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더불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그 속의 자세한 이야기, 정말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소재를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굳이 이 사건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만한 그런 설득력과 흥미를 갖춘 그런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치만 참혹했던 그 순간의 슬픔을 대신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느끼기도 했다. 왜 도시에 물이 끊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것을 파헤치러 가는 아틸리우스의 행동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거의 다 알아내어가는 과정 속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당시의, 그리고 화산 폭발 후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그저 놀라운 역사적 사건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그 사건의 의미나 참혹함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그것을 받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끌어당기는 매력은 방대한 정보에 있다. 각 장의 왼쪽 페이지에 소개되는 화산 폭발에 대한 정보와 배경지식. 화산 폭발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나타나는 징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해주며, 그리고 그 소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나도 꼭 폼페이에, 그 시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런 게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지루한 느낌 없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게 쓴다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꽤나 대단한 흡입력이라 생각이 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발견, 그리고 그 재발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관심과 흥미만으로도 이 책을 접하기는 꽤나 소중하다. 그러나 폼페이, 그 화산 폭발에 대한 사건의 참혹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무분별한 개발 등이 왜 더해지는지, 더해짐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미래의 사건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모래를 팠다. 그리고 그 순간 손가락으로 모래알을 꽉 움켜쥐었을 때처럼 모든 것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때 이 세상을 살았던 것들이나 건설되었던 것들은 모두 결국 돌멩이가 되어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에 쓸려간다는 것을... 그들 가운데 어떤 것도 발자국 하나, 기억 하나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해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을 것이고 그들의 뼈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다.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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