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책과 함께 동봉되어 있는 CD를 가만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CD 플레이어 안에 넣었다. 그리고 play 버튼을 눌렀다. 내가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그와 나의 미국여행이 시작되었다. 

벼르고 벼르던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았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감성적이다. 그리고 그의 글이 나의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다. 언젠가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 여행에 대한 지론. 나의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여행이 어찌보면 그리 거창한 데에서만 만족감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홀연히 어딘가로, 그저 내가 익숙치 않은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을 현실로 되돌아 생각하여 떠나면 그만이다. 그치만 그 떠난다는 것은, 어느 것에나 발목 잡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것, 사소한 것 하나가 눈에 밟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지고 떠났고, 230일 동안의 미국 여행이라는 결과물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1월에 아무런 계획없이 프랑스와 런던을 돌아다닐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는데 그가 나를 더 높게 붕붕 뛰워준 셈이다.

사실, 책을 읽기전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상큼한 책 표지와 CD가 나의 감성을 충족시켜주기는 했지만, 왜인지 글을 읽으면 문장력이 별로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때로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셔줄 것만 같은, 가슴 속 저 밑에서부터 나를 울렁이게 만들 그 단어들의 나열을 찬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책을 통째로 보여주고만 싶은 그런 단어들의 조합. 

서점에 들렀을 때 같은 책을 두 권 사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어느 작가의 말.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사서 주고 싶었다. 나의 가슴 속 울림이 비슷한 그런 사람에게. 사실, 이 책은 어느 레스토랑의 위치나 전화번호, 아니면 긴 밤, 외로이 자야했던 그 흔한 호텔이나 모텔의 구체적인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아, 에세이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이 책은 그저 자기를 위한 여행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어주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던 셈이다. 

CD에 들어있는 노래를 들으며 그와 함께 여행을 되짚어 본다. 외로움의 끝은 어디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리고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의 울음, 그리고 옛 여자친구의 만남, 모르는 사람과의 아릿한 추억 등을 읽으며 함께 느끼고 호흡한다. 그저 책을 읽고 나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제프 버클리가 죽었다는 그 호수에 가서 여름이 되기 전 수영을 했다는 그가 장난스러웠고, 제프 버클리가 미친 듯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가 읽었다는 <on the road>는 당장에 나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들어 있는 듯 싶었고.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 지금의 나와 같기에 한없이 동감했다. 고요한 소리에 몸을 실어 이리저리 가볍게 흩돌아다니는 나의 영혼과 닮아있어서 이 책이 한없이 파고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그를 만나고 싶었고, 여행을 하고 싶었고, 노래를 미친듯이 틀어놓고 Route 66을 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글을 계속 쓰다가는 나도 책 한 권을 낼 것만 같은 감성이지만, 그와 같은 소소한 느낌의 글을 쓸 재간이 없어 그만한다. 유명한 작가에게서 발견하는 멋있거나 뜻깊은 문장은, 그런대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하니까. 그치만 그 반대의 경우에서 보이는 마음을 울렁이게 만드는 글들은 한없이 아릿하고 또 아련하게 느껴진다. 딱, 그런 기분이다. 아, 나도 미국에 가면 에단호크를 만나러 그 카페에 하릴없이 앉아 있어야 겠다. 그가 쓴 책 The hottest state를 읽으며. 혹여 만나지 못한다면 나도 그처럼 쪽지를 하나 써놓고 떠나리. 너무 이상하려나.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녘에 꾼 꿈에 놀라 일어나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밀려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무슨 요일인지 중요하지 않은 당신의 게으른 어느 일요일,
모처럼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며칠 동안 익숙했던 길이 오늘따라 낯설어 보여 지도를 확인하게 되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도 모른다.
당신 옆에 잠들어 있는누군가를 보며 포근함을 느낀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고민해서 산 기념품을 들여다보며 A에게 줄까, B에게 줄까, C에게 줄까
고민하며 행복해하는 마음이 어쩌면 여행인지 모른다.
서랍을 정리하다 영수증 뭉치에 가려진 여권을 찾았을 때의 설렘,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문득 통장의 잔고를 떠올리다가 동시에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쩌면 그게 여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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