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 시즌 3 엘링(Elling) 3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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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아메리칸 스플렌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등을 보면서 사회속의 looser들이지만 나, 그리고 내 주변의 모습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자신들이 별로 쓸모없다고 느끼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쳐지길 무료한 삶을 보내는 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에는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에서는 그림을 잘 그렸고 <아메리칸 스플렌더>에서는 코믹북을 히트시킨다. 나름대로 자기의 할일들을 찾아가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비록 주류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희망은 없었는데 갑자기 비춰진 불빛으로 세상이 달리보이는 그들이.

엘링 시즌 3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책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읽는 내내 시즌 1,2를 먼저 읽어보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키엘과 엘링의 과거 이야기가 궁금했다. 시즌 2에서는 오슬로 시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가게 된 요양원의 생활, 그리고 이 책 시즌 3에서는 요양원 생활을 청산하고 오슬로 시에서 파견된 프랑크의 감시 아래 둘의 독립 이야기이다. 무뚝뚝하지만 할 일은 하는 키엘, 전화선 너머에 누가 있는지 가늠할 수 없어 전화 받는 것 조차 두려워 하는 엘링. 그 둘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키엘이 간간이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사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외출이 없는 둘은 집에서 폰섹스 하기를 즐긴다. 그치만 매달 오슬로 시에서 나오는 생활 보조금을 전화비에 다 써버리고는 이제 그 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서서히 사회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계획을 짜게 된다. 권위적인 프랑크의 권유에 의해서 둘은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처음 도시 탐험을 시작한다. 낯선 집의 문을 두드려 자신들이 키울 고양이를 데려오기, 그리고 동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켜먹기. 키엘과 엘링이 너무 좋아하는 그레이비 소스가 곁들여진 베이컨 요리를 시키고는 음식이 너무 맛이 있자 단골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단골식당이 생기는 건 영화속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둘에게도 그런 단골식당이 생긴다는 것을 의아해하고 신기해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윗집의 여자가 위험에 처한 것을 도와 준 계기로 키엘은 그 여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고, 데이트 때문에 토라진 엘링은 시 낭송회를 가게 된다. 전에 단골 식당으로 정하려 했던 그 곳에서 만난 노인이 시 낭송회에도 온 것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친구라는 것을 사귀게 된다. 알폰스 요르겐센. 키엘, 엘링, 레이둔과 그의 뱃속의 아이, 그리고 알폰스. 이 네 명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알폰스의 창고에 처박혀 있는 뷰익을 키엘이 고치게 되고 그 차를 타고 별장으로 여행을 가는 모습, 무엇보다 엘링이 갑자기 쓰게 된 시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익명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기도 하다. 

언제부터 사회는 머리가 똑똑한 사람과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을 나누고 무시하고 바라보게 되었을까.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존재는 아니더라도 주목받지 못하고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저그런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일가. 비난적인 목소리가 아닌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키엘과 엘링은 전체를 바라보았을 때는 별볼일 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속속들이 바라다 보게 되면 진지하고 위대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엘링의 시는 정말 아름다웠고 키엘이 누군가를 도와주는 모습과 모든 것을 제대로 고치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왜 주목받지 못하는 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이지만 이내 그만둔다. 그들은 그저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들끼리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어울리니까. 

영화, 책 중에서 이런 캐릭터들을 언제나 사랑스럽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신문에서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우리의 평범한 모습들. 키엘과 엘링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고 내가 엘링이라면 키엘은 내 친구와 같았다. 소박하고 재미난 그들의 일상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이 책의 모든 시즌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키엘과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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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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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무엇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자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조차, 나중에는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오지 않을까. 의아해하면서도 동시에 두렵다. 내 머릿속에 그리고 책상 위에 휘갈겨 쓴 메모지에 써있는 글자조차 없어져버릴까봐. 내가 메모를 했다는 그 자체도 잊어버리게 될까봐.

아버지의 실종, 그리고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물건이던 크세사노 황금 상, 그것을 받치고 있던 밑동까지 훔쳐갔다는 누명을 쓴 아버지. 하지만 남매, 엄밀히 말하면 쌍둥이인 제시카와 올리버는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의 추궁, 아버지인 토마스 폴락이 어디에 갔는지 물어보지만 그 둘은 아버지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어쨋든 자신들의 아버지가 있었고 그 아버지가 현재 누명을 쓰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고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소중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을 것만 같은 궤짝을 열어본다. 그 곳에는 엄마의 빨간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머리핀들, 그리고 가죽으로 고급스럽게 싸여진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노트를 펼쳐보았더니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일기장 안에서 발견된 이야기들은 아버지에 대한 음모와 연구를 했던 내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버지의 실종과 누명에 대한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생각하고 아버지가 일했던 박물관으로 찾아갔다. 누명을 쓰고 좌천된 경비원으로서 일했던 박물관으로. 그곳에서 박물관 관장을 만나게 되고, 꺼림칙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장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 이슈타르 문. 일기장을 토대로 그 곳이라면 무언가 일이 일어날 듯 했고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려 들어가려 시도했다. 그리고 동생인 올리버가 사라진다.

올리버가 사라짐을 통해서, 그리고 제시카가 완전히 자기 동생에 대한 일을 잊어버렸다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생에 대한 어제의 기억을 잊었다기 보다는 동생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기억. 박물관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이리암이라는 여자와 함께 제시카는 사라진 아버지와 동생 올리버 찾기를 시작한다. 해석하지 못한 쐐기 문자와 그 문자가 사라져가고 주위의 모든 기억과 메모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껴가면서.

박물관이라는 어쩌면 신비한 공간속에서 사람이 사라져버리고 이 모든 일들조차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이상한 일로 남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누가 훔쳐가지 않은 이상 그저 증발해버렸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기억에 의존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수많은 의문점들과 함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이 책은 읽는 내내 흥미롭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무한대라고 하지만 그 상상력을 100%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존재이다. 그저 현실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그 반대의 생각이 가능해진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가 있는거지. 머릿속은 정말로 무한한하고 투명한 공간이 가득하고 그 속에서 작가는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박물관, 그리고 일상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아주 구체적이고 신비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갑자기 떠오르는 노래를 기억하려고 책상 위에 있는 종이에 아무렇게나 적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종이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리고 "어제 여기에 뭐라고 적었었는데...."라는 기억조차 날아가버렸다. 나는 다시 번뜩이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틀전의 모습으로 되돌려져 있다. 나는 그렇게 계속 뒤로가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곤 달력의 시간뿐인 것일까. 어떻게 보면 섬뜩한 소재를 가지고 약간은 동화같은 모습으로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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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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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조제와 헤어지고 난 뒤 츠네오는 갑자기 길가에 눈물을 묻는다.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별을 예감했던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영화는 나에게 한없이 아릿함을 준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이름 조제, 그리고 쿠미코는 말했다. 사강이라는 작가의 책을 보면 조제라는 여자주인공이 나온다고, 그게 마음이 들어서 조제라는 이름을 쓴다고, 그리고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 달 후, 일 년 후>. 절판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영화 속 조제처럼 나도 헌책방을 기웃거려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 지 오래. 이렇게 다시 책이 나와주니 고맙고 반갑다. 영화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거예요.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사랑이 언제부터 그렇게 덧없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혼란스러웠던가. 하지만 나는 사랑을 모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어떠한 것도 내 식대로 정의내려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이 사강의 책을 읽는 동안 이유없는 씁쓸함과 안도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을. 누구나에게 똑같이 느껴지는 것은 없듯이 사랑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에게 넌지시 던져 주는 물음. 그리고 간결한 대답, 그게 다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나에게 이 책을 읽게끔 해주었다면, 읽는 내내 떠오르는 영화는 <클로저(Closer)>이다. 4명의 남녀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과 배신, 불신과 믿음 결국에는 다시 되돌아감 등을 통해서 알아가게 되는 약간은 복잡한 서로간의 감정들. 그 속에서 사랑을 말한다. 어쨋든 덧없음과 동시에 서로의 사랑의 상관성을 알아가게 되는 그 영화.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몰랐었다. 그저 왜 서로 배신을 하고 이 여자와 사랑을 하다가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고, 그리고 결국에는 왜 처음의 여자로 되돌아가는지. 그럴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영화를 더 보면 볼수록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조제와 자크, 그리고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 베아트리스와 알랭, 그리고 알랭의 조카 에두아르.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 알래의 아내 파니. 그 모든 사람들이 서로 얽혀있다. 아, 그리고 베아트리스가 매력을 느끼게 되는 제작자 졸리오까지. 여러 사람들이 얽혀 있어서 처음에는 왜 이렇게 복잡하기만 한건지, 라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사람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부터는 그들의 사랑과 믿음에 주목하게 된다. 니콜이 아내이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너무나 사랑하는 조제에게만 눈길을 주게 되는 베르나르, 조카와 삼촌이 같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워하며 극복해나가는 과정. 그 모든것들이 사랑의 과정이 아닐까.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한 단어이기 때문에 한 가지 감정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사랑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사랑을 시작하고 그리고 이별하게 되고, 그 속에 담겨진 수많은 일들, 배신 또는 증오, 다시 사랑함 등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다. 그래서일까. 끝을 모르겠는 사랑 앞에서 누구나 다 무릎을 꿇고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 게. 하지만 결국에는 사랑, 그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이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만 하고 있다.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게 어쩌면 '사랑'의 과정이듯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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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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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책을 접한 지 6개월만이다. 서점을 둘러보다가 흥미로운 책이다 싶어 친구에게 선물해 준 책, <구해줘>. 너무나 흡입력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뒤늦게 그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하나의 영화같았다, 기욤 뮈소의 책은. 영화의 스틸컷들을 분할시켜 놓은 듯한 그의 책은 한 번 잡고는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책이란 게 끝을 보기 전에 한 두 번은 지칠 법도 한데 그의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밀려오는 잠의 기운을 이겨내고 싶어 안달 난 사람같이 만드는 기욤 뮈소의 책, 두 번째다.

 

<구해줘>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고. 그게 어찌 나만 하는 생각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독자 모두가 그런 생각을 품에 안고 책을 읽었을 테고 그 바램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듯 하다. 그만큼 리드미컬한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방식이 영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뜻이다. 시간을 넘나들고 연관성이 없을 것 같던 이야기들이 끝내는 퍼즐을 완성하듯이 딱 들어맞는 하나의 연결이 되어버리니까.

 

라일라가 실종됐다. 그의 아빠인 마크, 엄마 니콜. 그리고 지나치게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마크와 함께 나누었던 친구 커너. 끝내는 마크와 커너 둘 다 정신과 의사로서 성공하게 되지만, 마크 딸이 실종 된 후 5년동안 행방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이 없어졌는데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며 집을 나간 마크는 지하철과 뒷골목에 붙들어 사는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인 라일라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딸을 발견했다는 곳은 5년 전 딸을 잃어버렸던 그 마트 앞. 아이러니하게 돌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커너의 앞에 불현듯 나타난 에비. 딸을 데리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크와 만나게 되는 앨리슨. 그 세 사람의 묘한 인연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치닫는다.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 과거로 다시 파고드는 전개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보여지는 그대로가 다 인줄 알고 시작한 이야기 속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셈이 되니까. 그리고 꼬리를 무는 의문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 일이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 파헤쳐나가는 듯한 전개는 다시 한 번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읽는 내내 그저 한 편의 영화같다, 는 말만 되풀이하게 되는 아쉬움도 남아있다. 현실적이지 않고 왜인지 꾸며낸 것만 같은 소설의 장점을 한껏 살렸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언젠가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만큼 현실적인 것은 없다고. 꾸며냈다고는 하나, 현실의 한 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글들은 다시 뒷걸음질쳐보면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만큼. 작가는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책의 첫 머리에 이러한 문구를 적어놓았다.


“현실의 부당함을, 현실이 인간의 갈망.욕구.꿈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소설만한 것은 없다.”

 

그 속에서 나는 현실을 본다. 소설 속에서 현실을 보게 되고 나는 현실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간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나면 나는 실제 있었던 일의 연속인 것 마냥 이야기를 마음 속에 두고 살아간다. 어쩌면 나중에 나에게도 그러한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는 불안 반, 기대 반의 마음을 가지고. 그만큼 정말 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 글일수록 더 현실적이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p.315
때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대단치 않은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결정, 한 번의 기회, 한 가닥의 가느다란 선......

 

p.317
두 사람의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찰나의 시간, 망설임, 한 번의 기회, 한 가닥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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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의 섬 - 올리버 색스가 들려주는 아주 특별하고 매혹적인 섬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마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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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이 작가의 이름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때문에 알게 되었다. 비록 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꽤나 관심이 가던 차에 이 책 <색맹의 섬>이 나에게로 왔다.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는 몰라도, 겉표지부터 매혹적인 수채화 그림 때문에 픽션을 기대했었나보다. 색맹의 섬 이라는 미지의 섬을 모험하고 그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약간의 동화와 같은 이야기. 그렇지만 내 생각을 제대로 뒤집어 버렸다. 이 책은 사실 2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색맹의 섬', 그리고 '소철섬'. 이 두 섬을 탐험하면서 색맹이라는 약간은 불편한 병이 왜 지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지, 그리고 파킨슨 병이라는 게 소철섬의 곳곳에 펼쳐져 있는 소철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에 대한 약간은 가벼운 논문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일반인인 내가 읽기에는 꽤나 전문적인 것들이 많이 실려있다.

그러나 이 책을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은, 좀전에도 말했듯이 질병과 그 지역의 특정관계 등, 위험요소에 대해 분석해 나감과 동시에 그것을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전문적인 정보와 그리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섬을 찾아나가보자, 라는 취지로 시작된 여행 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 그 중에서도 질병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과 그 지역의 생소한 모습들까지도 여행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책의 곳곳에 그려져 있는 수채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싱그럽게 한다. 대충 휘갈겨 그린 듯한 펜그림이지만 그 그림 위에 물을 듬뿍 적신 물감으로 채색을 한 그림들과 함께 보고 있으면 나도 괌이라는 섬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책이라는 것이 전에는 그저 글솜씨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게 다였지만, 점점 이 매체가 발전함에 따라서 책을 보는 독자를 위한 배려가 많아진 듯 하다. 글로써는 어려운 그림들을 구석구석에 나열해놓음으로써 책의 내용에 더욱더 깊이 빠져들을 수가 있었다.

올리버 색스, 의학계 전문가이면서 이렇게 글까지 쓸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느 한 쪽이 기울어지면 보나마나 한 것이 되어버리니까. 의학계 지식이 많은 사람이 글까지 잘 쓸 수 있다면 보다 쉽게, 보다 흥미롭게 독자들을 통해서 전문적인 지식이나 연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테니까. 이러한 작가를 환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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