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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폼페이. 사실 체르노빌 사건과의 이미지가 잠깐 겹친 나를 탓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도시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린 폼페이. 읽기 전에는 그저 스처 지나가듯 들어보기만 한 이 유명한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줄까, 아니면 그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뿐이었다. 그리고 폼페이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지식을 얻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방향으로의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이 아무리 픽션이라 해도 이러한 사건을 다룬 이 책에 너무나 큰 논픽션을 기대했었나 보다. 기대했던 방향은 달랐지만, 책에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눈 앞에 그 당시의 펼쳐지고, 그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작가는 아주 미묘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작가의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노력, 그리고 관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대해 대단함을 느끼는 바이다.
4부로 나뉘어져, 화산 폭발 2,1전. 화산 폭발일, 그리고 마지막 폭발일까지 나열하고 있는 이야기. 어쩌면 짧은 시간의 집약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하루 24시간을 꼬박 설명하고 느낀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짧기만 할까, 아니면 길기만 할까. 폼페이 폭발이 일어나는 그 시간은 길기만 했다.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듯 하다. 도시에 물이 끊긴다. 그러나 수로의 순서대로 끊긴다면 폼페이도 같은 상황이어야 했다. 그러나 폼페이는 아니었다. 수상한 듯 여겨져 도시를, 아니 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파견된 아틸리우스, 수도기사. 폼페이로 달려가서 그 사건의 정황을 파헤치고 되고 그 속에서 속속들이 밝혀지게 되는 부정부패, 사건의 원인, 또 사랑. 어쩌면 이 책은 폼페이 화산 폭발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더불어,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그 속의 자세한 이야기, 정말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소재를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굳이 이 사건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만한 그런 설득력과 흥미를 갖춘 그런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치만 참혹했던 그 순간의 슬픔을 대신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느끼기도 했다. 왜 도시에 물이 끊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것을 파헤치러 가는 아틸리우스의 행동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거의 다 알아내어가는 과정 속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당시의, 그리고 화산 폭발 후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그저 놀라운 역사적 사건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그 사건의 의미나 참혹함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그것을 받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끌어당기는 매력은 방대한 정보에 있다. 각 장의 왼쪽 페이지에 소개되는 화산 폭발에 대한 정보와 배경지식. 화산 폭발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나타나는 징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해주며, 그리고 그 소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나도 꼭 폼페이에, 그 시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런 게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지루한 느낌 없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게 쓴다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꽤나 대단한 흡입력이라 생각이 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발견, 그리고 그 재발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관심과 흥미만으로도 이 책을 접하기는 꽤나 소중하다. 그러나 폼페이, 그 화산 폭발에 대한 사건의 참혹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무분별한 개발 등이 왜 더해지는지, 더해짐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미래의 사건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모래를 팠다. 그리고 그 순간 손가락으로 모래알을 꽉 움켜쥐었을 때처럼 모든 것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때 이 세상을 살았던 것들이나 건설되었던 것들은 모두 결국 돌멩이가 되어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에 쓸려간다는 것을... 그들 가운데 어떤 것도 발자국 하나, 기억 하나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해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을 것이고 그들의 뼈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다. (p.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