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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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것을 이루는 사회적인 측면, 사회학이라는 이름아래 우리가 한 번쯤, 아니 어쩌면 끊임없이 고찰해보아야 하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둘레와 그 굴레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복잡한 체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한 번쯤은 아프게 꼬집어 보아야 할 만한 그것. 괴짜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이 책 속에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되려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그런 경험이 담겨있다.  

연구실을 박차고 사회속으로, 우리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작가가 경험한 것들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일상 속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어쩌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듯이 아주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다양성이라는 측면과 상대성이라는 기준을 놓고 볼 때 그리 먼 것은 아니다. 한 평생 살아가면서 나의 환경이 무난하게 흘러 그저 살아왔던 대로 매일매일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삶이 단순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갈 것들이었으면 애초에 노력이나 희망, 좌절 따위의 감정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과 영화를 통해, 흘러가는 리듬의 음악을 통해 그리고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기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열망과 필요성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일을 접했을 때를 위한 작은 대비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대비라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 단계보다 하나 더 위를 바라보는 지혜의 측면에서도.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것들을 접할 때의 충격과 반응하는 속도는 그때마다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빈민촌의 생활에 대해,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비견하여 그들의 생각은 어떠할 지,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라고 함은 그들을 제외한 우리들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들마저 포함한 사회, 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가장 큰 쟁점은 이것이다. 왜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을 벗어나기 힘들까. 그저 다 제쳐두어, 발판을 힘껏 밟아 뛰쳐 올라가기가 힘든 걸까. 아마, 이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라는 소심한 반발.  

기대해왔던 대로, 노력한 대로의 성과만이 얻어진다면 그건 현실이 아닐 것이며 영화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픽션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라고 해서 픽션만이 전부인 것이 아니다. 그저, 영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의 편집, 감독이 의도한 대로의 스토리, 촬영감독이 찍어버린 결과물, 그러한 환경이 영화를 픽션 속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논픽션을 토대로 만든 영화도 스크린에 비추어내는 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 속에 픽션이 들어차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학이라는 측면을 바라볼 때, 우리는 픽션 속에 살고 있는 논픽션의 존재들이다. 하염없이 떠오르는 공상 속의 존재들이 현실속에 내비춰, 결국 이루어질 때부터 우리는 그때까지의 공상이 망상이 아니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대치 않았던 일이 일어날 때의 희열, 그리고 바라보는 이의 의외성 등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이다. 논픽션을 뛰어넘자.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지 않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이며, 그 모든 것을 우리가 기대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길 바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회속의 존재가 아니라, 내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보다는 언제나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의지. 내가 오늘 한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사회가 당장은 변하지 않을 지 몰라도, 매일같이 한발자국을 반복적으로 내딛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을 때까지. 바로 그 때에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획한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그래서 지금 사회속으로 한 발 내딛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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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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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그녀가 쓴 소설의 영화 <리플리>를 보면서 한껏 감성에 젖어있던 내가 아닌가! 그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의 글을 이렇게 우연히 접해보게 된 건 그것조차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가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첫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이미 글자에, 그리고 글자가 이루어 낸 글들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정말 벅차다.  

단편에 단편. 하지만, 그 단편들을 읽어내면서 책을 잡고 있던 손이 놓아지기를 바랬다. 그만큼 나도 혐오스러웠으니까. 작가라는 편견상, 아니 글을 쓰는 편견상 나는 왜 남성 작가이기를 바랬나. 그리고 여성 혐오에 관한 이야기라는 글자를 본 순간 왜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혐오스러운, 그렇지만 내내 나 자신이 생각은 하고 있었던 그런 추악한 모습의, 어쩌면 여자라는 본성의 느낌을 지니고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여자라서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를텐데. 그만큼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첫번째 단편인 "손"의 첫 문장을 보았을 때부터. 하지만 나도 그녀도 여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어쩌면 반대의 느낌상 남자로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그런 이야기였기에. 

바람속에서 서서히, 서서히는 정도가 더했다. 컬트 문학이란 이런거구나. 그리고 컬트 영화에 한껏 고취되어 있었던 나는 그 강도를 슬며시 편안하게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아, 라는 감탄과 함께 비탄에 젖어있는 내가 느낄 수 있던 한가지는, 그래, 내 주변의 이야기구나. 아니, 나의 이야기, 어쩌면 내 상상속에서나 할 수 있었던 그런 이야기들이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삶은 다양하고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곧, 나일 수도 있다는 그런 착각 속에서 읽어내리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한시름 놓아버린 후의 읽는 과정에서는 태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살면서 행해지는 이야기들, 뉴스 속에서나 떠들어대는 경악할만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꼭 흥미를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깨달아버릴 경지에만 다다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깨달아버릴 수가 없었기에, 그저 읽고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영상으로 보여지는 미학을 글로서 옮겨버렸기에 그 강도는 지나쳤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지나침.  

느껴봐, 들리지 않니? 라고 속삭일것만 같은 작가의 외침에 나는 그냥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만 하고 내보이지 않는 나의 속내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생각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글로서 읽고 말았다. 느끼는 게 많았을지도 모르고, 읽고 나서 던져버릴 지도 모르는 편협한 축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만 감정은 언제나 독보적인 것이고 독특함이라는 성격의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의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놓아둔다. 내 삶이 찌들어버렸을 때, 아니면 너무나 기쁠 때, 한번쯤 들춰보고 싶은 이야기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말한다. 이제 느낄 때도 되지 않았니? , 너의 생각과 현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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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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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 어쩌면 마술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중남미 작가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 그의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는 것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보르헤스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사실적이지만 실제로 일어나기는 어려운, 실제로 일어난 일임에도 상상속에서 뽑아낸 것만 같은 아리송한 느낌이 드는 단편들. 그 단편들을 읽게 되면서 현실과 상상속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대체로 짧은 글들 속에 녹아 있는 이 작가의 의도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어보았던 글.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았던 글 등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은 어쩌면 제대로 읽히기에는 처음부터 그 방향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주지 않고 그저 읽는 사람의 상상속에 맡기는 글이었을지도, 어쩌면 그렇지 않았다 해도 나는 그렇게 읽어버렸다. 

인간의 고독과 그 고독을 채워줄 수 있는 환상의 마법을 뿌려대면서 읽는 사람을 내내 붙잡아두게 만든다.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나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 패턴도 더욱더 당황스럽게 만들었으며 갑자기 끝나버리는 이야기 또한 하는 수 없이 다음의 글을 읽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나의 뒷통수를 치고 저멀리 달아나버릴 수 있겠는가, 라는 심정으로. 사랑, 그 흔한 이야기지만 진부하지는 않은. 고독, 쓰라리지만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기억, 담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잊어버리기는 너무나 힘든 그런 이야기들이 이 글들 속에 녹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호하고 애매하게, 그렇지만 글에 대한 감정만큼은 아주 확실하게 가슴 속에 박힌 것 같은 이야기들. 

애초에는 단편이란 것에 흥미가 없었다. 짤막한 이야기가 아주 긴 장편보다 더 임팩트가 강할 수도 있겠지만 중간은 없고 그저 처음과 끝만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 덕에 단편에 흥미가 없었지만 이 아돌포의 글은 그 어느 장편보다도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작가가 쏟아내고자 했던 이야기가 나의 감성에 맞아 떨어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생소하게 접한 이 환상문학이라는 측면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짧아야만 매력이 더 살아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속에 담겨 있는 나의 상상과 실제의 일. 그 누가 판단할 수 있겠으며, 심지어는 판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된다. 그저 여기쯤이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과 추측으로 읽어내려가는 이 글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가끔은 황당할만큼 생소한 문체와 그 글의 소재로 놀라게도 만들지만 그 모든 것을 안고 가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상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생각들이 상상이면서 동시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하고 있는 실제의 일에 들어가는 것인지를. 모든 건 애매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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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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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오랜만에 가슴 한 편을 적시는 비같은 느낌이랄까. 가슴이 쓰라려 맺힌 눈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였다.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얼마나 나는 살아갈 수가 있었는가. 아니, 사랑이라기보다 그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떠오르는 나에대한 기억만으로.  

16살의 여름. 찬란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 해 여름에 만나게 된 한 여자. 스타킹을 신는 여자의 다리를 훔쳐보다 흠칫 놀랜다. 하지만 소년을 쳐다보는 그 여자, 케이트 윈슬렛의 눈동자가, 그 표정이, 몸짓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묘한 느낌의 그 연기가 빛을 발할 때 나는 한순간 멍해진 느낌을 받았다. 둘 사이의 감정은 무엇이었나. 나는 소년의 기분을, 그리고 여자의 감정을 판단할 수, 아니 사람의 감정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부터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만큼 자기 자신만의 느낌을 알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으니까.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법정에서 그녀를 본 소년은 이후 어른이 되어 감옥으로 테이프를 보낸다. 난독증이었던 것을 알고, 자신이 법정에서 그녀의 증인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느끼는 데에서부터 그러한 의식이 시작된 것이었을까. 그녀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기 전의 의식. 책 읽어주기. 책을 읽어주면 그녀는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감정이 북받쳐 울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을 어른이 되어 기억하고, 자신이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들의 집합이 책을 읽어 녹음을 하고 그녀에게 보내주는 것이었으리라. 가슴이 먹먹하다. 환경이,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없어져 버린 느낌이다. 그러한 만큼 그들의 사랑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의 심리가 애석하게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기억하고, 그리고 사랑을 해라. 사랑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은 배가 될 것이고, 그 사랑을 추억으로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한순간은 아주 행복하게 세상에서 내가 가장 뜻이 있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순간, 변해가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변하고 느끼는 것도 다르지만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의 찬란했던 그 느낌과 이야기는 내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느끼면서 오늘도,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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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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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키를 말하고자 할 때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곱씹어본다. 잔잔한 듯 내비치는 그의 말투에선 서정적이라기보다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의 내면에 들어있을 생각들과 글 속에 스며들던 말투는 이 책을 통해서, 그리고 전에 읽었던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조금 더 깊게 알 수가 있었다. 여유로움이라는 그 단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표현의 의미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만큼 가지고 싶지만 가지기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나는 한없이 걷고 달리는 것이 싫었다. 그 무엇보다 달리면 숨이 차는 그 느낌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생각없이 걷다가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되고, 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감을 느낄 때, 또는 내가 하고싶던 일에 한발짝 다가감을 느낄 때 점점 좋아짐을 느끼게 된다. 운동이라는 것은 힘든 것만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대화이다. 땀을 흘리며 내 커지는 심장박동수를 느끼며 알게되는 희열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하루키와 함께 뛰었다. 나는 몸으로 느끼는 감정을 함께 알았고, 나의 경험이 된다는 느낌마저 들 수 있도록 하루키는 참 즐겁게 뛰었다.  

언젠가 죽게 되었을 때 묘비명에 쓰고 싶은 단 한 마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시작과 끝, 다시 시작점을 향해 노력하고 도전해나가는 그 과정동안 포기하지 않았다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지를 표현해내고자 했던 말은 아닐까. 하지만 하루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도전정신에 대한 찬미보다는 다른 책들의 모토가 될 수 있는, 독자들이 이런 글들을 써내려 갈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조그마한 보너스같은 느낌이었다. 아, 하면서 그의 글들을 더욱 가깝게 읽을 수 있는 그런 것.  

달리기라는 것을 하고싶어지기는 했지만, 나는 아마 걷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시작부터 걷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아주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하는 나의 취향은 그와는 다를 것이고, 다름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하루키와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 앞에 하루키와 앉아 커피를 한 잔 올려놓고, 대화를 하고 싶다. 그 대화는 달리기에 대한 것일수도 있고, 글에 대한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을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진솔한 대화를 끝마칠 때 나는 비로소 그를 이해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발견할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하루키와의 커피 한 잔 정도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아주 소중했던 시간.  

하루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달리기를 아주 좋아했던 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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