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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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환상문학, 어쩌면 마술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중남미 작가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 그의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다는 것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보르헤스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사실적이지만 실제로 일어나기는 어려운, 실제로 일어난 일임에도 상상속에서 뽑아낸 것만 같은 아리송한 느낌이 드는 단편들. 그 단편들을 읽게 되면서 현실과 상상속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대체로 짧은 글들 속에 녹아 있는 이 작가의 의도를 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어보았던 글.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았던 글 등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은 어쩌면 제대로 읽히기에는 처음부터 그 방향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주지 않고 그저 읽는 사람의 상상속에 맡기는 글이었을지도, 어쩌면 그렇지 않았다 해도 나는 그렇게 읽어버렸다. 

인간의 고독과 그 고독을 채워줄 수 있는 환상의 마법을 뿌려대면서 읽는 사람을 내내 붙잡아두게 만든다.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나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 패턴도 더욱더 당황스럽게 만들었으며 갑자기 끝나버리는 이야기 또한 하는 수 없이 다음의 글을 읽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나의 뒷통수를 치고 저멀리 달아나버릴 수 있겠는가, 라는 심정으로. 사랑, 그 흔한 이야기지만 진부하지는 않은. 고독, 쓰라리지만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기억, 담고 살아갈 수는 있지만 잊어버리기는 너무나 힘든 그런 이야기들이 이 글들 속에 녹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모호하고 애매하게, 그렇지만 글에 대한 감정만큼은 아주 확실하게 가슴 속에 박힌 것 같은 이야기들. 

애초에는 단편이란 것에 흥미가 없었다. 짤막한 이야기가 아주 긴 장편보다 더 임팩트가 강할 수도 있겠지만 중간은 없고 그저 처음과 끝만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 덕에 단편에 흥미가 없었지만 이 아돌포의 글은 그 어느 장편보다도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작가가 쏟아내고자 했던 이야기가 나의 감성에 맞아 떨어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생소하게 접한 이 환상문학이라는 측면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짧아야만 매력이 더 살아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속에 담겨 있는 나의 상상과 실제의 일. 그 누가 판단할 수 있겠으며, 심지어는 판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된다. 그저 여기쯤이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과 추측으로 읽어내려가는 이 글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가끔은 황당할만큼 생소한 문체와 그 글의 소재로 놀라게도 만들지만 그 모든 것을 안고 가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상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생각들이 상상이면서 동시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하고 있는 실제의 일에 들어가는 것인지를. 모든 건 애매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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