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씽 (예담)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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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섣부른, 어찌보면 어설픈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살랑살랑, 마치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을 함께 겪고있는 양, 어느 순간 나는 10대들의 사랑을 함께 하고 있었다. 병든 소녀와 그녀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투병생활로부터의 탈출을 돕는 소년. 상당히 진부한 내용임에도 왜 자꾸 그리 미소를 짓게 하는지 모르겠다. 주고받는 농담과 메시지 속에서 나는 풋내와 애틋한 감정들, 그리고 바깥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매디 특유의 감성이 어우러져 나는 효과가 아니었나 싶다. 그 와중에 이 작가가 참 대단하다 생각했던건, 정말 단조로운 어체와 편하게 읽히는 문체로 엄청난 몰입을 유도한다는 점이었다. 정말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희망조차 사치가 되고 그저 이 상황이 그대로 존속되기만을, 그저 그 다음 생일이 오면 그 전 한 해를 이겨낸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유지라도 되어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어떻게 내 깊은 속 한 구석을 시리게 할 정도로 전달했을까.

"그해 여름 나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서서 나의 부질없는 소망때문에 가슴에 멍들이며 살았던가. 처음에는 그저 창밖을 내다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자 밖에 한 번만 나가보고 싶었다. 그런 다음에는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었다. 딱 몇시간만, 딱 하루만, 아니 평생동안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 내가 확실히 아는 딱 한가지가 있다면, 그건 한번 원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욕망에 끝이란 없다."

기욤 뮈소의 작품처럼 급하게 해피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너무 급 선회된 것은 조금 아쉬웠으나, 하루 내내 이 책을 읽으며 가슴 한켠이 저릿하면서 매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뱃 속에 나비가 날라다니는 듯한" 느낌은 상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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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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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로망 가리의 책들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로망 가리의 글이 레니에의 죽음으로 치닫을수록 점점 불안해져갔다. 긴장된 모습으로 스스로의 범행현장을 준비하고 있는 레니에와 함께 나도 같이 식은땀이 흐르려 했다. 그렇게 레니에가 죽었다면, 이 책은 노년의 절망을 구제하지않고 방치하여 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늙음에 대한 두려움만 남겼을 것 같다.하지만 로망 가리는 레니에를 구제해 주었다. 끝에 몰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이 오면, 오히려 그 순간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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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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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약속에 의해 합의된 법에 따라 잘못에 대한 처벌이 결정되어야 하지, 한 개인이 원한에 의해 손쉽게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그 또한 범죄이며,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히 이 책을 봤을 때 내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내 테이블위에 책이 내려놓을 때마다, 심장이 뻐근해지며 그 다음 내용을 빨리 알고싶어질 뿐이였다. 결국 책을 덮을 땐, 자기 나름대로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가며 벌은 받지 않은 채 남의 인생을 망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벌하는 릴리가 어느정도 납득이 되다가도, 결국 그 책임을 지지않고 법망을 유유히 벗어나는 그녀를 보고, 결국은 릴리 자신도 죽여 마땅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느낌이 들었다. 통쾌한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심경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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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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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전들이 그렇듯, 읽는 사람이 어느 시기에, 어떤 상황에서 그 책을 접하느냐에 따라 같은 책이 매번 판이하게 다르게, 새롭게 읽힌다. 마찬가지로 나도 내가 고등학교 때 이 책으로부터 받았던 그 느낌과는 굉장히 다른 시선으로 이 책을 접근하게 되었다. 어렸던 10 대의 나는 이 책에서 1900년대 초반의 더블린의 남루함과 부족함이 묻어나는 인간적인 사람들, 그리고 낯선 도시의 매력을 느꼈다면, 20대 후반의 나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분열되는 계층간, 그리고 사람들 간에서 쉽게 다른 사람들을 비틀어진 시각과 흠 잡는 듯한 말투로 무시하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추락하는 스스로의 가치를 어떻게든 보존하고자 하는 이들의 처절한 모습과 가식, 애처로운 행동들, 그리고 무너져 가는 삶을 읽은 듯 하다. [더블린 사람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은 마지막의 ‘죽은 사람들’이었다. 안으로부터 분열과 붕괴의 시기를 걷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변화하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무너져가는 삶 안에서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며 묵묵히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이 그 전 단편들에서 느꼈던 목 막히던 답답함이 씻겨져 나가는 듯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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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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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반 부분까지만 하더라도 이 책이 내가 시중에서 자주 접해오던(그리고 의미의 부재로 공허하다고 느끼던) 그저 그런 연애소설일 줄로만 생각했다. 급격히 빠져드는 강렬한 사랑, 그로 인해 급속하게 저 바닥으로 휩쓸리듯 떠내려가버리는 각자의 삶.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는 서서히 그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성,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라 여겨지는 40대를 넘기는 성인으로써의 허무함과 권태, 삶의 의미, 관계와 일의 밸런스에 대한 고찰을 조금씩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녹여 놓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화력과 열기에 모두 다 타버리고 소진되는 10대의 사랑과는 달리, 40대의 서로를 배려와 조심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온기로 데우는 느낌의 사랑은 어딘가 따스하고, 어딘가 안쓰러웠다.

책의 중심에는 마키노와 요코의 대화가 있었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릴케의 시와 바흐가 있었다. 이라크 내전의 중심에서 취재를 했던 요코와 요코 아버지가 겪었던 유고슬라비아 내전, 그리고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마키노가 연주하고 듣는 바흐는 “유럽의 피가 흐르지 않는” 마키노 조차도 그 사건들 전에는 느끼기 어려운 깊이감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큰 이벤트를 겪은 적은 없지만, 책 중반부 부터는 바흐의 첼로 연주곡들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바흐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그리고 굉장히 종교적인 색채가 배어든 음들을 즐기며 한 줄 한 줄 인물들의 고뇌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읽으며 더욱 책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는 꼭 릴케를 읽어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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