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책 중반 부분까지만 하더라도 이 책이 내가 시중에서 자주 접해오던(그리고 의미의 부재로 공허하다고 느끼던) 그저 그런 연애소설일 줄로만 생각했다. 급격히 빠져드는 강렬한 사랑, 그로 인해 급속하게 저 바닥으로 휩쓸리듯 떠내려가버리는 각자의 삶.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는 서서히 그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성,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라 여겨지는 40대를 넘기는 성인으로써의 허무함과 권태, 삶의 의미, 관계와 일의 밸런스에 대한 고찰을 조금씩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녹여 놓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화력과 열기에 모두 다 타버리고 소진되는 10대의 사랑과는 달리, 40대의 서로를 배려와 조심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온기로 데우는 느낌의 사랑은 어딘가 따스하고, 어딘가 안쓰러웠다.

책의 중심에는 마키노와 요코의 대화가 있었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릴케의 시와 바흐가 있었다. 이라크 내전의 중심에서 취재를 했던 요코와 요코 아버지가 겪었던 유고슬라비아 내전, 그리고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마키노가 연주하고 듣는 바흐는 “유럽의 피가 흐르지 않는” 마키노 조차도 그 사건들 전에는 느끼기 어려운 깊이감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큰 이벤트를 겪은 적은 없지만, 책 중반부 부터는 바흐의 첼로 연주곡들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바흐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그리고 굉장히 종교적인 색채가 배어든 음들을 즐기며 한 줄 한 줄 인물들의 고뇌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읽으며 더욱 책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는 꼭 릴케를 읽어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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