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펌]성공의 열쇠는 있다!… 책을 읽어라!

최승호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river@chosun.com

오프라 윈프리 9살 때 성폭행, 14세 때 미혼모, 20대엔 마약… 독서 통해 새로운 세계로 도약
다치바나 다카시 서가 총길이 700m… “책 한 권 쓰기 위해 500권 읽는다”는 엄청난 다독파
조지 루카스 12m 높이 사설 도서관 보유… ‘순수이성비판’ ‘로마제국 흥망사’ 등 고전 즐겨
빌 게이츠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소중하다” 책읽기의 중요성 강조
나폴레옹 전쟁터에서도 독서… 이집트 원정 나서면서 1000여권의 책을 싣고 떠나


그녀의 과거는 이랬다. 1954년 1월 29일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 코스키우스코에서 결혼하지 않은 18세의 가정부 출신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인종과 여성 차별이 극심하던 그 시절, 검은 피부를 갖고 태어난 그녀는 이후 불운으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된다. 아홉 살의 나이에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후 5년 동안 삼촌과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지속적인 성적 괴롭힘이 이어졌다. 14세에 첫 아이를 출산해 미혼모가 됐고, 2주 후 그 아이가 죽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20대에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으며, 0.1t(100㎏)에 이르는 자신의 몸무게를 못이겨 비만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녀의 현재는 이렇다. 지난 8월 27일 유엔으로부터 ‘올해의 세계 지도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도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명단에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2003년에는 포브스지가 선정하는 ‘억만장자’에 뽑히는가 하면, ‘세계 10대 여성’ ‘세계 최고 비즈니스 우먼’ 등 화려한 수식어가 늘 그녀를 따라다닌다. 현재 그녀는 1986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TV토크쇼를 18년째 진행 중이다. 이름하여 ‘오프라 윈프리 쇼’. 미국 전역에서 3000만명이 시청하고 있으며 전세계 109개국에서 방송되고 있다.

그녀의 현재와 과거 사이에 이처럼 확연한 선을 그어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독서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주저없이 답한다. 그녀의 독서 습관은 역설적으로 책을 읽지 않을 뿐 아니라, 딸이 책을 읽는 것조차 싫어했던 어머니 밑에서 시작됐다. 아홉 살이 되던 해 현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문을 홱 열고 책을 잡아채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책 버러지야, 나가버려! 넌 다른 애들보다 네가 퍽 잘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고난이 사람을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면, 그녀는 후자의 경우였다. 특히 자신이 낳은 생명을 2주 만에 잃은 뒤 그녀는 자신의 뒤틀린 인생을 책읽기를 통해 바로 잡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의무적으로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도서관 카드를 소유하는 것을 마치 미국 시민권을 얻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그녀의 자서전 작가는 기록했다.

하지만 그녀의 책읽기는 투자정보를 얻거나 대학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실용적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책읽기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내렸다. “책을 통해 나는 인생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세상에 나처럼 사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았다. 독서는 내게 희망을 줬다. 책은 내게 열려진 문과 같았다.”

그녀에게 읽을 만한 책을 권해준 사람은 에이브라함스 선생님. 선생님은 ‘밥 먹으면서 까지 책을 읽는’ 오프라를 눈여겨봤다. 니콜릿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해준 사람도 에이브라함스 선생님이었다.

그녀에게 책은 가난과 흑인의 설움, 강간을 당하고 미혼모로서 자식을 잃었던 어둠과 단절의 시기에,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다리(Bridge)이자 희망의 씨앗을 가꾸는 정원이었던 셈이다.

그녀의 책읽기는 8년 전 한 차원 더 높은 과제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미국이 다시 책을 읽게 만들겠다”며 자신의 쇼에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권해주는 북클럽을 시작한 것이다. 그후 그녀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기도 했고, CNN 등 유수 언론은 “북클럽에서 선정되는 것은 베스트셀러를 예약하는 지름길”이라고 잇달아 보도하는 등 그녀의 북클럽은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대통령도 꿈꿀 수 없는 일을, 모진 시련을 이겨낸 50세의 한 흑인 여성이 거뜬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읽어라

미국에 오프라 윈프리가 있다면 일본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64)가 있다. 하지만 오프라와 다치바나는 책읽기의 동기부터 다르다. 방송인 오프라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변화시키며 희망을 지켜내기 위한 ‘감성적’ 책읽기라면, 당대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다치바나는 지적 욕구를 채우고 지식을 섭취해 글로 쏟아내기 위한 ‘실전적’ 책읽기에 가깝다. 다치바나는 “한 권을 정독하는 것보다 다섯 권을 속독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철저한 다독파(多讀派)이기도 하다. 오프라가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면, 다치바나는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에 속한다.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주간지 문예춘추사에 입사했던 그는 고갈된 상상력을 복원하기 위해 도쿄대 철학과에 재입학했다. 지금까지 40여권의 책을 저술했고 잡지에 발표한 논문은 그 배 이상이며 뇌사·원숭이학·일본 공산당·우주 등 저술 영역도 광범위하다. 지식의 출력을 위해 독서를 통해 입력하고 있으며, 출력 대 입력의 비율은 1:100 정도라고 한다. 한 예로, 과거 ‘뇌의 최전선’을 보도했을 당시 그는 사전 취재를 위해 500권의 책을 읽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왕성한 지적 욕구는 도쿄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한 서재 겸 집필실(일명 고양이 빌딩)에 잘 나타나 있다. “새로운 것만 보면 몸달아 하는 호기심 덩어리”이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고양이’로 빌딩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부터 심상치 않다. ‘다치바나 신도’들의 성지(聖地)로 불리며 프랑스 고교 지리 교과서에도 등장한다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이곳은 말 그대로 ‘책의 요새’다. 웬만한 동네 도서관보다 많은 3만5000여권(1998년 추정치)이 소장돼 있으며, 신흥종교·아랍문제·진화론·인터넷·로봇·신체장애·병기·스파이… 등 일반인이 호기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조차 없을 분야까지 총망라한 엄청난 양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고양이 빌딩’은 그의 책읽기가 무한한 호기심과 저널리스트다운 ‘팩트(fact)’에 대한 집착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도 잘 보여준다. 고양이 빌딩에 대한 유명한 일러스트와 함께 자신의 ‘서재론’까지 소개한 저서(‘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중 ‘서고를 신축하다’는 대목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서가의 총길이를 합치면 700m에 이르며 3만5000권 정도의 책을 꽂을 수 있다. 또 서류 등의 자료는 B4판 크기의 행잉 홀더에 분류해 보관하고 있는데 안쪽까지의 깊이가 60㎝나 되는 수납 케이스 28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또 과거 책을 보관하던 사과상자에 대해 “두께는 8㎜이고, 상자 입구의 안쪽 치수가 27.5㎝×60㎝에 깊이가 30㎝”라고 서술해 놓았다. 가히 사건 취재를 맡은 신문기자가 사건현장에 대해 묘사하는 정도 이상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그 정도 호기심과 집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측량’할 수 있는 수준의 기록들인 것이다.

그의 편집증적 꼼꼼함은 현재 ‘고양이 빌딩’을 함께 지키고 있는 ‘비서’ 공모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아사히신문에 그가 게재한 모집광고에는 연령·학력 제한은 없었지만, ‘정리 능력(약간의 영어실력과 과학상식 요함)과 광범위하고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 있는 분’이라는 ‘자격제한’을 명시해 놓았다. 서류심사만으로 부족해 영어시험과 역대 대장성 장관의 이름을 적으시오, 과학자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시오, 아래 열거한 50명의 인물에 대해 직함 내지 일의 범주를 서술하라 등 세 문항짜리 필기시험까지 거쳤다. 1명 모집에 500명 넘게 지원했고, 고졸 학력의 방송작가 출신 여성이 ‘영예’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독서왕’ 다치바나는 어떤 독서법을 권장할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그의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에는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을 것, 새로운 정보를 꼼꼼히 체크할 것,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를 확인할 것,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할 것,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을 것 등 ‘정확성’과 ‘호기심’의 중요성이 재차 강조돼 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늘어놓았을 때의 길이를 재고, 책 보관상자의 두께를 ㎜ 단위로 측량하며, 서재를 지을 때 “책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의 ‘실전적’ 충고였기 때문이다.

조디 포스터, 데이비드 듀코브니도 책벌레

이들 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얼굴 중 독서광들은 꽤 된다. 우선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서쪽에 높이 12m, 2층 규모의 사설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벽이 온통 책으로 가득한 이곳에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에드워드 기븐스의 ‘로마제국 흥망사’ 등 고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려한 영상으로 상징되는 블록버스터 ‘스타워즈’의 감독에게는 다소 뜻밖의 도서목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고대로마사를 통해 선인이 악인으로, 민주주의가 독재로 변질되는 과정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영화 테마에 대한 영감을 준다”고 설명한다.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사나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사 회장도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독서광이다. 미국 최고의 명문 예일대 출신인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 프린스턴대 출신인 ‘X 파일’의 주인공 데이비드 듀코브니 등도 미국 할리우드에서 알아주는 책벌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많은 위인들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명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의 독서광들을 다룬 책 ‘독서불패’(김정진 지음)에 따르면, 전쟁터에서도 끊임없이 독서를 했다는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기 전 한 달 동안 이집트 원정을 나서면서 1000여권의 책을 싣고 떠났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아버지가 아들이 책 읽는 것을 꺼려해 삽을 들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책을 주머니에 숨겨 넣고 쉬는 틈틈이 읽을 정도였으며, 세종대왕은 지나친 독서로 눈병이 난 와중에도 독서를 끊지 못했다. 에디슨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의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댈 정도였으며, 마오쩌둥은 매번 비서관들에게 책 제목을 적어 메모로 남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책은 “값싸게 주어지는 영속적인 쾌락”(몽테뉴)이며 “정신적으로 충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벤저민 프랭클린)이요,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데카르트)이었다. 지금도 책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가난과 절망에 빠진 소녀들에게 ‘오프라 윈프리’의 꿈을 주고, 비 새는 통나무 집의 가난한 소년들을 ‘링컨’으로 성장케 하고 있으며, 사과상자와 책의 두께를 오차 없이 자로 측정하는 괴짜 대학생을 ‘위대한 지식인’에 점점 다가서게 하고 있을 것이다. 책은 ‘천의 얼굴’을 가진 ‘희망의 마법사’이자 ‘성공 제조기’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천재화가 이중섭 생애 마지막 작품 발견

[문화부 2급 정보]○…천재화가 이중섭(1916∼1956)이 숨지기 5개월전 병원에서 작업한 것으로 보이는 스케치북이 발견됐다.

문화재청과 공동으로 경복궁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인소장 문화재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종춘)는 31일 김모(서울 아현동)씨가 감정의뢰한 이중섭 드로잉 작품집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진품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씨가 1977년 고서점에서 구입했다는 이 작품집은 가로 18㎝,세로 13㎝ 크기의 1955년판 일본 지방여행 가이드북 ‘近畿旅行’의 후반부 메모지에 실린 것으로 작가 사인과 필치 등으로 볼 때 이중섭의 그림이 틀림없다고 고미술협회 감정위원들은 설명했다.

그러나 고미술협회는 정확한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근현대미술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푸른색 연필이나 검은색 사인펜으로 그린듯한 드로잉 11점으로 이 가운데 한 작품의 사인 아래에 ‘1956.4.1 病院’이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이중섭이 말년에 병원생활을 하면서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말년에 정신이상과 영양실조 등으로 병원을 전전한 이중섭은 1955년 봄 청량리뇌병원에 입원했다가 간염 진단을 받은 후 다시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으나 입원 한달만인 9월6일 세상을 떠났다.

이중섭의 대표작인 은박지 그림과 유사한 형태인 이번 작품들은 그가 병원생활을 하면서 옛 시절을 떠올리거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심경을 담은 그림이 대부분이다. 바다에서 어린이들이 물고기들과 어우러져 노는 풍경,엄마가 아이를 꼭 껴안고 있는 그림,혼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 정겨우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국민일보 이광형기자 ghlee@kmib.co.kr

..............................................................................................................................................................................

죽어서야 영광을 누리는 작가들을 봅니다.


박수근화백도 이중섭화백처럼 그림에 조차 묻어나오는 궁기가 슬프지요.


제가 펼쳐보는 박수근화집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화강암 자욱처럼 삶의 슬픔에 얼룩져 있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水巖 2004-11-04 17:55   좋아요 0 | URL
반가운 이야기이군요. 퍼 갑니다.

니르바나 2004-11-04 18:07   좋아요 0 | URL
수암선생님 안녕하세요.
니르바나 인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 잘 읽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이렇게 찾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건안하시길 빕니다.

비로그인 2004-11-04 23:17   좋아요 0 | URL
너무 정감이 가는 그림이예요 ^^

니르바나 2004-11-05 09:31   좋아요 0 | URL
체셔고양이님 반갑습니다. 정감이 가는 그림이지요?

파란여우 2004-11-05 23:18   좋아요 0 | URL
이중섭의 그림은 '가족'이 주류를 이루죠. 그가 그만큼 가족을 그리워하여 그러했다고 봅니다. 저 그림에서도 아련한 찡함이 전해 옵니다.

니르바나 2004-11-06 11:52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님 가족도 저렇게 오손도손 사시겠지요.

최인호선생의 '聖가족'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 4 개정판이 지난 여름에 발간되었다.

 

처음 이 작품이 중편으로 발표되었을 때는 이전의 문학판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독교란 특정종교를 정면으로 다루어 신선하였고, 

짧은 시간에 거쳐 그 동안 작가가 써 두었던 습작에 가필을 하여 서점에 내어 놓은,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등을 발표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낙양의 지가 운운할 정도로 그의 차후 작품들은 베스트 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다양한 관심사를 그가 가진 필력으로 잘 옮긴 결과이리라.

 

나도 그의 책을 즐겨보았고 이 책을 처음 나올 당시의 중편으로만 보았다.

이 후 장편으로 개고하였지만 새로 읽는 일은 하지 않았다.

작품의 밀도가 옅어지고 긴 인용문으로 짜집기 할 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었다.

햇빛아래 미인이기 쉽지 않은 것 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25년만에 다시 나오는 이 책을 장편으로 읽어보려한다.

어쩌면 시간보다 빠른 독자들의 변화에서 저만큼 물러나 있는 책이고,

전에 읽은 바 있어 그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책을 다시 붙드는 일이 드문 나로서는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경우이지만,

25년 전으로의 회귀라는 일이 주는 감회가 이 책이 주는 언외의 소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몸은 과연 내 것인가?

 

사람들은 평상시에 내 몸을 내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것이라면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마음내키면 꺼내 쓸 수 있어야 내 것이고,

내 목에 건 금목걸이라면 기분이 좋아서 풀어 줄 수 있어야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몸도 으례 그럴 것이라 여기고 우리들은 아무 생각없이 산다.

정말  나의 몸은 내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인가?

우리는 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완벽하게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그'나'를 어디엔가 놓고서 산다.

 

교통사고로 죽는 경우, 심장의 작동여부와 뇌파의 움직임으로 사망여부를 판단한다.

그리 생각해 보니 우리의 심장은 내 몸 안에 있으나 지금까지 내 마음과 상관없이 피돌기를 하고 있다.

내가 원한다고 허파에 바람들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원한다고 키를 늘리지도 못하고, 내가 원한다고 뇌의 작동을 멈출 수도 없고,

내가 원한다고 내 몸이 수용하는 것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는 듯 하다.

있다고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행위나 몸에 상해를 입히는 행동이나 가능하다.

이러한데도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부터 종교의 진리가 나온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기독교인의 경우는 원죄에서 사함을 받고,

불교인의 경우는 해탈의 문 안에 서 있게 된다.

 

어렵지만 늘 잊고 사는 문제의 해답은,

가짜 내가 완전히 죽어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포여! 마·소처럼 부려지지 마시오”
안중근 의사 다룬 첫 기록, 중국 희곡 ‘망국한전기’
미디어다음 / 이성문 기자
중국에서 발견된 안중근 의사를 다룬 첫 기록 '망국한전기'에 실린 안중근 의사의 사진.
“바라건대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 해, 다시는 스스로 그르쳐, 남에게 마·소처럼 부려지지 마시오! 나 같은 정혼(精魂)도 여러분을 돕지 못한 채, 그저 지하에서 두 발만 동동 구르게 될 터!”

지난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95주년에 맞춰 세상에 알려진 중국 희곡 ‘망국한전기(亡國恨傳奇)’ 중 한 대목이다. 형이 집행되기 직전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으로 동포들에게 남긴 말이다.

문성재 박사(39, 난징대·서울대 중국어문학)가 지난 97년 난징(南京)대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희곡은 창작의 형태를 빌렸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안중근 전기보다 10년 앞서 간행된 단행본으로 최근 확인됐다.

문 박사에 따르면 ‘망국한전기’는 1910년 겨울에서 1911년 사이 ‘중서보(中西報)’ ‘광익총보(廣益叢報)’ 등 중국 신문에 연재된 희곡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 연재 당시에는 ‘천참생(天懺生)’이라는 필명을 써 원저자가 불확실하던 것을 중국 학계에서 최근 양저우(揚州) 출신의 신문발행인이며 소설가로도 활약한 꿍사오친(貢少芹)이 작자임을 확인했다.

책은 가로 12cm, 세로 19㎝로 요즘 일반 단행본보다 조금 작으며, 모두 71쪽인데 표지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 상태다. 희곡 본문은 제1곡 ‘협약(協約)’에서 제12곡 ‘병한(倂韓)’까지 모두 12대목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대강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조선 총독부의 이토오 히로부미가 통감으로 조선의 전권을 장악하자, 안중근은 이토의 척살을 다짐하고, 동지를 규합한 뒤 이토를 하얼빈에서 처단한다. 여순으로 송치된 안중근은 일본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하게 일제의 만행을 비판한 후 장렬하게 순국한다. 망국의 백성들은 안중근의 정신을 기리며 제사를 올리고 그의 명복을 빌지만, 무능한 조선국왕은 일제의 강압으로 인질이 되어 일본으로 압송된다.

미디어다음은 문성재 박사로부터 해석 전문을 제공받아 일부를 발췌해 싣는다. 일부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고 부분적으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녹아 있지만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라는 큰 흐름을 읽는데 지장은 없다. 원문에 나오는 연극 전문용어들은 보다 편안한 읽기를 위해서 생략했다. 작은 글씨로 표시한 것은 대사, 큰 글씨는 노래가사인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운율에 녹아 있는 안중근 의사의 충절을 느낄 수 있다.

아서라! 나는 조선 국민의 한 사람이니…
제2곡 ‘척살을 도모하다’(謀刺)에서는 조국의 운명에 분통해 하며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획하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안중근
진작부터 음모를 꾸미고 있거늘, 고려를 감독한다는 게 웬 말인가! 침상 곁에서 이방인이 제멋대로 드러누워 자는데도, 임금은 처량하게도 이권일랑 잃어버리고, 신민들은 눈물 흘리며 노예로 전락한 채, 칼날의 위협을 당하여 나라의 운명 끊어질 판국이로다!

(중략)

대권이 손아귀에 쥐어졌다 말하지 말라! 궁중의 일 다시 돌아보자니, 가장 마음 아프고 눈 뜨고 못 볼 일은, 아관(俄館)에 제왕의 자취 숨기고, 깊은 궁내에서 왕비께옵서 주륙당하심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로다! 미우라(三浦)는 공로 높건마는, 우리 왕실은 백성의 반열로 강등되었구나!

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도 모르게 코끝으로 불이 솟고, 귓가로 바람이 생기누나! (대성통곡한다) 이토 이 늙은 도적놈, 내 네놈과는 맹세코 하늘을 같이 이지 않으리라!

금수강산 한 폭의 그림을, 저 간악한 놈이 제멋대로 뒤엎어, 풍운이 급변하고 하늘이 칠흑 같으니, 어디서 내가 기댈 만한 정토(淨土) 한 곳인들 찾을 수 있으리오?

아서라! 나는 조선 국민의 한 사람이니, 조금의 책임이라도 지는 것이 마땅하다! 저 이토가 우리나라에 전혀 (선택의) 여지도 남겨 주지 않았으니, 나 역시 방법을 강구하여 놈에게 대처해야 옳겠다! (생각에 잠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활을 당기려면 응당 힘주어 당겨야 하고, 도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으라 했다. 내가 만약 놈을 척살할 수만 있다면, 내 조국을 위해서 한 풀이를 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 김씨와 안중근 의사 사이에 오가는 대화도 흥미롭다. 제4곡 ‘산 사람의 제사를 지내다’(生祭)에서는 아내 김씨가 ‘거사’를 눈치채고 남편을 떠보지만 안중근 의사는 시치미를 잡아 뗀다. 이후 김씨는 안중근의 계획을 알게 되고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내 김씨
당신께서는 반드시 계책에 만전을 기하사, 기필코 그 원흉을 응징하소서! (만약 이토오 암살하지 못하시면) 당신께서 살아 돌아오시는 일 스스로 부끄러워 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고, 저 역시 서방님 얼굴 다시 뵙기 부끄러울 테니, 서로 상봉하려거든 황천(黃泉)으로 가십시다. 저는 사이좋게 날개 나란히 나는 비익조(比翼鳥) 되기 원치 않사오며, 기꺼이 애절하게 피눈물 흘리는 두견이 되렵니다.

‘망국한전기’에서는 아내 김씨가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온다. 극적인 요소를 위해 사실과 다른 허구를 가미한 것이다.

이토 “하늘이 주시는데 취하지 않는다면”
제5곡 ‘만주를 여행하다’(旅滿)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야망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만주땅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하늘이 주시는데 취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라며 “억지로 갖고 싶지 않지만 오로지 재앙이 닥칠까 걱정되어서”라고 능청을 떤다.

이토
망망한 지구에서, 힘 겨루는 건 지혜를 겨루느니만 못하고, 거대한 바둑판에서, 한 수는 오로지 앞 뒤만을 다툴 뿐이니, 공 이룰려거든 휩쓴 다음 거두어야 하는 법. 열등함을 무찌르고 우수함을 이기니, 사슴 몰이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런지?

(중략)

지세가 철통같이 단단하니, 만주에 근거한다면, 동아든 서구든 간에, 그 요해며 숨통을, 아주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이 동삼성 때문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것도, 오로지 이 땅덩이가, 그 러시아의 울타리요, 우리 일본의 완충지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양국이 비록 강화를 맺기는 했다지만, 그들의 야심을, 나조차도 예측하기가 어려움에랴!

(중략)

장춘(長春)에 의지하여 이리저리 따져 보고, 양국의 경계 국경을 그어, 각자 강역을 지키도다. 이 기회에, 가까스로 하늘이 주시는데 취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벌을 받으리라. 내 억지로 요구하기 싫기는 하나, 오로지 재앙이 가까운 데서 닥칠까 걱정해서일 뿐.

내 기세는 산조차 뒤흔드누나!
제6곡 ‘적을 섬멸하다’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숨가쁜 장면이 그려진다. 안중근은 총을 꺼내들며 거침없이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치고 만세 삼창을 했다고 나와 있다. 그런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총을 먼저 쏘고 만세를 외친 것으로 아는 것과 비교할 때 행동 순서는 다르지만 정황은 거의 비슷하다. 여기서 그 무엇을 외쳤다는 것은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어로 “대한국 만세(후라 코리아)”라고 외친 것을 가리킨다.

안중근
얼어붙은 날씨 눈 내린 땅 사이에 우뚝 서니, 달은 지고 별은 가로놓였구나. 새벽 빛 가득한 틈을 타서, 고개 들고 예의주시 하노라.

(중략)

안중근
보이는 그는 주름진 허연 얼굴에, 말쑥하게 살쩍도 희끗희끗, 비록 근력은 쇠잔해졌다 하나, 과연 기력이 왕성하구나. 풍채는 느긋하게, 남다른 여유조차 보인다마는, 무엇보다 한스러운 건 무장한 병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로다!
(이토오가 모리를 대동하고 역에 도착한다) (안중근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안중근
내 늠름한 모습 민첩도 하고, 기세는 산조차 뒤흔드누나! 갑자기 뛰쳐나와 길을 막고, 별안간 살의를 번득이며, 거침 없이 큰 소리로 (뭐라고) 외치고, 입으로는 “만세” 세 번 부르짖노라!
(총을 든다) 내 서둘러 내달아, 잠시도 꾸물대지 않으련다. 이 수염·머리 휘날리며, 두 눈 무섭게 부릅뜬 채, 별안간 총탄 날려, 삽시간에 이토를 명중시키고, 모리를 쏘아 쓰러뜨리노라!
(이토오가 쓰러진다) (모리도 상처를 입는다)
내 비록 저 괴수를 처단했지만, 놈의 생 살을 채 씹어 삼키지 못한 것이 원통하구나! 도무지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저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르며 장탄식을 하노라!
(군인들이 앞으로 달려나온다) (안중근이 크게 외친다)

안중근
너희들은 거칠게 굴지 말라. 놈들을 죽인 것은 나로다! … 나로다!
(안중근이 체포 당한다) (퇴장한다)
퇴장시:
의혈 남아 피눈물을 뿌리니,
얼어붙은 하늘 눈 덮인 땅에 신령스런 위세 떨쳤도다.
형경(荊卿)의 비수며 점리(漸離)의 축이,
영웅이 날린 총탄 하나에도 비기지 못할레라!

심문을 받는 안중근 의사는 당당하다. 자신을 비난하는 러시아 사법관에게 오히려 “당신들의 해악을 없애주었으니 나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사법관
안중근, 너는 어찌하여 일본의 이토 공작을 척살했는가? 너의 동지는 모두 몇 명인지 사실대로 자백하라.
안중근
바로 나 한 사람이오.

사법관
너는 공작과 원한이 있는가?

안중근
나와 놈은 공적인 원수이지 사적인 분노가 아니었소.
조국의 원수와는 하늘을 같이 이기 어려워, 내 진작부터 몰래 작정한 일이니, 무슨 동지가 있을 리 있겠소? 바로 나 한 사람이, 그의 목숨을 샀을 뿐이외다.

사법관
안중근, 그 이토 공작은 우리나라의 칙사와 회담을 가진 국빈이거늘, 네가 오늘 그를 죽게 만들었으니, 러시아와 일본의 국교에 흠집을 내지 않았는가! (안중근이 냉소한다)

안중근
사법관 당신 무어라 했소?
이 만주 땅 한 덩이, 당신네들은 그것 때문에 2년 동안이나 큰 전쟁을 치루었소. 내가 오늘 이토를 척살한 것은 내 마음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위해서 마음 속 해악을 없애 준 셈이니, 당신은 내게 존경하는 심정으로 머리를 조아려야 마땅하거늘, 어쩌자고 일본인을 위해 죄목을 붙여, 거꾸로 있지도 않은 호감을 보이려 하오?

마음 아픈 말 몇 마디, 동포 위해 전하리라
제10곡의 제목처럼 영웅은 형장에 섰다. 그는 “내 한사코 사형수가 되기를 바랄지언정, 망국의 노예가 되기는 원치 않노라”며 자신을 추스린다. 동포들에게 굴욕적인 삶을 살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형을 집행한 병사들도 안중근의 행동을 높이 샀다. “나라 잃은 사나이 돌아갔지만, 큰 이름은 역사에 영원토록 남으리라!”

안중근
내 한사코 사형수가 되기를 바랄지언정, 망국의 노예가 되기는 원치 않노라! 내 이미 그들의 원로를 주륙 하였으니, 아마도 나를 용서할 수는 없으리라. 이 훌륭한 머리는, 차라리 속히 푸른 피(의인의 피) 흙바닥에 뿌리며, 오래도록 한 줌 흙으로 뭍히는 것만 못하리라!

(중략)

안중근
걷고 걸어 황량한 교외 길 두루 돌아가는데, 웬 놀란 넋이 날아가려다 멈칫하는가? 성큼 걸음으로 곧장 앞으로 내달으니, 놀란 사람들 어쩔 줄을 모르네. 내 오늘 몸이 기미성(箕尾星) 타고 가면, 이 시신은 바깥에 나뒹굴 테니, 그 누가 거두어 줄까 싶어, 문득 한 가지 주저하는 마음 더해지누나!

군사들
예끼, 안중근,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어서 형벌을 받으렷다!

안중근
잠깐만! 내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니, 내가 말을 마치고 나서, 형을 집행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들
이야기해라, 이야기해.

안중근
이제 딱히 분부할 건 없지만, 그저 마음 아픈 말 몇 마디, 내 동포 위해 전하리라. 바라건대 국민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다시는 전철을 답습하고 스스로를 망쳐, 남에게 마·소처럼 부려지지 마시오! 만약 떨쳐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 때는 나같은 정혼(精魂)조차도 돕지 못한 채, 그저 지하에서 두 발만 동동 구르는 신세 될 터!
(군사들이 흰 비단을 내놓는다) (안중근을 끌어서 단상에 오른다)

안중근
난 몸가짐도 의연하게, 웃음 머금으며 형틀에 (몸을) 내맡기네. 누가 나를 위해, 피 끓는 사나이 운명하는 그림 그려 줄꼬!
(형을 집행한다) (안중근이 땅에 쓰러진다)

군사들
사법관님께 보고 드립니다. 자객 안중근이 이미 처형되었습니다! (사법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사법관
안중근이여, 안중근! 영웅이라는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함께 퇴장한다)
퇴장시:
사람 죽여 그 역시 목숨 달아나지만,
흰 깁으로 목숨 버리는 것도 나라의 원수 때문이로다.
나라 잃은 사나이 돌아갔지만,
큰 이름은 역사에 천추(千秋)동안 남으리라!

작가는 안중근의 살신성인은 높이 평가했지만 조선의 망국에 대해서는 냉정한 시각을 유지했다. 희곡은 조선의 왕이 굴욕적으로 일본에 끌려간다는 설정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을 발견, 번역한 문성재 박사는 “'망국한전기'는 당시 조선의 망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열강의 외침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에게 위정자들의 실정을 경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며 "지금에 와서는 중국인이 아닌 우리 민족에게 당시와 똑같은 무게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의 망국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또 하나의 타산지석이라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