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그룹 해바라기의 노래 끝말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추억 /잃어버린 내청춘

 

제게 책과 관련된 물리적 노화현상으로 딱 하나를 들라하면

신간소설을 찾아 읽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소설이 오래 전에 인연을 맺은 소설가의 작품일 경우

관심을 갖고서 일단 보관함에 넣고, 소장하는 수순을 가집니다.

 

아주 가끔 차현숙, 이 양반은 뭐 하는가 궁금해서

소설가의 이름을 알라딘 검색창에 넣고 엔터키를 누를 때마다

아주 오래 전 작품만 끌려 나오고 말았는데

당시 구독하던 조간신문 북리뷰 기사를 읽고서야 저간의 사정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중증 우울증과의 사투'

















이 소설집은 긴 시간의 우울증과의 대면을 그린 책이라고 리뷰기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흔히 창작의 고통을 들어 펜으로 핏방울을 찍어 글을 썼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작가의 자살체험을 형상화하였다는 이 소설집이야말로 말 그대로인 셈이었습니다.

















최근작이라해도 벌써 3년 전에 나온 작가의 에세이를 우연히 만나서 요 며칠 읽었습니다.

책에 박경리 선생님과 박완서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있어 옮겨 적어봅니다.

 

하루는 박경리 선생님이 나와 남편을 횟집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흘러가는 말처럼 말씀하셨다.

차 선생, 무슨 병인지 모르겠지만 문학으로 이겨내야 해.”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깐 틈을 두었다가 선생님은 다시 남편에게도

나를 잘 돌봐주라고 당부하셨다.

 

한때 나는 박완서 선생님과 같이 토지문화관에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어쩜 그렇게 소설을 잘 쓰세요?”

“.......”

비결 좀 알려주세요.”

, 비결이 있나.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거지.”

계속 고치면 언제 끝내요?”

질릴 때까지. 다시는 들여다보기 싫을 때까지.”

한 번 고쳤는데 질리면요?”

그 한 번을 반복해. 1 곱하기 1은 영원히 1이니.”

 

입퇴원을 반복하기 십상인 중증의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 가운데

햇볕아래 산책과 삶에 대한 열정을 찾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세상사는 것이 힘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꼭 신작 소설로 만나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차현숙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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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29 0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선생님도 정말 멋진 말씀을 하셨네요. 글을 수정하고 수정해도 끝이 없을을 보여주네요. 1곱하기1은 1이라구요.

니르바나 2025-11-29 17:3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호시우행님^^
박경리 선생님의 삶과 말씀은 정말 품격이 있지요.
대한민국에 박경리, 박완서 작가님이 존재하셨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한 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밑바탕이 되어주신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잉크냄새 2025-11-30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리적 노화 현상이 저랑 같은 증상입니다. ㅎㅎ

니르바나 2025-11-30 16:4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반갑습니다.^^
저만 이런 증상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잉크냄새님도 그러시군요.
잉크냄새님은 여행길을 자주 나서시니까 물리적 노화까지는 아니고 물리적 시간 부족현상이 아닐까 싶네요.ㅎㅎ
 
















첫사랑처럼

                        - 마종기

 

어린 날 몰래 따 먹은 예쁜 살구는

부드럽고 얇은 살결의 촉감이었던지

나를 홀리고도 모른 척 외면하던

시고 달고 떫어서 몸을 떨게 하던 맛

그 시고 맵고 짠 세월 다 참아내고

한평생 힘들게 이겨낸 줄 알았더니

다시 만난 살구는 아직도 신맛이네.

 

온몸을 쥐어짜던 젊은 날의 목마름은

뛰어 노는 아이들처럼 웃고 있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눈치 없이 허둥대며 꿈에 살던 시절.

 

어쩌지?

그런데도 그리운 맛은 단맛보다

그 옛날에 돌아섰던 그 신맛이네.

기다려도 끝내 익지 않던 미소같이

생각도 사는 법도 익숙하지 못했던

풋 익은 인생은 모두 신맛이라는 건지.

 

매혹은 도대체 이유가 없구나.

내 가슴 뭉개버리던 첫사랑의 맛은

살굿빛 사연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허술하던 고백을 빛나게 돌아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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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외에 작가로 음악관련 책도 집필하시고 詩作도 하시고 그림도 그렸던

그리고 특이하다면 특이하게 옥스퍼드 엑서터 칼리지 교수 역할도 하셨던 Alfred Brendel.

지난 여름, 정확히는 617일 영면에 드신 피아니스트 Alfred Brendel

음반이 재발매되어 소개해드립니다.


음반을 전집 형태의 박스세트로 발매하는 경우 거의(?) 모든 음반세트가

음반사에서 처음 제작한 물건이 소진되면 판매처에서 품절과 절판으로 표시되고

뒤늦게 이런 음반세트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됩니다.

품절, 절판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싸게 판매하는 중고 제품을 구매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2016년에 발매되었다 절판되었던 Alfred Brendel의 전집세트가 재발매된 이유는

아무래도 Alfred Brendel의 사망에 따른 음악애호가들의 수요를 예상했기 때문 아닐까요.

다만 재발매로 책정된 가격이 이전 음반세트 가격의 두배 가까이 올라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부담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음반세트를 구성하는 음반들이 이런 것이라면, 오래지 않아 이 음반세트도 품절 , 절판될 운명이라면

이번 기회에 한번 소장하시는 용기(?)를 내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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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의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전교생들의 즐거운 식사를 위해

우리들은 준비된 시그널 뮤직에 맞춰 고정 방송멘트를 하는 것으로 음악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음반 돌려막기도 아닌데 성악가 엄정행의 음반을 거의 날이면 날마다 틀었는데

그 이유는 방송반 라이브러리에 몇장 안되는 LP 사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음 주에 방송될 5일 분량의 방송일지를 결재하던 방송심의위원장(?) 학생과장의

색다른 검열 기준 때문이었습니다.

팝송과 대중가요는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온통 빨간줄로 방송불가를 해대니

매일 틀어대던 곡이라야 가곡과 클래식 그리고 건전가요뿐.

그러니 우리학교 학생 대부분에게는 점심시간의 이 음악방송이 즐겁기는 커녕

일종의 귀고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은 가끔 주구장창 틀어대는 노래에 대해

불만을 직접 토로하던 몇몇 친구들의 전언 때문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당대의 최고 스타였던 테너 엄정행은

지금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인기성악인이었고,

더불어 하루걸러 한번씩 전교생의 귀를 어지럽히던 주인공들은

루치아노 파바로티, 주세페 디 스테파노 그리고 조안 서덜랜드였습니다.

요즘 저는 그때 전교생들의 귀를 소란케했던

조안 서덜랜드와 성악가들의 음반들을 즐겁게 듣고 있습니다.

혹시 또 모르지요.

감수성 예민했던 고등학생 시절 그 노래들이 지금껏 가슴속에 살아남아 절창이 되었을런지.


 












바가텔5


                                          - 황 동 규

 

이 한세상

노래 배우는 새처럼 왔다 간다.

목소리에 금 가면

낙엽 지는 나무에 올라

시를 외우다 가겠다.

기다렸던 꽃이 질 때

뜻밖에 혼자 남게 될 때

다저녁에 예고 없이 가랑비 뿌릴 때

내 삶의 관절들을 온통 저릿저릿하게 했던 시들,

마음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운 떼기를 기다리고 있다.

단 내 시는 아님.

외우다 또 고치려 들면 어쩌게.
























죄송합니다!(먼저 사과)

이상하지요. 내 돈내고 산 책이 아니면 마음이 잘 안가(이를테면 빌어먹을 습성이지요)

걸음으로 5백 걸음밖에 안되는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들을 언제나처럼

대출 마감일에 맞춰 허겁지겁 읽었거나 읽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제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도서관에서 구매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아니면 신간이고요.

헨델의 오페라 <Alcina>의 프리츠 푼덜리히와 조안 서덜랜드의 노래를 들으며 책 한권을 다 읽었습니다.

정말 오후만 있는 일요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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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김학철 선생님은 이런 존재입니다.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던 <김학철평전>의 연보를 살펴보니

김학철 선생님은 저와 같은 항렬의 집안 어르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월북 과정에서 만나 나중에 부인이 되신 부평사람 김혜원여사와 결혼하시고

이 책의 저자이신 김해양 선생을 출생하신 곳, 부평은 제가 성장하고 놀던 곳이었습니다.

 

해방이후, 우리 현대사에선 유사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오히려 대중 인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선생님 같은 순정한 분들은 이리저리 치이며 뼛골에 만 사무치게 만들었습니다.

남과 북의 독재자들 때문에 중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김학철 선생님께서

1987년 민주화와 한중 수교 이후 아주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하셔서

보성고 후배인 소설가 조정래씨를 만나 텔레비젼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상찬해 주시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보성고 선후배 사이라 더 정답게 대화를 나누셨던 기억도 나구요.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그중 뚜렷이 기억에 남은 것은,

많은 인사들이 선생님을 대접한다 해서 유명한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지만

정작 가장 맛있게 드신 것은 대학로에서 먹었던 컵라면이었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더 이상 컵라면을 드실 수 없는 저 세상으로 가셨지만

그래서 저에게 맛있는 컵라면은 오로지 김학철선생님을 위해서입니다.

그후, 적십자병원인가에 입원하셔서 노구를 힘들어 하셨던 안타까운 모습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기사 검색을 통해서 김학철 선생님이 중국에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보았습니다.

태항산 전투의 투사 김학철 선생님의 순결한 삶에 고개 숙여 조의를 표했습니다.

 

올해가 한중수교 33주년이라니 아주 오래 전 중국과 정식 수교 전인 1988,

김학철 선생님이 버젓이 살아 계신데도 불구하고 출판사 풀잎에서 선생님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1987년 있었던 629선언과 1988년에 개최된 88올림픽의 영향으로

비록 중국의 출판물이고 저자와 정식계약을 하지 않아 일종의 해적 출판이지만

당국에서 눈감아 준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이후 창비와 문학과지성사 등의 출판사에서 김학철 선생님의 저작들이 나오다가

2001년 김학철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2006년 상,,3권의 격정시대가

실천문학사에서 나오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출판 계약 문제인지, 책에 대한 수요가 없어선지 한동안 새로운 김학철 선생님의 저작이 국내에선

나오지 않고 선생님이 생존시 거주하시던 지역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다시 출판되어

저는 수입판으로 몇권을 구매하였던 적도 있습니다.

 

오래 전 <격정시대>(풀빛)가 해적판(?)으로 저자 동의도 없이 출판되었을 때 읽고나서

아주 커다란 감동을 먹어 이후 출판된 선생의 저작물들을 빠짐없이 찾아 읽었습니다.

김학철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전집으로 출간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정작 현재는 보리출판사에서 <김학철 전집> 전체 12권 중 7권이 출간되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진행형인 <김학철전집>의 나머지 5권도 빨리 현물대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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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10 14: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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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9-06 1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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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2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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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6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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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9-06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때문에 좋은 책 알아 감사합니다. 김학철이라은 분 몰랐는데 대간하신 분 같아요.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니르바나 2025-09-06 22:44   좋아요 0 | URL
야무님, 반갑습니다.^^
개인전 후유증은 없으셨는지요.
김학철 선생님을 알면 알수록 인간에의 경외감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바람돌이 2025-09-07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서전인 최후의 분대장을 너무 좋아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인생과 어떤 분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예전 kbs인가에서 다큐로 한국에 오신 선생님과 역사에 대해 방영했었는데 마음도 아팠지만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소설 격정시대는 저 해적판 나올 때 해적판인줄도 모르고 읽었는데 이렇게 정식출간되었으니 제대로 읽어보고 싶네요.

니르바나 2025-09-07 17:5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안녕하세요.^^
<최후의 분대장> 많이 좋아하시는군요. 말씀들으니 더욱 바람돌이님이 반갑습니다.
그 시절에 읽으셨던 풀잎에서 출간된 <격정시대>과 <해란강아 말하라>,<무명소졸>은 1988년, 1989년판으로 풀잎출판사에서 선출판하고 이후 서울에 오신 김학철 선생님과 정식 출판계약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그 후 아시는 것 처럼 창비, 실천문학사, 문학과지성사에서 몇권 출간되었구요.
김학철 선생님이 2001년 연변에서 돌아가신 후 2006년 실천문학사판 <격정시대>3권으로 출간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출간소식이 없어 검색을 통해 연변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을 구입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격정의 시대로>는 전에 출간된 <김학철평전>보다 읽기 쉽게
사진자료를 많이 첨부하여 최근 소식까지 업데이트(?) 하였더군요.
보리판 <김학철 문학전집>과 함께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바람돌이 2025-09-07 18:45   좋아요 1 | URL
오 이렇게 상세한 안내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하나씩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니르바나 2025-09-07 19:01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의 전설이신 바람돌이님께서 미천한 니르바나 서재에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람돌이 2025-09-07 19:17   좋아요 1 | URL
헉 부끄럽습니다

니르바나 2025-09-07 19:41   좋아요 1 | URL
제가 내성적이라 먼저 바람돌이님 서재를 찾아 댓글로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어도
바람돌이님이 알라딘서재에서 쭈~욱 맹활약하시는 것을 제 두눈으로 지켜봤으니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