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필시 천생연분 스텝 내지는 MBC에 뭐 하나는 걸쳐놓은 인간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지만 또 천생연분에 대해 쓰려고 한다. 이번에는 막 시작한 남녀의 그 리얼함에 대해 얘기하겠다.
서로 티격태격 하던 종희(황신혜 분) 와 석구(안재욱 분)가 드디어 본격적인 연애질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동생의 친구, 친구의 누나였던 이들의 관계는 빠른 진행을 보이며 연인관계가 되고 무엇보다 이리저리 꼬으지 않고 복잡한 사건도 만들지 않으며 시원시원하게 전개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도 죽을병에 걸리지도 않고 아무나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도 않는다. (요즘 TV에서는 희귀한 병들이 너무 많이 난무해서 자칫하면 기억감퇴를 기억 상실증으로 착각하게 만들 지경이다.)
둘이 처음으로 일을 치는 날. 리얼하다 못해 죽을 지경이다. 석구에게 늘 막말을 해 오다가 조금씩 야릇한 기분을 느끼던 종희는 3천만원을 빌려준다. 늘 술만 마시고 헤어지던 것과는 달리 종희는 과감하게 석구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석구와 함께 집으로 들어간다. 석구도 종희에게 마음이 있는데 6살이라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종희야 하고 부른다. 자고로 연애질에 있어서는 남자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누나 하고 부르지 않는 법이고 여자가 암만 나이가 많아도 누구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법이다. 물론 조금 연애를 진행시켜 가다가 보면 내 주변것들 처럼 어린노무시키하고 부를 망정 처음에는 나이차를 뛰어넘어, 아니 평범한 연인들의 나이차이처럼 행동을 한다.(으례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가 많은 상황) 석구는 종희에게 자기야 하고 불러보라고 하는데 여기서 종희의 행동 및 표정이 압권이다. 평소에는 너만을 사랑했었다 하는 남자에게 지랄하네 라고 말하던 종희였지만 자기란 말을 차마 못 하겠다는듯. 부끄러워서 온 얼굴이 다 활활 타 버리겠다는듯. 자기 한마디 하는데 오만상 뜸을 들인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못할듯 못할듯 하다가도 천천히 머뭇거리며 자..자..자기야 하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당연한 수순으로 둘은 일을 친다. 요즘 젊은것들은 하면서 혀를 차지 않길... 극중 종희의 나이는 서른 여섯이고 집에서는 어디가서 애라도 배 오라고 하는 지경이니까. 일을 치고 난 이후의 종희는 한층 더 어려지고 애교스러워지나 자기라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 더이상 부끄럼을 타지 않는다. 무릇 남녀 관계란 부끄럼이 점점 부끄러워지지 않고 자연스러워지다가 종내에는 뻔뻔스러워 져 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무덤덤해져 버리는 것이니깐. 석구도 종희를 안고 제법 어른스러운척 한다. 그러면 종희. 어린것의 어른스러운 면에 감동하며 행복해 한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질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중간에 끼여들어서 자. 난 없다고 생각할테니 평소처럼 연애질을 해 보셔요 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춰보면 연애는 한없이 유치하고도 유치한 것이다. TV드라마가 아무리 유치하다고 침 튀기며 욕해도 한줌의 연애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내가 유달리 유치한 인간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연애가 시작되면 일단 혀는 짧아지고 못하는 것도 많이 생기고(집구석서 바퀴벌레도 때려잡는 인간이 커피에 설탕도 무거워 못 넣는다.) 한없이 한없이 어려지려고만 한다.
그러나 종희가 잠깐 고민하는 장면도 나온다. 석구의 집안을 보고 헉겁을 하는 것이다. 석구 새엄마와 종희는 기껏해야 6살 차이이고 석구 아버지는 결혼을 하던가 말던가 모르겠지만 우린 일단 돈 없으니 알아서들 하라고 한다. 그렇지만 종희는 그 현실 감각을 오래 못 가지고 간다. 이제 막 시작한 연애질일 뿐 아니라 엄마가 늘 말했던것 처럼 덜컥 애도 가졌으며 무엇보다 쪽팔리고는 못사는 종희에게 석구는 감동작전을 펴기 때문이다. 실상에서도 저런 여자가 있나? 하고 묻는다면 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겠다. 하지만 만약 내가 종희네처럼 부자집 딸이라면 남자가 가난한걸 그렇게 큰 흠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줄줄이 사탕으로 달린 시댁식구는 좀 부담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이 드라마가 나갈 방향은 딱 하나이다. 최대한 닭살스럽고 유치뽕짝이던 종희가 연애시절을 지나 결혼생활에 접어들면서 다시 예전의 나이많은 아가씨 시절의 괄괄함에다 아줌마의 뻔뻔함까지 갖추어 그야말로 물건이 되어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리는 것이다. 예전에 아줌마라는 드라마의 원미경처럼 늘 바보같았다가 이혼하고 나니 갑자기 똑똑해지는 설득력 없는 캐릭터를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