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간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인간이 언제부터 동물을 애완용으로 길렀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한 자료에 따르면 인간과 애완동물의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 북부에서 발견된 1만 2천년된 유물 중 개를 껴안고 있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동물을 길들이고 그 과정에서 사랑과 신뢰가 쌓여서 마침내 동물을 단순한 먹잇감이나 식량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게 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애완동물은 개와 고양이 일 것이다. 물론 특이한 종류의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개와 고양이는 압도적인 수치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애완동물은 단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아닌 그들의 가족이자 친구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애완동물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과거 집 밖에 묶어두고 식은 밥덩이나 던져주던 것에서 이제는 애완용 호텔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한번도 애완동물을 길러보지 않은 사람들은 애완동물 애호가들이 그들의 애완동물에 쏟는 정성을 오바 내지는 미친 짓으로 치부하겠지만 한번이라도 동물을 길러본 사람들은 그 심정을 잘 안다. 실리에 따라 변하는 사람에 비해 그들이 얼마나 충직하며 또 위로와 즐거움을 안겨주는지 말이다.


방송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며 소설가인 주인공 피터 게더스는 어느 날 자신의 여자 친구로부터 새끼 고양이 노턴을 선물 받게 된다. 허나 그는 고양이만 보면 소리를 질러 쫒아내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오죽하면 자신이 정말 가슴속 깊이 느끼고 믿고 있는 것 10가지를 적은 것 중 10번은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였다.) 하지만 노튼의 얼굴을 보는 순간 피터의 이런 생각은 단숨에 무너진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노튼을 처음 보자마자 피터는 시쳇말로 홀라당 빠져버린 것이다.


이 책은 실제 인물인 피터가 자신의 고양이와 함께 한 삶에 대해 적어놓은 글이다. 애완동물인 고양이에 대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서 책까지 냈나 싶지만 막상 읽어보면 배를 잡고 뒹굴게 된다. 원래 작가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의 글 솜씨는 정말로 탁월해서, 만약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고나면 당장 애완센타에 가서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게 만들만큼 매력적이다. 파리와 뉴욕 그리고 캘리포니아와 로스앤젤레스를 일 때문에 돌아다니는 동안 피터는 잠시도 노턴과 떨어져 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피터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까지 변화시켜서 노턴은 유명인사로부터 귀여움을 받는가 하면 특급 호텔에서 VIP고객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흔히 애완동물하면 그저 주인이 먹이를 주면 좋아라하고 남는 시간에는 낮잠이나 퍼 자다가 고무공 따위를 던지면 멍청하게 뛰어가서 물어오는 정도의 재주를 부리는 미물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터가 이 책에 그려낸 고양이 노턴은 어떤 사람 못지않은 감수성과 인간미 (동물에게 적합하지 않겠지만 동물미라 할 수도 없으므로) 매력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마침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노턴같은 고양이가 있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텐데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터 게더스의 뛰어난 글솜씨와 그만큼이나 뛰어난 그의 고양이 노턴이 만들어낸 이 한권의 책은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저 ‘내 고양이 정말 깜찍하지 않나요?’ 같은 말만 줄줄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피터는 노턴과 함께 한 일상과 삶을 그려내고 있다. 오늘은 고양이가 뭘 했고 어제는 고양이가 뭘 하지 않았네 따위의 글로 지루하게 만드는 일은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건 한 인간과 동물이 함께하는 일상이며 거기에 조연은 없다. 인간과 동물이 공동 주연인 것이다.


개나 고양이를 그저 식용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이 무슨 정신나간 짓꺼리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책이 무지하게 재밌다는 것에는 동의 할 것이다. 끝으로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을 쏟는 사람들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진부한 짓이다. 마찬가지로 그 동물들을 식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또 뭐라고 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짓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권리가 있고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잣대를 들이대어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우기는 것이야 말로 야만적인 짓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동물을 소재로 한 책 중에서 발군이라 할 만큼 재밌는 이 책을 만난 건 분명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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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0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12-11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도 애완동물을 기르면 막연하게 고양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르게 될지도 모르므로 이름도 지어놨어요. 셀리. 흐흐.^^ (앞으로 종종 뵙겠습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