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 신파도 그들이 하면 영화가 된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사랑에는 어느 정도의 신파가 있게 마련이다. 남들이 들었을때는 아무렇지 않은 일도 그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언제나 운명이니 숙명이니 혹은 여타 평상시에는 쓰지 않는 단어들이 꽃분홍색 리본이 되어 달라붙는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은 아예 작정을 하고 만든 사랑 얘기. 그 중에서도 신파가 될 소지를 매우 다분하게 지닌 영화이다. 다방 레지를 사랑하는 순박한 시골 청년이 마침내 그녀의 사랑을 얻어서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그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통보까지 받게 된다. 여자는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곁을 떠나고 (그러나 자신이 에이즈인줄은 모른다.) 여자를 찾아 헤매이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남자는 경찰서에서 다시 그녀를 보게 된다. 그녀는 그의 전재산을 찾아주기 위해 매춘부가 되었는데 에이즈인줄 몰랐기 때문. 남자의 집안에서는 그녀를 잊으라고 하지만 그는 끝내 그녀를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가 출소하는 날. 남자는 세상에 다시 없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내용이 아니다. 문제는 저 신파를 어떻게 풀어 나갈 건가 하는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저리가라로 신파인 이 영화. 요즘 사람들에게 과연 이런 내용이 어필할수나 있을지 의심이 갈 만큼 사랑을 시험하는 각종 시련들이 종합선물 셋트마냥 널려있는 이 영화. 사실 시나리오만 본다면 어떤 감독도 어떤 배우들도 도전하기가 꺼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재 관객들을 엄청나게 불러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딱 한가지. 배우들의 힘이다.

시골 다방 레지를 맡은 은하. 겉으로 보기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지라 자기밖에 모르지만 아직 사랑에 대한 열정이 또 착한 마음씨가 남아있는 여자이다. 은하는 전도연을 만나서 다시 태어난다. 너무 뻔한 인물이 뻔해지지 않는 순간인 것이다. 같은 다방 레지라 하더라도 김정은이 보여줬던 억지스러움과 달리 전도연은 매우 자연스럽게 은하를 표현한다. 물론 중간중간 그녀의 고질병인 지나치게 귀여워 보이기로 인한 오바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약 전도연 혼자였다면 이 신파스런 영화는 그렇게까지 관객을 불러모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성공은 뭐니뭐니 해도 은하를 사랑하는 시골 청년 역활을 맡았던 황정민의 공이 크다. 그는 인터뷰에서 전도연이 말했던 것 처럼 별 다른 분장 없이도 그 지역 주민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시골 노총각 그 자체이다. 몸이 근사하지도 피부가 매끈하지도 얼굴이 잘 생기지도 않은 그였기에 아마도 이 역활을 완전하고 완벽하게 소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굴로만 보자면 양동근도 꽤 근사하게 소화했을 것이다.)

황정민은 억지스런 사투리나 순박해 보이기 위해 거의 바보로 보일 정도의 순진스러움을 가장하지 않아도 이 영화에서 완벽한 시골 노총각이 된다. 그것은 비단 그의 생김새 때문만은 아닌 그의 탄탄한 연기력 덕분이다. 여기서 황정민은 연기를 한다기 보다는 감정을 흘러가는 그대로 표현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신파에서 영화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거기다 상대배우 전도연 역시 딱 알맞은 정도의 연기력으로 어찌보면 진부하기 그지 없는 은하를 별 무리 없이 표현해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울려고 작정하고 간 관객들은 울렸지만 어디 얼마나 슬프나 한번 보자 하는 관객들을 울리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꼭 관객을 울리거나 웃기거나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신파를 표방하고 나섰다면 울릴 수 있는 장면에서 좀 더 박차를 가하지 못한게 아쉽다. 그것은 아마도 연출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억지스럽게 감정을 몰고 나가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눈물 한방울을 흘릴 수 있게 하는 것. 이 영화는 그래서 전도연과 황정민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2% 부족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감독은 이 작품을 죽어도 좋아 이후 몇개를 더 거친 다음에 했으면 좋았을뻔 했다. 그래서 좀 더 평이한 감정 표현들에 대해 연습을 하고 나서 신파를 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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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4 0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9-24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흐흐. 보다가 우셨군요. 저는 안울었어요.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눈물까지는 안나오더라구요. 옆에 같이 본 지인은 저한테 쪽팔려서인지 울어놓고는 안울었다고 우기더라구요. 히히. 아직까지도 한국 남자들은 영화보고 우는일이 창피하다고 생각하나봐요^^

마냐 2005-09-24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으으....보고싶당, 보고싶당..........

플라시보 2005-09-26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흐음... 외국에 있으니 한국 영화가 되게 보고싶으시겠어요. 거기 비디오로 출시될때까지 기다리셔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