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의 세계 - 양장본
루돌프 키펜한 지음, 김시형 옮김 / 이지북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이런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가질 않지만 아무튼 그 당시 바우네집 (바우하우스) 을 읽으면서 같이 골랐던 책이 이 책이다. 그리고 한동안 책장에 꽂아만 뒀다가 다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종 방정식과 순열이 등장해서 겁을 집어먹었지만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참고로 내 수학실력은 고3 내신 15등급이 말해준다.) 한동안 거의 열풍을 일으켰던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파보나치 수열은 여기서 아주 초보적인 암호로 등장한다. (따라서 다빈치 코드에는 암호학자까지 등장할 것도 없었다.)

냉전이 끝난 이 마당에 암호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인류는 총과 대포로 싸우는 대신 또 정보라는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 암호란 쉽게 말해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뜻을 숨기는 것이다. 즉 내가 A라는 사람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할때 우리는 암호를 쓴다. 어릴때 나는 여동생과 한 방을 썼었는데 엄마는 9시만 되면 냉큼 불을 끄고 우리에게 잘 자라고 말했다. (그건 잘 자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이제 그만 자라는 명령어에 가까웠다.) 하지만 명령어가 입력되었다고 해서 바로 실천이 되지는 않았던 여동생과 나는 불을 끄고도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끔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로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별로 할 말도 없을때는 그냥 서로가 자지 않고 있다는 신호가 필요했다. 그 신호는 서로 잡은 손을 두번 꼭꼭 누르는 것이었다. 내가 두번을 누르면 여동생도 두번을 누르고, 만약 상대방이 한번을 누르면 그건 곧 잠이 들것같아라는 신호였다. 이것은 우리 둘만이 알 수 있는 일종의 암호였다. 엄마 모르게 우리끼리만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다는걸 상대방에게 알렸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원시적인 암호는 물론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 보자면 일기장이다. 이건 다들 한번씩은 해 봤을껀데 사춘기때. 혹시나 방청소를 하러 들어온 엄마가 일기작을 떡 하니 펼쳐봐서 옆집 개똥이만 보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뛴다 이거이 사랑? 하는 글 따위를 읽을까봐 나만의 암호를 만들어서 일기를 쓰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의 끝은 언제나 같다. 지가 쓴 암호를 나중에 지가 기억을 못해서 결국은 뭔 내용인지 하나도 모른다는. 아. 그때 암호에 관한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그때의 일기에 뭐라고 썼는지 알 수 있었으련만. 아직도 그 일기장은 도무지 뭔 소린지 모를 난해한 단어들로 꽉꽉 차서 해석이 불가능하다.

책에는 간단한 암호부터 실제로 세계 1,2차 대전때 쓰였던 해독이 어려운 암호까지 갖가지 암호를 만드는 법과 암호를 풀이하는 법이 나온다. 그리고 뒷장으로 가면 IC카드 해독이나 컴퓨터 암호까지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암호의 역사를 죽 나열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뭐 정보국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스파이도 아닌 사람이 암호를 알아서 뭣에 쓰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이 책은 꽤나 흥미롭다. 사람이 꼭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만 알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쓸모 없어도 알아놓으면 다 살이되고 피가 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너무 많이 알면 가끔 다치기도 하지만, 아마 내가 너무 많이 알아 다치는 날은 가만 앉아있는데 우리집 지붕에 보잉747기가 비상착륙을 해서 그 밑에 깔려죽을 확률 만큼이나 낮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이 책은 조금 어려워서 단순히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다. 수학도 많이 등장하고 이해를 하는데도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읽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몇 번이고 이해가 갈때까지 다시 읽기를 무한구간반복이 가능했고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읽지 못할 책 정도는 아니었다. (어쩌면 백수가 아닌 직딩이었다면 과거에 그랬듯 읽다가 포기를 하고 던져뒀을 것이다.) 실제로 쓰이는 암호는 물론 책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암호도 중간중간 예로 등장해서 훨씬 읽기가 편했으며 아주 살짝이긴 하지만 어려워빠진 수학 같은걸 왜 할까? 라는 나의 오랜 의문에 이런 매력때문에 수학자들이 수학을 연구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주 한가롭고 또 수학에 큰 거부감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수학 실력은 없어도 된다. 다시 말하지만 나 내신 15등급 이었다.) 한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여태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쓰고나니 품절이군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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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5-04-29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퇴근하긴 전 1시간..무지하게 안가는 한시간에 님의 글을 읽고 넘넘 웃고 갑니다.. 살아 펄쩍 뛰어다니는 표현을 읽고 있으니 잠이 다 달아나는군요..감사합니다.^^

플라시보 2005-04-2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 아 퇴근 전이시군요. 흐흐. 님의 잠을 달아나게 해서 기쁩니다. (기뻐해야 하는거 맞나요? 전 잠이 달아나면 속상하거든요.^^) 퇴근 잘 하시고 주말 재미나게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