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7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기점으로 나는 이시다 이라라는 작가를 완전히 믿어버리기로 했다. 그 전의 LAST와 4Teen에서 이미 이 작가의 매력은 충분하게 발산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믿기는 힘들었다. 어떤 작가들은 두 권 정도의 걸작을 내어놓고 그 이후부터는 줄곧 이전만 못한 작품을 내어놓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시다 이라의 아름다운 아이를 밤새 본 지금. 나는 이시다 이라를 믿어버리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이 책 하나만으로 재밌었다기 보다는 앞으로 이 작가가 얼마나 더 무섭게 발전할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미무라라는 13세 소년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사는 소년에게는 별 문제 없는 엄마 아빠와 남동생 카즈시. 그리고 모델일을 하고 있는 여동생 미즈하가 있다. 카즈시와 미즈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아이들이지만 미무라는 그렇지 않다. 그는 울퉁불퉁한 여드름과 작은 키 때문에 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미무라와 그의 가족에게 큰 일이 닥친다. 동생 카즈시가 여동생인 미즈하와 한반이었던 적이 있는 소녀 가오루의 살해범으로 체포되는 것이다. 책은 소년 미무라의 시선과 지역 신문사 기자인 야마자키의 시선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미무라는 사건을 겪는 당사자로. 또 야마자키는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 이 사건으로 인해 미무라와 미무라의 가족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매스미디어는 이들을 가족을 난도질하고 가족은 그 앞에서 해체의 위기를 겪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말 할 수 있는 줄거리다. 하지만 더 중요한 줄거리는 이 다음부터이다. 그건 소설의 재미를 위해 말하지 않는게 좋겠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는 책의 앞부분만 읽어도 대충은 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시다 이라는 전작 4teen에서 역시 14살의 소년들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미무라 역시 힘든 사건을 겪고 14살이 된다. 4teen에서 겪는 아이들의 상처나 좌절이 그다지 무겁지만은 않았다면 이 소설 아름다운 아이에서 겪는 일들은 어른이라 하더라도 쉽게 넘기기 힘든 일들이다.

이 소설은 큰 사건을 겪은 아이들이 의연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류의 소설은 아니다. 아마도 작가는 어른이 되기 이전.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세상을 보는 자신들의 눈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어른들은 흔히 결정은 자신들이 하고 아이들은 그저 약간의 노력으로 (말 그대로 엄마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형제들과 우애좋게 지내고 등등) 이 세상을 편하게 살 수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온갖 힘든 일들은 다 어른들이 우산처럼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착각일 뿐이다. 아이들은 뇌를 잠시 꺼 두었다가 어른이 되면 다시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이에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라는 것이 있다. 부모들과 선생들은 생각은 자신들이나 하고 아이들은 그저 주어진 일이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언뜻보면 미무라와 그 친구들 그리고 주변의 아이들은 도무지 아이같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이 아이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의 선만 그어놓고 아이들은 딱 거기까지만 생각할꺼라고 믿고싶은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뒤로 되돌려보자. 14살의 우리들은 그랬을까? 돈도 벌지 않아도 되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부모 그늘 아래 그저 학교나 열심히 다니면 만사 오케이였던가? 다른 사람들은 내가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지금만큼이나 사는게 힘들다고 느꼈었고 나름대로 밤을 새워서 고민을 한 적도 많았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를꺼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결코 나 스스로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긴 세월을 사는 동안 우린 점점 딱딱해져 버렸다. 외모가 변한 만큼이나 그 시절을 망각하고 지나가는 14살 짜리를 보면 그래 저것들이 뭘 알겠어 혹은 저때가 좋을때지 같은 소리나 한가하게 해댈 수 있는 것이다.

이시다 이라는 14살을 절대 철딱서니 없고 무모한 아이들로 그려놓지 않았다. 그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줄 아는 존재로 표현해 놓았다. 어쩌면 그게 이미 딱딱해지고 굳어진 어른들인 우리의 머리로는 설마 애들이 이럴까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14살이라는 나이는 어른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을 다 느끼고 생각도 하지만 우리보다 조금 더 순수하고 열린 존재인지도 모른다. 유독 문제만 생기면 너 몇살이야 부터 따지고 드는 한국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겠지만 그들도 어른인 우리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허나 어른인 우리는 쉽사리 인정하지 못한다.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것들이 뭘 알겠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 소설로 보자면 성장 소설일 것이고 범죄 소설로 보자면 또 그 범주에도 들어갈 것이다. 처음에는 미무라와 야마자키 기자의 시선을 한번씩 교대로 보여주지만 뒤에 가면 마치 탐정소설처럼 미무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현대 메스미디어의 상업성과 선정성에 대한 비판과 범죄자를 다루는데 있어 원인이 말로 설명되어지고 납득되어지는 단 몇 가지로 추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시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그 자리에서 다 읽어치우지 않으면 못 견디도록 재밌는 것. 그것 역시 이시다 이라가 가진 매력중 하나이다. 내가 밤을 세워 읽었었던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시간이 될때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면 도중에 다른일을, 혹은 내일을 위해 책을 덮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게 도저히 불가능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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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4-2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을 보고 엇! 새책이 나왔나?! 저도 이전의 두권 재밌게 봤는데..바로 장바구니로 보내야 겠네요^^;

플라시보 2005-04-2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yra;소굼님. 아마 이전의 책을 재밌게 보셨다면 후회하지는 않으실것 같습니다.^^

마냐 2005-04-2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온것두 몰랐는데....많이 땡김다. ^^

플라시보 2005-04-2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이시다 이라의 책을 다 재미있게 읽은 저로써는 이 책 역시 추천하고 싶습니다.^^

픽팍 2005-04-2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녘에 이 책 다 읽었습니다. 정말 님 말대로 한 번 손 잡으면 절대 놓을 수 없는 매력이 담뿍 담긴 책이었습니다. 얼렁 이시다 이라의 모든 책들이 국내에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일본어를 배우기는 뭣하니깐;;;ㅋ전 갠적으로 이 작품이 이시다 이라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함다. ㅋ

플라시보 2005-04-2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이시다 이라의 책은 정말 한번 잡으면 어지간해서는 놓기가 힘든것 같습니다. 4teen 이랑 Last이외에도 지은책이 많나봐요. 흐.. 다 번역이 되면 좋겠어요.^^

로드무비 2005-05-0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눌렀어요.

플라시보 2005-05-03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감사해요. 그나저나 재밌어야 할텐데...흐...^^

픽팍 2005-11-2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비상구 보셨나염? 이것도 이시다 이라님이 쓴 글인데;;;평이 좋아서 샀는데
저는 좀 실망을 하였답니다. 이시다 이라 조심해야 겠어요;;;기복이 좀 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