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우산
이명인 지음 / 문이당 / 1999년 1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때 나는 아주 멍청하게도 진짜 우산이 등장하리라고 믿었었다. 비가오면 비에 젖지 않도록 쓰는 우산. 하지만 소설을 다 읽어갈즈음 그 우산은 그런 우산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커다란 존재가 만들어내는 우산. 그 아래에서 세상에 불어닥치는 비를 피하게 해 주는 우산이 바로 아버지의 우산이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나는 시도 쓰고싶고 공부도 더 하고 싶었지만 싸전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너는 맏이니까' 하면서 싸전에 들어앉힌다. 장사에 취미도 소질도 없던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뜻대로 쌀장사를 하면서 아버지의 눈에 맞는 며느리감을 아내로 맞는다. 그러다 누나와 둘째 셋째는 모두 자신의 길을 찾아서 가자 주인공은 점점 자신의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진다. 그러다 난생 처음 아버지로 부터 독립을 하고 거기서 실패를 거듭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주인공은 문득 느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얼마나 큰 우산이었나 하는것을 말이다.

읽는 내내 소설은 재미있었다. 아버지라는 캐릭터의 독특함도 그들이 쓰는 사투리도 모두 썩 괜찮은 재미를 주었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에 깔린 기본 생각에 대해서는 도저히 동의 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처음에는 아버지 그늘 아래에서 자신의 날개를 펴지 못하다가 나중에 실패를 하고 나니 새삼 아버지아래 있을때가 행복했더라 하는 식의 스토리는 진부하다. 아버지 그늘에 있을때는 그렇게나 못마땅했고 또 자신의 삶이 아닌 마치 누구네집 머슴과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고 나서 아버지가 다 알아서 시켜주고 자신은 그저 그 말을 따르기만 했을때가 행복했었다는 것이 와 닿지 않았다.

소설이 하려는 말은 분명하다. 제목이 아버지의 우산인 만큼 작가는 아버지의 힘이랄지 아버지의 권위와 사랑 등등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이 그냥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 안 되었던 걸까? 꼭 실패를 하고 엎어지고 나서야 그래도 삼시쌔끼 밥 걱정은 안했었던 옛날을 아버지의 사랑을 사탕발림을 한 다음 그리워하는 것은 어쩐지 비겁한 느낌이 든다. 그게 정말 아버지에 관한 그리움 내지는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편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꿈을 접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해도 그렇게 시킨 아버지가 생활이 힘들어지면 그립다는 것에 공감을 하지 못하겠다. 아니 그보다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나 파워로 나머지 식구들의 인생에 우산이 된다는 설정 부터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는 그나마 요즘 세대라고 하기에는 좀 나이를 먹긴 했지만 나보다 더 어린 세대들이 읽었을때는 더더욱 먼 얘기처럼 느낄것 같다.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도 그리고 그 아들인 주인공 나도 모두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가족이 개인이 아니라 한 묶음이며 어찌되었건 내 우산속에 모두 품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100% 주기만 주고 상대의 자유또한 100% 보장을 해 주는 사랑은 없다. 책임을 져 주면 그만큼 그 사람의 삶에 간섭을 하게 되고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그런게 통하지 않는다. 100% 나를 맡기고 100% 충성심을 보이는것. 가족은 더 이상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그런 기본줄기만 아니라면 이 소설은 상당히 재미있고 또 빨리 읽힌다. 어쩌면 작가가 가지는 아버지에 관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더더욱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불만을 더 재시하자면 주인공이 아버지 아래서 고생하는 부분은 다소 디테일하고 길었지만 나중에 독립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빨리 쓰여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호흡이 빨랐다. 거기서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할애했더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RINY 2005-04-0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못할 짓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런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 해요.

플라시보 2005-04-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이 책은 아마 조금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예전 아버지의 권위와 사랑등등)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와닿겠지만 그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면 읽고나서 이건 좀 하며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소설이었던것 같습니다.

2005-04-10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4-10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