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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Piece... Love Peace...
문흥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문흥미의 만화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별 각색작업 없이도 화면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만화인것 같다.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확실하고 연출력도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그녀의 만화는 쉽다. 만화란 다 쉬운게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내 경우를 볼 때. 난 어찌된 일인지 분량이 많거나 등장인물이 많거나 혹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픈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만화를 읽는것이 어렵다. 그래서 늘 중도에 포기를 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문흥미의 만화는 쉽다. 내가 충분하게 읽어낼 수 있을만한 코드이다.
언젠가 냉장고 광고에서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는 시리즈 광고를 낸 적이 있었다. 워낙에 남자들 위주의 세상에서 살다가 보니 나는 그 광고에서마저 반감을 느꼈었다. 집에서 하기는 부담스러운 퐁뒤 요리를, 어떤 고급 식당 못지 않게 근사하게 차려내면서 남자의 방문을 기다리는 여자가 뭣 때문에 여자라서 행복한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꾸 살아보니까 내가 똑같다고 생각했던 남자와 여자는 참 달랐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 두가지 특성으로 그들을 모두 뭉뚱그려 설명할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질 같은건 있는것 같다. 여자로 길러져서 여자이고 남자로 길러져서 남자인 것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언가도 분명히 있다. 이 만화의 경우 여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지만 남자라면 혹시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는게 왜 이렇게 짜증스러울 만큼 디테일하냐고. 어쩌면 그런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느끼는건 비슷라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아니면 여자라서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남자라서 드러내지 못하는 것. 문흥미는 여자라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을 한껏 드러냈다. 그래서 이분법적 논리를 상당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만화를 여자 만화라고 말해야겠다.
총 4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만화는 모두 여자들이 주인공인.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가는 만화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의 얘기를 들을때. 내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 말이다. 마지막 단편인 그여자 사람잡네를 빼면 모두 사랑에 관한 얘기이다. 첫번째 Love Piece...Love Peace...는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사랑에 대한 한 여자의 경험을 그렸고 두번째 자장...우ㄹ면 은 처음과 점점 달라지는 남자의 사랑을 바라보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세번째 사랑은 있었다는 여고시절에 여자들만 한군데 몰아넣고 있는 현실에서 생길법한 동성애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문흥미는 심각한 결론은 내지 않는다. 처음 시작은 꽤나 심각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대안을 찾아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첫번째 단편같은 경우 여자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남자로 지운다. 오직 육체만 탐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첫번째 남자에대한 상처를 두번째로 만난 남자에게서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두번째 역시 남자가 점점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급기야는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배신을 하는 남자를 역시 다른 남자가 가르쳐주는대로 복수하고 그와 새로운 만남의 시작을 암시하는 듯한 결론을 맺는다. 세번째는 심각한 동성애 코드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분명 여자친구에게 여자 이상의 감정을 느꼈던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이 사랑했던, 절대 여자가 되기 힘들것 같았던 여자는 세월이 흘러 친구로 만난다. 그건 여자로 살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주인공의 친구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문흥미 만화에서 단 하나 불만이 있다면 그건 여자 주인공들이 문제가 닥쳤을때 스스로 찾아낸 해결이 아닌 다른 남자로 인해 저절로 형성되어 버리는 소극적인 대안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세 편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이 좀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좋을텐데 그녀들은 마치 '난 여자니까요' 라는 듯이 모두 남자의 손을 빌린다. 벽에 못질을 하고 무거운걸 드는 일에는 남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인생 자체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걸 그녀들은 모르는걸까 아니면 알고싶지 않은걸까?
어떤 성을 가지고 태어났건 간에 변함이 없는것은 자기 인생과 그에 따른 모든 문제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끔 도피처로 결혼을 선택하고 남편이 될 남자가 지금까지의 자기 인생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여자들을 보면 나는 동조도 이해도 할 수 없다. 문흥미의 단편에는 저 밑바닥에 그런 생각을 깔고 출발하는 것 같아 재밌게 읽으면서도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런게 여자라서 행복한걸까? 하다가 안되면 남자라는 존재에게 기대고 그들이 어떤 식이건 결말을 맺어주길 기대할 수 있으니까? 어떤게 여자라서 행복한건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