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전당포 살인사건
한차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골랐을때는 제목에서 오는 제기발랄함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영광 전당포 살인사건. 어딘가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영광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전당포라는 것에서 풍기는 뉘앙스도 그렇고) 무언가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질듯한(심각한 살인사건이라면 굳이 제목에다 살인사건이라고 적지는 않는다.) 느낌이 들지 않는가? 무겁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나는 이 책을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옮기고 주문버튼을 클릭하고 국민은행으로 가서 송금을 하고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 책을 받아봤을때는 판형이 좀 달라서 놀랐다. 하드커버에 꼭 애들 동화책처럼 세로는 짧고 가로는 약간 더 넓은 책이었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거봐. 판형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뭔가 색다름을 추구하는거 아니겠어? 모르긴 해도 이 책 끝내주게 엽기적이고도 재밌을꺼야' 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읽기 전 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한 페이지 두 페이지로 넘어갈수록 점점 이건 아닌데 싶었다. 우선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따위 문체를 쓴단 말인가. 무라카미 하루키로 인해 불기 시작한 심플하고도 심드렁한 문체를 이 작가는 보도 듣도 못했단 말인가. 문장은 길었고 미사어구는 쓸떼없이 너저분하게 많이 붙어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내가 뭘 읽는지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 책을 그만 포기 해 버릴까 하고 생각했었다. 나랑은 코드가 안맞아도 너무 안맞는 문체 때문에 도저히 더 참아주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한번 집어든 책에 대한 예의가 있지 싶어서 절반까지만 읽어주자 싶었다. 그리고 점점 읽을수록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방팔방으로 튀던 문체가 조금은 단순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읽는동안 내가 그 문체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은 처음부터 살인사건이 이미 일어나 있다. 주인공인 차연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떤 노인이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 노인의 파출부로 일하던 원형을 만났던 일을 떠올린다. 같은 라인에 살고있는 소심한 청년 김시민을 만나게 되고 차연은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원형으로 부터 영광전당포 주인을 살해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사실 이 책은 문체가 튄 만큼이나 시점과 내용이 여기저기서 끼여들고 왔다갔다 해서 매우 복잡하다. 처음에는 평이한 백수의 일상을 나열했다가 다시 연애소설 흉내를 냈다가 갑자기 70년대 운동권 얘기를 한다. 그리고 유전자 합성인간이 등장할 쯤에는 대체 이 소설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7~80년대에 대학을 다녔을, 장발 단속이 있었고 무조건 끌고가서 이실직고 하라며 사람을 족치던 시절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 시절에 관한 기억이라곤 대머리 대통령이 저녁 뉴스마다 빠지지 않고 나와서 '보온인은' 하며 말머리를 시작했던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우리가 지나온 역사이지만 6.25가 와닿지 않는것 처럼 그 시절 역시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이 땅에 있는 거의 모든 젊은 세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한차현은 그 시절을 우리에게 간접 경험을 시키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차연과 원형의 사랑을 얘기하고 참으로 느닷없는 리플리컨트 김시민이 등장하고 영광전당포 주인이자 과거 고문 기술자였던 주응달이 등장하고 그에게 고문을 당했던 또 한명의 차연을 등장시킨게 아닐까?

재밌겠다며 집은 책이 결과적으로는 너무 심각해져 버렸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어떤 것도 남는게 없다. 다만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그랬었구나 하는 정도이다. 시대에 대해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경험해보지 않고 오로지 말로만 들은 얘기들이 영화나 TV드라마보다 더 와닿지 않는건 사실이다. 이 소설은 내용도 그렇고 전개 방식도 그렇고 상당히 불편한 책이다. 읽어보라고 권해야 하는건지 별로라고 말려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어느날 갑자기 끌려가서 반 병신이 되어서 나오고 대모가 일상이었던 세대들에게는 기억이겠지만 아닌 세대들에게는 그저 지난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그들이 피를 토하며 얘기를 한다고 해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경험한 이들의 공감을 얻어낸다는 것은 역시나 무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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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0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들에 대해 팍팍 공감토록 해주는 멋진 저작들이 가끔 있죠....하지만 그런게 어디 쥐어짠다고 되는거겠습니까. 제게두 아쉬움이 많았던 책임다. 기대치만 괜히 높았던건 누굴 탓해야하는지, 원.

플라시보 2004-11-0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 책은 좀 중구난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시절을 얘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엄하게 별로 필요도 없어 보이는 리플리컨트들은 왜 등장을 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