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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 제목만 보고는 아주 감각적인 단편 모음집인줄 알았다. 이를테면 아멜리 노통의 부류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첫 단편을 읽고 나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그냥 단순하게 시간을 때워줄 가볍고 재밌는 단편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열번째 단편을 읽다가 나는 저자 로맹가리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다. 그는 이미 1980년도에 사망한 사람이었다. 내가 놀란것은 그에 관한 소개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 글이 요즘에 쓰였을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글은 20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글이었다. 아마 내가 지금부터 한 20년 후에 읽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글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보니 내가 예전에 읽었던 [밑줄긋는 남자]라는 책에서 여 주인공이 언급한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속의 주인공은 로맹가리가 죽었기 때문에 그가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으므로 그의 글을 아껴서 본다고 했었다. 그때 책을 읽으면서 아마 나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것 같은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나는 그녀가 이 작가의 작품을 아껴서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로맹 가리는 인간에 대해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작가였다.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에서 다각도로 인간에 관한 관찰서를 읽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로맹 가리는 관찰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말이지' 같은 시선이 아니었다.
이 책은 총 16개의 단편으로 되어있다. 책이 별로 두껍지 않기 때문에 단편들은 상당히 짧다. 하지만 읽으면서는 짧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읽으면서는 별로 무겁다고 생각이 되질 않는데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는 그순간 무언가 묵직한게 뒷통수를 치는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어떤 휴머니스트, 가짜, 벽,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읽고 난 다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상당히 흥미롭다. 나도 인간이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 내면을 다 알고 있는 나는 내 스스로도 구역질을 느낄때가 있다. 어쩌면 누구나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인 자기 자신에 대해 깊숙하게 내려가본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인간을 고매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현명하게 그려놓아도 인간은 완전하지가 않다. 더구나 인간은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것도 모자라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거짓말을 들여다보기가 무섭다면 이 책은 보지 않는것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구역질나는 진실이라도 진실을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용기를 내어서 보길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렇게 가볍지 못했다. 꼭 물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에서 읽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밌기만 한 책일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