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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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이 책을 샀다고 아는 지인에게 자랑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 우리 문학판에 대해서 뭘 좀 알긴 아니?'

내가 아니라고 하자 그녀는 '그러면 너에게는 상당히 재미없을 책' 이라며 읽지 말것을 권고했다. 그래도 내가 호기심에 못이겨 앞에 몇 페이지를 읽고 그녀에게 '의외로 재밌던데?'라고 하자 그녀 또한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결론부터 말해보자. 문학판을 모르면 재미 없는 책인가? 웃기지 말라고 해라 아무것도 몰라도. 적어도 서점가서 내 돈 주고 책을 사 보기 위해 한번 정도는 어슬렁거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현대에는 책도 하나의 상품이다. 하루에 쏟아지는 새 책만 해도 문화부기자들의 책상을 내려앉힐 만큼이다. 그런 와중에 책의 내용만으로 어필하겠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비록 이 책에서는 책의 제목이나 겉표지같은 외형에 신경쓰는 것을 아주 몹쓸 짓으로 규정지어 놓았지만 책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책은 책이니까 하면서 언제까지나 뒷짐을 지고 제목이나 표지에 연연하는 것은 천한 것들이나 하는 처사지 험험 해댈수는 없다. 그런데 이 책. 그렇게 책 제목과 표지에 신경을 쓰는것을 (물론 책에서는 내용과 무관하게 그저 멋지게만 보이려는 제목과 표지를 선정하는 것을) 침 튀기며 욕해놓은자 답게 표지와 제목에 무신경하다 못해 참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빨간색에다 어줍잖은 삽화. 그리고 원제와 아무 연관이 없는 제목 (원제는 The Book이다.) 인 '책 죽이기'라니. 물론 책의 제일 마지막에 책 죽이기라는 소단원이 나오긴 하지만 이 책 전체가 책을 죽이는 것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것은 아니다. 그냥 The Book이라는 제목을 달고. (아님 그냥 '책' 이라고 직역한 제목을 달고) 좀 더 눈아프지 않은 색을 표지로 결정하고 삽화 같은것도 빼버렸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몇권은 더 팔렸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혐오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업주의적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여기서 여자가 된다. 책을 여자로 의인화시켜 놓은 부분은 꽤나 재미있다. 다만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하하하'하고 웃기만 할 수는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특히나 책이 팔리고 빌려지는 과정을 사창가에서 몸을 파는 여성과 빗댄것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비유였다. 중간으로 넘어가면 내가 아는 지인이 잘난척하며 말했던 문학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문학 작품 하나가 어떻게 상을 타고 또 출판이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곳에는 어느 곳에나 그러하듯 당연하게 온갖 비리가 존재한다. 다만 이 책에서는 그 비리를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비꼬았을 뿐이다. 그녀의 우려와는 달리 이 부분 역시 문학판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충분하게 재밌게 볼 수 있다. 즉 뭔가를 좀 알아야만 알아먹을 수 있는 블랙유머는 아니라는 소리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은 슬랩스틱 코메디의 수준이다. 그러므로 나 같은 인간도 보고 충분히 웃거나 혹은 웃지 않을 수 있다. 그건 재미에 의한 것이지 절대로 뭔가를 못알아 먹어서 웃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라는 발상에서 벗어나 책의 입장에서 혹은 책이 써지고 또 출판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나열한 이 책은 어쩌면 요즘들어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책의 의미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종이 책이 사라지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e-book을 읽기도 한다. (내 여동생의 경유 휴대용 저장장치에 책을 저장해서 읽는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또 그에 맞춰서 발전해 나가고 시행착오를 겪어 나갈 수 밖에. 처음 원고지를 고집했던 작가들이 점점 컴퓨터로 글 쓰는것에 익숙해져 있고 이제는 거의 모든 작가들이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 처럼. 책은 책이나까 반드시 종이의 형태로 된 책으로만 보전되어야 하는 위대한 것 이라는 발상은 글쎄.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소리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아직까지는 책을 종이의 형태로 읽는것이 훨씬 편하지만 과거 나 만큼은 절대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동시에 사고를 하는 글쓰기 만큼은 못 할줄 알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종이와 펜을 잡으면 어색해져 버린 것 처럼 책의 앞날 역시 아무도 모를 일이다.

과거에 비해서 지금은 그 지위가 너무도 떨어져 버린 책의 하소연을 들어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읽는다면 꾀나 재밌는 책이다. 책을 의인화시킨것도 그렇고 과장스런 표현도 그렇고. 다만 아주 웃기는 정도는 아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단 한번도 실제로 웃은적은 없다. 보통 재밌는 책은 실제로 웃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냥 속으로 웃고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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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8-2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으로 웃고 치웠다'...별 셋.
음...책꽂이에서 대기중인 책인데...어쩌나..

플라시보 2004-08-2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효주님. 그럭저럭 재밌습니다. 아주 웃긴책도 그렇다고 재미없는 책도 아닌 중간정도. 읽히는 것도 술술 잘 읽힙니다.^^

마냐님. 흐흐. 일단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빨리 읽히거든요. 그리고 소리내서 푸하하 할 수 있는 책이 그리 많은건 아니니까요^^

털짱 2004-08-2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서재에서도 같은 책에 대한 리뷰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두분 다 개성있고, 재미있네요.^^

비누발바닥 2004-08-27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네여~~아직 읽어 보지 않았지만....짐 읽고 있는 책이 있으니 다 읽으면
읽어봐야겠네요.....님의 글 유익합니다~

플라시보 2004-08-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저도 마태우스님의 리뷰 읽었습니다. 그분은 아주 재밌게 보신것 같더라구요. (실은 그 리뷰를 보고 저 책을 샀지요. 흐흐)

sweetmagic님. 감사..으흐. 왜 저랬을까이... 댐시 고쳤어요. (근데 아무도 지적을 해 주지 않았다는게 신기하군요. 역시 CF가 너무 감동적이었던게야..하하)

비누발바닥님. 저 책이 님께도 재밌기를 바랍니다. 간혹 나는 재밌는데 남들은 재미없는 경우 혹은 그 반대가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