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블루스
김종광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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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속으로 그랬다. '겁나게 웃긴 소설일꺼야'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결과적으로는 겁나게 웃기지도 않았고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 소설들이었다. 분명하게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었건만 왜 저렇게 멋대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소설은 웃기지 않으며 장편이 아닌 단편 소설집이다.

모내기 블루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농촌 얘기가 등장한다. 굳이 나누자면 초반부에는 농촌의 약자들을 그리고 후반부에는 도시의 약자들을 다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약자들이 청승스럽게 등장을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꿋꿋하며 성실하고 가끔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약자를 다루되 그게 먼 얘기가 아닌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처럼 와 닿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내가 제일 재밌었던 단편은 '서점 네시'와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열쇠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배신' 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던 모내기 블루스를 비롯한 일련의 농촌 얘기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줄곳 자란 나는 쌀나무는 어딨어요?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어떤 식으로 벼가 출하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니까 말이다. 서점 네시의 경우에는 상당히 놀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폭력성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지 또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난 폭력에 대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해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꼭 그렇게 징글징글하도록 바닥의 끝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으므로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은 백수의 얘기를 다룬건데 그것 역시 백수의 처절한 삶을 박박 긁어 보여주지 않았다.

열쇠가 없는 사람들은 한심한 회사에 몸을 담고 몇달째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는 회사 사람들의 얘기였다. 나 역시 겪어본 적이 있었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도 몇몇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암담한 앞날과 갑갑한 현실이 너무 와 닿아서 내가 허파가 다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이 책의 백미를 보여주는 '배신' 은 재미 면에서나 계몽 면에서나 뭔가 확실하게 하나 보여주는 단편이었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횡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그게 살아남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인것 같아서 참으로 씁쓸했다. 여자 주인공은 나름대로 그 사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계혁을 해 보고자 했지만 그냥 주저앉게 된다. 사용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또 움직일 수 없는 노동자들 때문에 그녀는 증거들을 자신의 손으로 찢어 버리는 것이다.

배신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타고난 지도자와 타고난 투쟁가는 없는 것이다. 다만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갈 뿐이다. 경리였던 여 주인공은 그냥 널널한 업무를 하면서 제 앞가림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사장의 지나친 횡포가 그녀를 투쟁가로 그리고 사장의 입장에서는 배신을 때리는 나쁜 년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녀처럼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목숨줄이 달려 있는 문제라면 아무도 앞장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비록 호기롭게 갈아 엎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시도에 있어서 만큼은 나 같은 소시민은 진심으로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대부분 도토리 키재기식의 단편들이 난무한 가운데 간만에 만난 개성 뚜렷하고도 실한 단편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상하게도 다른 단편들은 읽을때는 참 재밌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뭐가 뭐였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반면 이 책은 읽는동안 아주 약간의 지겨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도 단편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고만 고만한 단편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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