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내 친구중 한명이 이 영화를 보자고 아주 질기게 졸라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번 놓친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았고 나는 이제서야 이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과는 아주 다른 영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그저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메디쯤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꼭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여러개의 사랑 얘기가 등장한다. 그 사랑은 남녀간이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기도 하다. 영화는 꼭 이렇게 말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랑이건 간에,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사랑은 없어'라고 말이다.

영화의 첫 시작은 공항에서 포옹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깔린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다. 9.11테러때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서 전화를 걸어서 모두 사랑의 메세지를 남기고 죽었다고, 세상이 험악하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는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여러개의 사랑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사랑은 친구의 신부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사랑얘기였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친구의 아내에게 그만 들켜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왕 들켜버린 그 남자는 신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부담을 주거나 어떻게 사랑을 이뤄보기 위해서 고백을 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고백을 하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알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신부는 크게 혼란을 겪지는 않는다. 다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를 가엽게 여길 뿐이다. 그래 딱 여기까지가 영화에서 보고 싶은 사랑이다. 만약 그와 그녀가 사랑이라도 하게 되어버린다면. 이건 내가 영화에서 보고싶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은 전부 일정한 선을 지킨다. 어느 누구도 아주 고통스럽게 사랑하지도 않고 추잡하게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모름지기 영화 안에서의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싫지는 않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 딱 영화같은 사랑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사랑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처절할만큼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어린시절 읽은 동화책에서 공주와 왕자님이 만나면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듯.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후에 왕자와 공주가 서로 바람도 피고 지지고 볶기도 하고 자식 문제로 머리를 싸매는 애기 같은건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건 우리가 원하는 사랑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린 사랑이 생활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랑은 뭔가 특별하고도 일상이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한 무언가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니라는 걸 충분하게 알지만. 또 그렇게 착각하는 이도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책이나 영화에서 만큼은 그 환상 그대로를 유지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표지처럼 크리스마스날 본다면 딱 어울릴것 같은 사랑 얘기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들은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무 슬퍼질수도 있는 영화이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외로운 사람의 말랑한 감정에는 바늘보다 더하게 박힐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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