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부터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이미숙(비주얼이 너무 끝내준다. 연기도 좋지만 나는 이미숙의 비주얼을 능가하는 배우는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꺼라 확신한다.)과 전도연 (연기는 별로지만 다른 여배우들이 지나치게 스타성에 기대는 것에 비해 전도연은 그나마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이 나오고 또 내가 총애하는 이재용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이재용 감독은 정사와 순애보를 찍었었는데 나는 정사도 순애보도 전부 재밌게 봤었다.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개봉하자 마자 봤었다. 그리고 어제 아파서 골골 하면서 비디오 가계를 가서 또 다시 빌렸다. 과연 극장에서 처럼 화면이 아름답게 나올까 싶었지만 그건 극장에서 이미 실컷 감탄을 했기에 이번에는 내용을 좀 더 보고 싶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사촌간인 조씨부인과 조원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조씨부인은 어느날 조원에게 자신을 상으로 내걸고 남편이 첩으로 들이는 소옥이라는 아이에게 임신을 시켜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조원은 소옥이 정도는 너무 싱거우니 혼인도 치르기 전에 남편이 죽어서 9년간 수절하여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숙부인의 정조를 무너뜨리겠다고 한다. 이때부터 조원과 조씨부인의 게임은 시작된다. 조원은 숙부인에게 꾸준하게 작업을 하는 와중 소옥이에게도 작업을 하고 이 작업에 조씨부인도 적극 개입을 한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숙부인에게 빠지고 있는 조원을 보는 조씨부인은 질투를 하게 되고 이 질투 때문에 조원은 죽게되고 숙부인도 자살을 하며 조씨 부인은 가문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참 서글펐다. 결국 진짜 사랑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여자는 남자들이 보기에 답답하고 조신해보이는 여자라는 것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이었지만 조원은 숙부인에게 빠지게 된다. 숙부인의 매력이라고는 내가 볼때 정숙한것 밖에는 없다. 극중 이미숙의 입을 통해서도 표현이 되지만 '생긴것 만큼 말도 어찌나 재미없게 하는지' 또 꾸미고 가꾸는 것에는 한없이 무관심한 여자이다. 천주학을 배우고 봉사를 실천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시대를 거스르는 안목 같은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것이다. 관습에 따라 평생 수절 과부로 살 각오를 하고 있으며 언제든 자신이 능욕을 당하면 찌를수 있게 은장도를 잘때도 이불맡에 두고 잔다. 그런데 조원이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것은 숙부인의 매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한번 자고 난 다음에 벌어지는 일이다. 처녀였던 숙부인과 잠자리를 한 조원은 온갖 태크닉을 쓰지 않아도 감도가 좋았다고 하면서 몇번이나 절정에 올랐는지 모른다고 한다. 즉 조원은 정복했다는 (처녀성을) 것과 감도가 좋았다는 것 이 두가지로 인해 숙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에비해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조씨부인이 결국 조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소위 헤픈 여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와 함께 정사를 벌인 후의 장면을 보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가졌던 그녀. 조원은 그런 그녀를 한번 자고 싶어만 했을 뿐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사실 조원의 숙부인을 향한 마음도 어차피 잠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지만 그것 마저도 조씨 부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조씨 부인은 조원과 비교를 할때 막상막하의 이성편력을 자랑하며 질투를 했다는 것 만으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된다.

정조라는 것은 참 우스운 것이다. 숙부인처럼 내가 너와 사귀니 섹스 또한 너하고만 하겠다. 이것이 정조인가? 아니면 다른 남자와 잘 망정 마음만은 네게 있었다는 조씨부인의 그것이 정조인가! 정조는 마음과 육체가 하나가 될 수도 있고 그 둘 중 하나는 없을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나에게 정조의 깊음에 순위를 매기라고 한다면 마음과 육이 하나가 된 정조에 물론 가장 많은 점수를 주겠지만 육과 정신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정신을 고르겠다.


하지만 그토록 자유로운 성격을 가졌고 섹스에 관해서도 열심히 즐겼던, 그나마 좀 깨어있던 조원조차 여자가 후자인 정신을 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신을 택하게 되면 조씨부인처럼 다른 남자와도 섹스를 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질투도 할 수 있는. 예전에 무슨 모바일 서비스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칠 수 있어야 하는데 조원은 그것보다는 육체적인 정조를 지키느라 자신에게 정복당한 흔적으로 피를 한바가지씩 흘리고 또 질투 같은건 감히 생각도 못하며 죽을때 까지 자신하고만 몸을 섞을 안전한 숙부인을 택했다. 나가서야 개차반처럼 놀더라도 내 마누라 내 여자 만큼은 나와는 달라야 하는 남자들의 심리에 영화는 충실하게 따라갔다.

하지만 결국은 조씨부인만이 살아남았다. 조원은 조씨부인의 질투에 불을 당기고 그 질투대로 가만 있지 않고 설치다가 결국 죽음을 당했고 숙부인은 역시나 정조를 지키느라 자신의 처녀성을 가져간 남자가 죽어버리자 미련없이 얼음강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조씨부인은 집안에서 자객을 보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려고 했으나 벙어리 하인을 데리고 배를 탄다. 언젠가 조원이 꺾어다 주었던 꽃을 비단천에 고이 싸고 말이다. 이로써. 내 생각이지만 영화는 조씨 부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랑도 섹스도 전부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죽어서 사랑이고 섹스고 뭐고간에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떻게 보면 조원과 숙부인은 닮아있다. 남자는 한량이어도 되는 시기였기에 잘생기고 훤칠한 조원은 한량으로서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았으며 여자는 정조를 지키고 열녀문을 하사받고 툭하면 은장도를 꺼내 부들부들 떠는것이 최선책이였던 시대라 숙부인은 27년동안 남자를 한번도 품어보지 않고 정조를 지키며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전부 시대에 딱 맞춰서 산 사람들이다. 그 반대였다면 그 반대로 살았을 것이고 또 시대상이 달랐다면 다른대로. 허나 역시 시대와 관습을 거스르지 않은 정석대로 살았을 것이다.

조씨 부인은 아무리 봐도 매력적이다. 그 성격과 그 외모. 모든것이 그녀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나타내어주고도 남는다.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시대가 이렇게나 지난 지금이라 하더라도 결코 사랑하는 남자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거의 100%에 가깝다. 사랑이 아닌 쾌락으로 섹스를 즐길 수 있다고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있는 여자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은 그런 시대가 아닌것 같다.

걸레 소리를 듣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할수 있게 될 확률은 너무도 희박하다. 하지만 농부 소리를 듣는 남자들은 그래도 짝을 잘만 만난다. 오히려 젊었을때 놀던 놈들이 막상 결혼하면 가정에 충실하다더라 라는 개소리까지 들리는 판국이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여자는 걸레이고 남자는 농부라서? 그래서 다른 것인가? 어차피 똑같은 인간인데 왜 누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되는 것이고 누구에게는 그래도 말이야 막상 결혼하고 나면 어쩌고 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인가.

내가 만약 자유롭게 섹스를 하는 여자라 하더라도 나는 절대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그걸 드러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을 확률이 너무 높다. 그래서 나는 아마 나 혼자만 그렇게 살아갈 뿐 조씨부인처럼 부러 보여주려 하거나 드러내어놓고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숨는것은 비겁하지만 드러내서 총칼을 맞는 것 보다는 낫다.

이 영화는 서글프지만 결론은 마음에 든다. 조씨 부인이 끝까지 자기 사랑을 간직하는 것. 그리고 살아남는 것. 그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내 바램 같아서는 조원같은 쫌생이놈이 아닌 섹스도 잘하고 거기다 생각도 깨어있는 남자를 만나서 잘 되어서는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란다면 아직은. 적어도 지금은 너무 욕심이 과한 것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조씨 부인은 비록 떠났지만 제2의 자신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조씨부인인양 화려하게 꾸미고 앉아있는 소옥이 엔딩 크레딧과 함께 보인다. 그녀는 조씨부인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즐기며, 사랑도 하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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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04-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비주얼합니다. 왜 이 영화를 못 봤을까!

플라시보 2004-04-0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보셨다면 비디오로라도 꼭 한번 보세요. 물론 DVD로 보실 수 있다면 더욱 좋을꺼구요. 후회는 안하실듯 합니다.

플라시보 2004-04-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대단히 아름다운 비주얼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위에서는 다 설명하지 못했지만 의상이며 소품이며 배경이며 모두 하나같이 '아니 우리의 영상미학이 이토록이나 발전을 하다니'하면서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에서의 우리나라의 옛 이미지 하면 서편제같이 다소 칙칙하고 여백만 끝내주게 많은 것만 떠 올랐었는데 이 영화로 인해 바뀌어서 흐뭇합니다. 부디 해외에서 많이 상영이 되어 내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차피 리메이크 작품이니) 영상미 만이라도 좀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발 백의민족 이라는 모노톤을 벗고 색색가지 화려한 컬러의 이미지를 가지길 바랍니다.

마냐 2004-04-0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새벽별을 보며님과 동감. 정말 이미숙의 카리스마, 그녀를 둘러싼 그 모든 아름다움, 표정부터 눈빛, 옷과 장신구, 집까지...화려하다는 표현이 부족한 그 극치미..그것만으로 너무 황홀했어요....칙칙한 열녀인 전도연이 얼마나 빛 바래보이던지...쩝.(실제 제 '드레스 코드!'는 전도연에게 가깝다는 점이 슬프군요...) ...게다가 ㅎㅎㅎ, 배용준이 최근 장동건이 그랬듯 "잘생긴게 연기도 잘하네" 라는 한탄까지 자아냈으니...

플라시보 2004-04-0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미숙씨의 팬이 많군요. 저도 이미숙을 줄곧 좋아했지만 저 영화를 보고는 정말 압도당해버렸습니다. 그 고혹적인 자태와 고급스런 섹시함과 지적인 화려함 (이게 전부 말이 되긴 되는건가?) 한마디로 거대한 블랙홀 같이 저를 확 빨아들였습니다. 천상 배우란 것이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뒤에 아우라가 이글이글 거리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남자 배우와는 또 다른 독특한 여배우의 아우라. 간만에 느낀것 같습니다.

2004-04-09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