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뭐든 첫 번째 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미화된다.
연애만 해도 그렇다.
첫 사랑, 첫 키스는 상대를 불문하고 늘 아름다운 기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나는 처음이라는 것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첫 사랑도 솔직히 누군지 잘 모르겠고 (동시다발이었단 얘기가 아니라 누굴 첫사랑으로 해야 할지 몰라서이다. 이건 아마 사랑을 뭘로 정의내려야 하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첫 키스도 마찬가지다.
사랑 얘기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인간이니 만큼
남들에게 그럴싸한 첫 사랑의 기억 내지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같은게 좀 있어줌직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처음은 그냥 첫 번째로 벌어진 일 정도 이외에는 더 이상 무게를 두지 않는다.
애써 무게를 두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성격인 것 같다.
그런데 얘는 좀 다르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꿈꿨던 일인지라
막상 벌어지고 나니
처음 이라는 것에 대해 비교적 아무 생각이 없던 나 조차도
도저히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보에서 저 용도 불명의 투명 플라스틱 판떼기를 봤을때
아, 이거다 싶어서 냉큼 사와서는 스티커로 된 타이포를 붙여서 저걸 만들었더랬다.
만들어놓고서는 혼자 책상의 여기저기에 두며 흐뭇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 책상 정리를 하다가 문득 저 녀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마치 예쁜 첫 사랑을 다시 만난 것 처럼
저 녀석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만지작거렸다.
두 번째 책을 냈을때도 이 짓을 해 보려고 교보에 다시 갔으나
플라스틱 판떼기는 더 이상 팔지 않았고
스티커형 타이포도 다 써버려서 그냥 있었다.
한참 저 녀석을 보고 있자니
문득 좀 으쌰으쌰 해 봐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처음처럼
마치 처음처럼
그렇게 처음인양.
내게 있어 가장 의미있던 처음인 연애 오프 더 레코드
딱 그만큼만 해도 내 인생은 그럭저럭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