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청소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집 전체를 발칵 뒤집어엎은 다음 거의 밤새 매달려서 정리 정돈을 하곤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심란하거나 당장 넘겨줘야 할 원고가 좀처럼 답이 안 나올 때, 가끔 나는 집을 뒤집는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한동안의 밀린 일을 쳐내느라, 그간 연락을 못한 사람들을 만나느라 연일 강행군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집을 엎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내 작업실로 쓰는 방 하나만 엎었다는 것. 그래도 그 방에 잡동사니가 제일 많은지라 계절이 바뀔 때 옷장 정리하는 것 못지않게 하드했다.
먼지만 뒤집어쓴 채 눈길한번 받지 못하는 장식품들, 그리고 서랍 속에는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앉아 있는지 그 물건들을 내가 전부 어디선가 물어다 날랐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책에 의하면 잡동사니며 쓰레기를 끌어안고 사는 것은 들어오는 복도 나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던데.. 내가 복이 없다면 순전히 이 작업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장식품들을 상자에 담고, 왜 이걸 여기다 그냥 처박아 뒀지 싶은 물건들을 다시 꺼내고, 물건들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었다. 가구 배치를 달리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지만 그런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건 엄두도 나지 않으니 죽으나 사나 그저 잡다한 물건들의 위치를 요렇게 조렇게 바꿀 밖에.. 그러다 장식장 위에 올려 진 납작하고 작은 원목 서랍장을 열어보게 되었다. 주로 다 쓴 통장과 누군가에게 받은 생일 카드,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들의 명함들 속에 그 편지는 있었다.
샛노란 색의 봉투를 보았을 때 나는 그 편지를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라고 생각했다. 대체 누구 길래 편지의 컬러 선택이 이리도 과감하나 싶어 열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썼던 편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봉투보다 더 진한 두 장의 노란색 편지지에는 익숙한 내 글씨가 있었고 편지를 쓴 날은 2003년 7월 8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려 7년 전에 쓴 편지였다. 하지만 편지는 별로 7년의 세월을 견뎌온 흔적 없이, 마치 어제 누군가에게 쓴 편지마냥 해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편지는 사랑하는 Piggy 에게 로 시작되었다. 피기. 그래 내가 피기라고 부르던 남자가 있었었다. 그는 결코 뚱뚱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말라서 인상이 좀 날카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그를 피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좀 오그라들지만 그는 내게 아기라는 호칭으로 불렀더랬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만나는 사람에게 이름이나 당신 혹은 자기라는 말 대신 무언가 우리 둘 만의 언어처럼 비밀스럽게 서로를 불렀던 것이. 뚱뚱하지 않은 피기처럼 나 역시 베이비 페이스의 인간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우린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편지의 내용은 별 것 없었다. 이 편지가 지금 내 손에 있는 걸로 보아 이미 그때도 추측이 가능했었던지 시작은 ‘이 편지가 당신에게 전달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었다. 허나 주지 않을, 혹은 차마 주지 못할 편지에 담기기 마련인 절절함이나 애잔함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우리가 생각보다 오래 만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싸울 때 너무 모질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것,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얘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못 전할 편지도 아니었지만 굳이 글로 써서 주어야 할 만큼의 내용도 없는 그냥 그런 밋밋한 편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 분명 행복해 라고 말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편안했다고 말 할 수 있었던 시기. 불같이 타오르고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라고 말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는 모나지도 않았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무난하다는 단어와 어울리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때만 해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내가 어째서 그런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꽤 오래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그 시절을 기억할 만한 날카로운 추억 같은 것 하나 없을 만큼 아주 평온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결혼을 생각 했더라면 그런 남자와 했을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비명을 지를 만큼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명을 지르며 서로 싸울 일은 없는 사람. 어제도 오늘도 똑같아서 좀 지겹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먼 훗날의 언젠가 적어도 한결 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은 할 수 있는 사람. 나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 가끔은 이 사람이 나를 원하고 있는지 어쩐지 궁금해지지만 그만큼 나에게 자유와 편안함을 허락하는 사람. 그래. 결혼을 했다면 이런 남자와 해야 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밋밋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렇게 밋밋한 편지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남자들에게 쓴 편지는 언제나 절절했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글로 내 마음을 전할까, 아니 실제의 내 마음 보다 그가 더 감동하고 감탄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행여 헤어지게 되더라도 나중에 그 사람이 내 편지를 다시 꺼내어보면 내가 이렇게 근사한 여자와 왜 헤어졌을까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었다. 그러니까 나는 편지의 힘을 너무나 맹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쓴 편지는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 내가 전달하려고 했던 것 보다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전달 할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나는 편지를 쓰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문장 대화가 가능한 메신저와 절대 분실사고가 일어날리 없는 이메일은 생각보다 빨리 종이 편지를 대신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은 정말 까마득히 오래전 일이다. 왜 내 글씨는 이 모양일까 생각하면서, 여분의 편지지가 없으면 행여 잘못 적을까봐 조심하면서 적었던 기억은 사라졌다. 대신 나는 전화를 하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그래서 내 마음은 그만큼 간편해졌고 짧아졌다.
최근에 딱 한 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려고 시도를 한 적이 있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종이에 손으로 쓰는 편지는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감정 과잉처럼 느껴졌다. 최대한 심플하고 캐주얼한 말들만 한다 하더라도 편지는 그 하드웨어적 이미지에서 이미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이제 세상에는 편지를 대신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으므로. 그래서 편지를 쓴다는 것은 무언가 굉장한 마음을 담은 굉장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글을 다 써가는 지금 나는 그 노란 편지를 잘게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감정들을 보관한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 그 편지를 보면서 나는 편지만큼이나 밋밋했던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늘 그러했듯 그 잠깐의 되새김 이후에는 그를 잊고 살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편지를 쓰지도, 그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행여, 만약에라도 지난날 나의 과장스럽고 구구절절한 편지를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제 그만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나도, 그때의 당신도 이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