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 안에 든 내용 뿐 아니라 책의 그 하드웨어적 이미지도 좋아하며 

내 집 안에 책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잘 빌려주기도 하고, 

때론 어떤 이들에게 자신이 읽은 책을 주기도 하지만 

솔직히 나는 책에 대한 물욕을 버릴 수 없기에 

빌려주는것도 주는일도 (사서 주긴 하지만 내 책을 주진 않는다.) 거의 없다. 

책을 워낙 빨리 읽는 편이라  

어릴때부터 내 방에 읽어야 할 책들이 쌓인적이 거의 없었다. 

매번 책은 내게 갈증을 느끼게 했고 

그 갈증이 궁극에 달할때 비로소 내게 찾아와 단비를 내려줬다. 

그래서 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언제나 아쉬움 부족함 등의 단어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내 친구와 나의 꿈은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두고 

그 옆에 앉아 맛있는 과자를 집어먹으며 

책을 야금야금 읽어대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하며 친구와 나는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에게 책이란 

한 권을 읽어치우기가 바쁘게 또 한 권을 사야하는 것이었지 

몇 권을 사놓고 천천히 읽을 수 있는 형편은 되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 

책을 살 여유가 조금 더 생겼지만 

그래서 알라딘에서 가끔 꽤 많은 책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것들은 너무 빨리 소모되었다. 

읽어도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은 끝이 없었고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나를 유혹했다. 

책을 읽어서 딱히 뭘 하겠다든가 하는건 없었다. 

그저 책 읽는게 취미였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른 내 성정에 

책은 딱 맞는 취미이자 놀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읽지 않은 책들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까지 쌓여있는 것이다. 

이 모든게 가능한 이유는 그만큼 내가 경제적인 여유를 갖춰서가 아니라 

5년 동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책 소개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교보문고에서 협찬을 받다가 

얼마전부터 내가 직접 출판사에 전화해서 협찬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교보문고를 통한 협찬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수고스러워야 하는 일이므로 

읽고싶은 책을 마음껏 고르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신청한 책의 100%를 다 받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그 일을 하게 되자 

일일이 전화를 거는 번거로움만 참는다면 

내가 원하는 책은 거의 모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협찬 책들이 도착하는 기간이 되면 

내 집 인터폰은 쉴새없이 울려댔다. 

그리고 각 출판사에서 보낸 책과, 담당자의 명함과 보도자료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끔은 방송을 위해 책은 거의 읽지도 않고 

보도자료에 의존해서 원고를 쓰기도 한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되도록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방송을 위해 내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책을 선정해야 할 때면 

종종 그런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나는 라디오에 나가서 말한다. 

마치 그 책을 읽은 사람처럼,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세요. 라고.. 

지난달에 도착한 협찬 책들 중에 

반 이상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런데 2월이 되어 나는 또 협찬 책을 고르고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협찬을 부탁한다. 

대체 쌓아둔 책들은 언제 보려고... 

거기에다 또 다른 새로운 책들을 추가하다니. 

언젠가는 다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요즘의 나는 집에서 거의 책을 보지 못한다. 

늘 할 일들이 쌓여있고 

주로 잠들기전에 책을 보던 습관은 불면증으로 인해 사라져버렸다. 

(약을 먹고 책을 읽으면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다음날 까마득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속도가 놀랍도록 느려졌다.  

요즘에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부러 시간을 내서 카페에 간야한다. 

가서 커피를 시켜놓고 책을 읽는다. 

왜냐면 거기서는 책을 읽다말고 원고를 쓴다거나 빨래를 돌린다거나  

느닷없이 설거지를 하거나 카레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 권 한 권 돈을 주고 샀을 때 보다 

책의 좋은 내용들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책이 내게 가지는 가치는 조금 떨어져버렸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다못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어쩐지 오래된 연인의 사랑처럼 

조금은 무덤덤해져버린 기분이다.  

올해들어 내가 산 책은 딱 한권이었다. 

백년동안의 고독. 

그러나 아직 읽지 못했다. 

나의 책 욕심이 

처음으로 미워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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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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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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