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왠지 밖에 돌아다니고 싶은 날이었다. 

집에서 작업을 하는것도 그렇다고 집안일을 하는것도 내키지 않는 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에는 너무도 좀이 쑤시는.. 

그렇다고 TV를 켜고 멍하게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음... 생각해보니 원래 약속이 잡혀 있긴 했었구나. (친구들과 아바타를 2번째 관람하기로 했었다.) 

아무튼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아바타를 보고 늦은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가끔 글이 써지지 않을때 노트북을 들고 나가서 일을 하는 illy로 향했다. 

내가 그 illy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 커피 맛이 괜찮다. (일리나 라바짜는 다른 커피 체인점보다 커피맛이 확실히 좋은것 같다. 아마도 커피 전문점 브랜드가 아니라 원두 브랜드라서 그런가보다.) 

둘째, 흡연실이 몹시 쾌적하다. (원래 그 장소는 그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간단한 다과와 함께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아무도 회의를 하러 오지 않아서 그냥 흡연 가능 구역이 되어버렸다.)  

셋째, 교보문고가 바로 앞에 있다. 

넷째. 국민은행 CD기가 있다. (집 근처에는 하나은행 뿐인데 나는 원고료 통장이 국민은행이라 돈 확인은 되지만 어디서 얼마가 입금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런 나를 두고 다들 인터넷 뱅킹을 하라고 하지만..글쎄다. 한때는 했었는데 안하니까 또 안하게 된다.) 

다섯째, 스타벅스가 바로 위에 있다. (가끔은 일리 커피가 아닌 스타벅스 커피가 땡길때가 있다. 스타벅스는 흡연실도 없고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려서 카푸치노 벤티 사이즈를 시킨 다음 우유를 조금 더 넣고 마시다가 일리에서 에스프레소를 시켜서 섞어 먹으면 내 입에 잘 맞다.) 

여섯째, 스템프가 있다. (그냥 들르는것 이외에도 교보 협찬을 받을때면 늘 가야하기 때문에 스템프가 있는게 좋다. 다 찍은 다음 공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최고다. 게다가 당일 교보 영수증을 들고가면 10% 인가 15% 인가 할인도 해 준다.) 

illy 에 도착해서 우리들은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시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부드러운 티라미스를 시켜서 먹었다. (일리 티라미스는 케잌 형태가 아니라 컵에 푸딩처럼 담겨서 나오기 때문에 그 부드럽기가 케잌류와는 비교 불가능이다.) 

온갖 얘기들이 오갔다. 

사는 얘기, 일 얘기, 그리고 요즘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바라는지에 대해. 

대부분 미혼인 우리들은, 그러나 결혼에 대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그건 뭐랄까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때가 찾아오면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 얘기도 잘 하지 않는다. (내 남자 얘기 같은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나는 그 자리 만큼은 연애카운슬러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너무 편하고 좋다.) 

영화나 책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각자 재밌게 봤던 영화나 책을 서로에게 소개 해 준다. 

물론 가장 많이 책 소개를 하는 사람은 나다. 

나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책도 많은데 그런 책들에서 왕왕 보석같은 작품들을 찾아 

내니까. (그래서 이들의 집에 가 보면 내 서재의 미니 버전같다. 내가 권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걸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 한 사람은 바이올린 레슨을 하러 나가고 

나는 라디오 방송이 있어 나갔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계속 얘기를 하고, 얼마 후 레슨이 끝난 아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다시 도착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우리가 가려는 곳은 너무 맛있고 가격도 저렴한 곳이라 예약 없이는 

거기서 뭘 먹는게 불가능한 곳이었다. 다른 곳에서 먹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나와 또 한 친구가 그 

곳에 가 본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예약을 잡으니 8시 30분 이후에나 자리가 난다 

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다. 

차 따위로 물배를 채울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고픔을 극한으로 몰아 붙여서 밥이 나왔을때 정말 맛있게 먹자고. 

그리하여 노래방을 갔다. 

보통 노래방을 가면 

사람들은 남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호응해 주는 척 하면서 자신이 부를 노래를 찾는다. 

그리고 노래방에서는 노래가 끊기는 일이 잘 없다.  

끊임없이 예약 번호들이 밀려있다. 

그러나 우리가 노래방을 가면 좀 다르다. 

우린 일단 앉아서 얘기를 한다. 

주로 실없는 얘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야, 그래도 노래방인데 노래 좀 불러야하지 않냐?' 하고 말 

하면 그제야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자주자주 끊긴다. 

그리고 남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자신이 부를 노래를 찾지 않기 때문에 

한곡 한곡 호응이 장난이 아니다. 

어제 최고의 곡은 박진영의 '허니' 였다. 

어쩜 그 오래된 노래의 율동을 우리는 그다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단체로 가서 이거 꼭 한번 불러보기 바란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허니의 춤 동작들이 다 생각나서 일제히 군무를 추게 될 것이다. 당시 워낙에 유명한 곡인데다 안무도 어렵지 않아 모르는 사람 거의 없다.) 

그 다음은 방송하는 친구와 디자인하는 친구가 두엣으로 부른 아브라카다브라. 

그들의 춤도 춤이었지만 그 야시시한 눈빛이란... 아... 여자인 내가 봐도 죽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극도로 굶주린 상태가 되어 8시 20분쯤 노래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 식당으로 갔다. 

식당의 모든 매뉴는 균일가. (균일가 세일도 아니고 나참 레스토랑 매뉴가 균일가라니 재밌지 않은가.) 

보통 하나를 시키면 2~3인분 용으로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많은 양이 나온다. 

고기를 못 먹는 나를 배려해서, 그리고 서른 넘어서는 밀가루가 아닌 쌀을 먹어야 한다는 한 친구 

의 주장에 따라 새우 볶음밥과 연어 샐러드를 시켰다.  

새우 볶음밥의 새우는 굵직하니 컸으며 연어 샐러드의 야채들은 아삭하니 싱싱했다.  

접시를 싹 비운 다음 우리는 누가 뭐랄것도 없이 일제히 거울을 꺼내 얼굴을 봤다. 

이빨에 뭐가 끼지는 않았는지, 앞머리는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얼굴은 번들거리지 않는지. 

끝으로 각자의 립스틱과 립글로스를 꺼내 입술 화장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그리고 레몬 맥주를 한잔씩 시켜서 마셨다. 

이제 그만 헤어져도 괜찮았지만, 그럴만큼 이미 충분하게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어쩐지 우리는 아쉬웠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차를 마시기도 싫고 술을 많이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 한명이 새로 뚫었다는 레스토랑겸 술집에 가서  

샹그리아를 마셨다. 

사실 바이올린 하는 친구와 나는 와인을 마셔도 드라이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샹그리아가 그다지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나머지 친구들은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먹었다. (그 안에 과일까지 싹 다 건져먹었다.) 

그리고 술이 한잔씩 들어가자 드디어 우리의 주 특기인 야한 얘기가 등장했다. 

그 중에 우리가 야동꼬마라고 부르는 이가 있는데 

아... 그녀를 통해 나는 진정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였고 

새삼 내가 쓴 첫번째 연애 책이 부끄러웠다. (너무 착하고 얌전했던거지..) 

이날 최고의 어록은 절륜JJ. (이거 뜻은 차마 못 밝히겠다.) 

내 이름의 이니셜인 JJ가 들어가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아비가 내 이름을 그리 지은것을.. 

여자들이 하는 야한 얘기들은 너무 재밌다. 

그러나 남자가 야한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나는 모욕감 같은게 든다. 

나를 모욕하려고 하는 얘기도 아닌데, 남자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너무 불편하다.  

우리가 센트로 펠리스 보살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야한 얘기가 아닌 뭔가를 맞추는 것에 도통한 친구다. 

그는 얼굴만 척 보면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맞춰낸다. (성격 말고 성 적으로..) 

우리는 그녀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남자들을 다 얘기했다. 

얘는 어때? 쟤는 어때? 

그러다 마침내 아는 남자들이 다 떨어지자 

이번에는 누구나 알법한 연예인들이 등장했다. 

그녀는 매우 디테일하게 그리고 꽤 신빙성있게 그 연예인들의 스타일을 맞춰냈다. (사실 맞춘건지는 알 수 없다. 왜냐면 우리들 중 누구도 그날 등장한 연예인들과 불타는 하룻밤을 보낼 가능성은 제로이므로) 

그 레스토랑은 입구에 8명 이상 단체손님 불가, 너무 크게 얘기하거나 웃고 떠들면 퇴장당한다는  

문구가 적혀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부모들 몰래 다락방에 올라가서 각자 마음에 드는 남학생을 고백하는 소녀들처럼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이건 좀 쓰러지며 웃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 대목들이 등장했으나 

애써 참으며 옆사람을 치면서 웃거나 테이블 위에 조용히 엎어지는 것으로 대신했다. 

샹그리아를 다 마시니 시간은 밤 12시 

생각해보니 낮에 만난 시간이 그쯤이었다. 

물론 바이올린 하는 친구와 나는 중간에 일을 하러 다녀오긴 했지만 

무려 12시간을 함께 있었던 것이다. 

남들 같으면 서로 쳐다만 봐도 징그러울만도 한데 

그래도 우리는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울때 떠나라 라는 말을 주억거리며 (박수칠때 떠나라였던가?) 

각자 택시를 잡고 헤어졌다. 

누가 누구를 바래다 주지도 않고 누가 누굴 기다려주지도 않고 

그냥 줄을 서서 순서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헤어졌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오늘 정말 재밌었어 다음에 또 봐' 따위의 문자는 서로에게 보내지 않았다.

한 달에 두 번. 

나와 내 친구들은 그렇게 논다.  

각자 따로 따로도 만나지만 모두 모이는건 한달에 두 번. 적으면 한 번. 

그러나 그냥 넘어가는 달이 있으면 섭섭하다.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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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1-2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맹맹한 소리로 노래 처음 나오는 "우웅~ 허어니이~" 이건 제가 잘하는 편입니다.(우엑!)

플라시보 2010-01-27 16:25   좋아요 0 | URL
하하하 육성으로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원래 그 부분은 코메디언 정선희씨가 했던거 맞죠? (맞나?) 아무튼 그 뮤직 비디오에서 고소영이 놀랍도록 아름답고 섹시하게 나왔다는 기억이 나는군요^^

토토랑 2010-01-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그 야한 이야기에 끼어보고 싶어요 ㅜ.ㅜ 너무너무 궁금해요~~

플라시보 2010-01-29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랑님. 흐흐흐. 완전 재밌어요. 저도 끼워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