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겠지만  

내게는 이른바 뾰족 구두로 불리우는 하이힐형 구두가 하나도 없다. 

겨울에는 어그 부츠와 납작한 세무가죽 부츠로 버티고 

봄, 가을에는 운동화와 남성용마냥 투박한 구두로 버티고  

여름이면 샌들이나 버켄스탁 쓰레빠를 끌고 다닌다. 

(비가오면 왕왕 장화도 신는다.) 

 

오늘 쇼핑을 하러 갔다가 

양가죽이라 엄청 부드럽다는 점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뾰족한 하이힐을 샀다. 

킬힐 까지는 아닌데 

맨날 낮은 굽의 구두만 신던 나에게는 '킬' 그 자체였다. 

 

점원의 말과 달리 

신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뛰어 다녔더니 

어느새 내 발등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다행스러운건 뒷꿈치는 전혀 까지지 않았다는 것. 

이 신발이 나에게 길들여지려면 얼마나 걸릴까? 

혹은 내 발이 이 신발에게 길들여지는 걸까? 

새로산 신발은 예쁘기는 하지만 

언제나 내게 그것에 합당한 적응의 고통을 안겨준다.  

구두 하나에 적응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사람에게 적응하려면 대체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적응했다고 믿었는데 

어느순간 보면 딴 사람 같이 멀리 느껴질때, 

나와 꼭 맞는다고 생각했고  

서로에게 충분히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걸 느꼈을 때. 

그럴때 나는 생각한다. 

새 구두 보다 헌 구두가 좋고 

새로운 사람 보다는 옛날 사람이 좋다고...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자꾸 옛날 사람들만 만나게 된다.  

그것의 익숙함과 편안함이 

나를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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