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알라딘을 시작한 2001년 무렵부터
여기의 비밀번호는 늘 그의 이름이었다.
자판은 영어키로 둔 채
한글로 치는 그의 이름은
칠때마다 내게 말 하는 것 같았다.
그를 잊어서는 안돼.
그를 지워서는 안돼.
어쩌면 그가 니 인생의 마지막 사랑인지도 몰라.
그래서
비록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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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비밀번호였지만
여기 들어올때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누르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아프기도 했었다.
오늘 비밀번호를 바꿨다.
이제 그의 이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내가 외우기 쉬운 것으로.
또 이메일이랄지 다른 모든것에 걸려있는
똑같은 그 비밀번호로 바꾸었다.
비밀번호를 하나로 통일하면
비밀번호를 잃어버렸습니까? 따위를 클릭할 일은 없다.
수 많은 아이디를 잊었으면 잊었지
똑같은 비밀번호. 그 단 한 개를 잊긴 힘드니까.
내가 비밀번호를 바꾼 이유는
그를 잊어서가 아니다.
그를 지워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어느 날 부터인가
그의 이름을 치면서도
더이상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줄 알았다.
죽을때까지 못 잊을 줄 알았다.
아니, 죽어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언제까지고 나는
그를 떠올리면 괴롭고 힘들줄 알았었다.
그런데 8년만에
내 안에서 그는 깨끗하게 도려내져버렸다.
기억은 나지만
그 기억이 더 이상 아무런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으니
그건 도려내진거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살다보니
어느 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랄 밖에...
그는 잘 지내고 있을까?
가끔씩 그의 안부가 궁금하다.
건너건너 들리는 그런 소문으로의 그가 아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며 사는지
아주 가끔은 궁금하다.
그렇지만 그 궁금함 때문에
아프지는 않다.
더이상. 그렇다.
십년도 못 가는 내 사랑
십년도 채우지 못하는 내 마음
십년도 유지할 수 없는 내 그리움
참 가볍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는걸
이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