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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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장 소설을 싫어한다. 이미 충분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읽을필요 없음 때문은 아니고  다만 그냥 특유의 분위기 같은게 싫었다. 다 잘될거야. 뭐든 열심히 하면 되는거야 하는 뜬구름잡는 낙관적 파이팅.  넌 아직 어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더 힘든 어른이 되어야만 하니 지금은 그냥 좀 참으렴 같은 훈계인지 협박인지 모를 미묘한 경계선의 어딘가쯤에 걸쳐있는 내용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들은 창조한 인물이 어른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겠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애 어른 같은 애들 (그러나 겉으로는 문제아) 이 한결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껏 앞으로 나아간척, 그래서 '어때? 니들이 보기엔 꼰대에 불과한 어른인 내가 제법 니네 마음을 잘 알지 않니?' 하고 과시하는 듯한 허무심드렁주의적으로 나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호밀밭의 파수꾼도 싫었고 완득이도 그저 그랬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불면증 때문이다. 의사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언제부턴가 수면제를 보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차라리 잠을 못자면 못잤지 쌩으로 버텨보자 싶어 며칠째 근간에 보기 드물게 책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구입했거나 혹은 읽고 싶었던 모든 책이 똑 떨어졌고 그때에 마침 협찬을 받은 이 책 한권만 남았다. 보자마자 생각했다. 완득이 작가? 오...성장 소설로 또 상을 타셨어? 정말 성장소설 좋아하시나보다. 이 생각은 적어도 프롤로그를 읽을 때 까지는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 첫 장이 재미없는 책은 끝까지 재미없을 확률이 거의 95%이다. 왜냐면 쓰는 작가도 초장에 독자들을 휘어잡아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썼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없다는 것은 그 책이 원래 재미없는 책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다섯 페이지 정도 넘겨도 더 이상 재미가 없을때는 과감하게 그 책을 접어버린다. 내가 그렇게 재미없는 책을 붙들고 씨름하기에는 세상에 재미진 책들이 너무 많으니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저드 베이커리는 꽤 많이 봐준 셈이다. 약 14페이지 정도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작가. 이 책 왜 썼을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책의 뒷날개를 봤다. 그런데 거기에 적힌 이 책의 리뷰가 심상찮았다. 약콩이 익는 동안인지 끓는 동안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잘 안나는 소설가 권여선의 리뷰는 같은 동종업 종사자끼리의 상부상조 정도로 본다 하더라도 김지운 감독의 리뷰는 심상치 않았다. 내가 뭐 딱히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 사람은 부탁이나 인맥을 이유로 이런 리뷰를 써 주지는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끝까지 재미 없으면 권여선과 김지운과 방은진까지 싸잡아 미워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누군가는 이 책을 보면서 '그래 우리도 헤리포터 못잖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마법 판타지 소설을 구축해낸거야' 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거야말로 소설판 인생극장 (기억하는지 모르겠다만 빠밤빰 빠밤빰 하는 음악과 함께 이휘재와 이문세가 나왔던) 인거지' 하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냥 뭣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성장 소설이 아니라고. 뭐 성장기 청소년이 본다고 딱히 유해할 소설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들만의 책으로 묶어두기에는 우리에게도 해당사항이 너무 많은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물론 주인공은 성장 소설답게 16살이다. 거기다 그 아이가 위저드 베이커리와 관련해서 겪는 일은 일면 유치하기도 하다. (이 나이쯤 되어서 아직까지 마법같은게 먹힌다면 순수한 인간으로 살 수 있었음을 신께 경배와 찬양으로 감사드리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외의 일들은 우리와 너무 가까이 닮아있다. 우리의 가장 추악한 부분들 어쩌면 그럴듯하고 고급스러운 어법들로 포장한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그 수많은 잘못들과 너무 닮아있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뜬금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이미 잊었고 극복했다고 믿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위저드 베이커리 점장에게 짠한 연민을 갖지만 외려 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더 갖게 되었다. 인간들이 이렇게나 못났음에 또 이렇게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존재들이라는 것에 대해.  

책의 끝 부분은 마치 인터렉티브 영화처럼 독자에게 두 가지 결과를 선물한다. 어떤게 디렉터 컷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 결과는 참 많이 닮아있다. 마치 영화 나비효과처럼 어떤 선택을 하건간에 그 큰 맥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물론 후자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긴 하지만 글쎄다. 적어도 낮부끄럽고 손발 오그라드는 희망은 아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권의 책을 집어들고 밤을 새서 다 읽어본 것이 말이다. 대게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읽는동안 딴짓이 하고 싶어지는데 이 책 만큼은 적어도 그 정도의 힘은 충분하게 갖고 있다. 다만 프롤로그에서 '뭐야 이건?' 하고 생각하며 던지지 않고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말이다.

끝으로 이건 진짜 궁금해서 하는 말인데 성장소설은 뭘로 분류를 하는걸까? 주인공의 나이가 만18세 미만이면 성장소설인가? 나는 어째서 이 책이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속의 장르. 액자 속의 액자에 갖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궁금한것은 작가가 이 모든 것을 상상했다면 그는 괴물일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토록이나 리얼하고 디테일하게 현실의 공포를 조근조근 나열할 수 있다면 분명 그렇다. (오히려 마법사의 부분에 대한 상상력은 그저 그랬다. 차라리 작가가 그려낸 주인공의 현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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