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 Castaway on the Mo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기대가 컸다. 설정 자체가 굉장히 웃길것 같았다. 차를 타고 지나치는 한강의 방섬에 한 남자가 표류하다니. 케스트 어웨이의 코믹 버전쯤 되겠구나 했었다. 거기다 주인공은 정재영이 아닌가. 아마 '아는 여자' 를 본 사람이라면 그 처럼 어이없고 실없는 캐릭터를 진지하게 연기해낼 수 있는 인물이 흔치 않다는 것에 동의 할 것이다. 그라면 방섬 아니라 뚝섬 뭐 어디라 하더라도 충분히 표류할 수 있을것 같았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감독의 조급증이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적어도 1분에 한번씩은 웃음을 터트려야겠다는 강박증마저 보인다. 그래서 도입부에서는 상당부분 덜컹거린다. 물론 재미있다. 하지만 어째 감독이 너무 애쓴것같아 약간은 안쓰럽기까지 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부로 갈수록 감독은 이 영화로 무슨 말을 하고싶었는지 슬슬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렇다. 그는 찌질한 남자 방섬에 표류하여 온갖 쌩쑈 리얼 막장 생존 프로잭트. 그리고 히키코모리 3년차 여자의 괴상하고 기괴한 하루하루를 찍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소통에 관해서,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HELP 라는 말을 HELLO라는 말로 바꾸면서 시작될 수 있는 그 모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우주까지 나갈것도 없다. 이 지구까지 스펙터클 할것도 없다. 그저 대한민국,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거기에서 더 좁게 들어간다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외로움을 확인한다. 모두들 나를 이해하는 것 같고, 모두가 내 편인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상황일때만 그런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여기서 조금만 어긋나면, 내 삶의 궤도가 약간만 삐끗 해 버린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일순간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 그는 단지...좀...신용불량자일 뿐이다. 7천의 대출을 받았는데 그게 2억 몇천이 되었다. 그러자 남자에게는 기다렸다는듯 세상이 배신을 때리기 시작한다. 명퇴되고, 애인은 '나 나쁜년인거 알거든?' 하면서 떠난다. 그리고 그와 유일하게 소통을 원하는 곳은 딱 한곳. 대출을 해준 곳과 이동통신사 뿐이다. 즉 그에게 아직까지도 더 빨아먹을것이 남아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서만 그에게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여자의 얘기는 조금 성급하게 전개가 된다. 그녀에게는 이유 같은것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보다가보면 그녀가 학창시절에 어떠했을 것이다라는 짐작만 갈 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우리에게 불친절한것은 아니다. 그녀의 행동은 남자보다 더욱 괴상하지만 그래도 우린 이해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모두 싸이월드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웃지 않을 수 없다. 근데 웃어도 좀 슬프구나.) 

사실 려원의 연기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삼순이 방영당시 펑펑우는 장면을 꽤 잘 하는구나 생각은 했었지만 뭐 샤크라의 이미지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아직도 머리땋고 코끼리위에 올라타서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랩을 해댈것 같은. 근데 이제 려원은 완전히 연기자가 된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서 그녀는 가수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드디어 떼어낸것 같다. (애진작에 떼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려원이 연기한 캐릭터는 자칫하면 완전 또라이 내지는 웃긴년으로 비춰지기 딱 좋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말 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여자인지를 또 어떤 인간인지를 표현해내는 능력은 탁월했다. 정재영보다 오히려 훨씬 설득력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에 닿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웃긴놈과 웃긴년의 황당만남. 뭐 이런게 아니다. 어쩌면 포스터나 예고편에서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다가 보면 좀 짠한 장면들이 여러군데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웃었다. 왜냐면 그 짠함이 절대 멋있지 않거든.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을 보면 웃는다. 그가 얼마나 아플것인지 혹은 창피할것인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의 엉덩방아 찧는 모습 자체가 웃기다는 이유로 웃는다. 나는 그럴때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소름끼치게 잔인한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다. 겉으로는 웃긴 장면이었지만 그 속까지 웃긴 일은 절대 아니었는데 마치 엉덩방아 찧는 모습을 보듯 사람들은 웃어제꼈다. 정말 일어나서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야이 인간들아 뭐가 그렇게 웃기냐? 니들은 저게 웃기냐? 

코믹 영화로 분류되어있을테지만 나는 이 영화를 애정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크게 보자면 소통에 관한 것이지만 일단은 그와 그녀가 등장하니까. 그리고 이들은 서로 연결되려고 하니까. 아무튼 초반부의 좀 덜컹대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영화는 썩 훌륭하다. 별 다섯도 아깝지 않다. 다만 이 감독이 다음 작품에서는 이 정서는 그대로 가지고 가되 관객을 의식하는 것은 좀 빼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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