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 Thir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심야에 개봉을 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서 박쥐를 봤다. 과연 박찬욱의 힘이라고 해야할까? 평일 (수요일) 새벽 0시 5분 상영임에도 불구하고 매진을 기록했다. 아마 그 후에 상영하는 박쥐도 거의 매진이리라.

박찬욱 감독은 스스로 그 영화를 자신이 여태 찍은 영화 중 최고라 했다던데...글쎄 난 거기까지 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히 좋기는 했다. 재미도 있었고, 스토리도 좋았고, 화면도 괜찮았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단 음악은 그저그럼) 과연 화려한 수식어나 각종 타이틀이 붙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렇지만 뭐랄까? 박찬욱이라면 이 정도야 뭐 가볍게 라는 생각이 자꾸 스멀스멀 올라왔다.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이게 여태까지의 최고는 아닌것 같은데 라는 생각. 

차라리 초창기의 그 마이너리티함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마이너리티함에 반했던 관객들이 이제는 메이저 군단으로 자리를 잡아 버렸으므로, 박찬욱 감독 역시 자동적으리 메이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박찬욱은 이제는 메이저가 되어버린 그들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그들이 원할만한 장치를 얄밉도록 잘 배치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미진했다. 

웃겨도 주었다가, 끔찍하게도 해주고, 슬프게도 해주고, 이런 영화를 보고 있다는 행복함도 적재적소에 터트려 주었지만 어쩐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감독' 에서 '관객들이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감독' 이 된 것만 같아서 못내 아쉬웠다. 아, 그렇다고 해서 후자를 지향하는 감독이 전자의 감독보다 하수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박찬욱 감독에 환장했던 것은 어찌보면 관객을 이렇게 철저히 불편하게 해도 되는가 하는, 나혼자 '관객 개무시' 라고 부르는 그런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는. 만약 박찬욱이 아닌 다른 감독이 만들었더라면 나는 올해 최고의 영화라며 당연히 별 다섯을 주고 거기다 플러스 크리스마스때 제일 꼭대기에 다는 왕별까지 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것은 박찬욱이니까. 박찬욱 감독표 영화니까. 하는, 그만큼 기대치가 높아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박찬욱감독 하면. 어지간히 잘 만들어놓은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캐스팅 이야기 잠시. 

김옥빈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선택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내공이 많이 부족한 햇병아리 같은 배우임은 사실이지만 느낌이 살아있었다. 짐승을 사냥해서 아직 숨이 다 끊어지지 않은채로 뜯어먹는 승냥이같은. 여배우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파워플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송강호같은 대배우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의 감정선을 잘 펼치는걸 보니, 모르긴해도 강단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싶었다. 박찬욱 감독이 그런 부분을 알아보고 캐스팅을 했는지, 아니면 극중 소화해내야 할 만만치 않은 누드신을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마땅한 여배우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백프로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금자씨 이영애보다 태주씨 김옥빈이 한 수 위였다. 둘 다 친절하지 않기로야 오십보 백보지만. 단지 여자 캐릭터만 놓고 보자면 금자씨보다 태주씨가 좀 더 매력적이고 악마적이며 원초적이다. (하긴, 금자씨는 어쩌면 잔인한 행동과는 달리 구원의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자면 이영애는 가장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포스터를 보라 마리아가 한국여자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것 같지 아니한가.) 

송강호씨야 뭐. 워낙에 다들 알다시피 딱 그만큼 해 주었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더 넘쳐흘러 영화 전체에서 오직 자기만 보이게 하겠다는 욕심을 뺀. 담백하고 구수한. 그리고 그 와중에 무심한듯 뱉어도 사람 기절시키는 코믹성까지. 이미 여러 매체에서 난리를 쳤던 송강호 성기 노출씬은 역시나 여성 관객들의 깜딱 놀람 혹은 어우어~~ 하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들만 모아서 숏버스를 확 틀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건 나 뿐이었을까? (삼천포인거 알지만 숏버스 제대로다. 헤드윅에서 진화 정도가 아닌 트렌스포머가 되어버렸다.) 한가지 굉장히 궁금한것은 대체로 배우가 극중에서 한가지 이미지가 아닌 상반된 이미지, 이를테면 진지함과 코믹함을 오가면 분명 덜컹대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대체 송강호씬 뭘 자시고 태어나셨길래 그렇게 심하게 자연스러울까? 아마 뱃속에서부터 상반된 캐릭터 두 가지를 설정, 연기를 연기같지 않게 연기하는 연습을 했을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디....  

그리고 이건 누군지 알려주지 않아야 기절초풍할 사람이 한 사람 등장한다. 성별이고 뭐고 다 말 안해줘도 딱 등장하는 순간 알것이다. 순간 객석에서는 폭소가 폭죽처럼 터질터이니...

마지막으로 영어 제목. 정말 죽여줬다. Thirsty라니... 뱀파이어는 당연히 피에 목마를 것이고, 누군가는 사랑에 목마를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 이 형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에 목마를 것이고,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싶어 목마를 것이고, 누군가는 복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음에 목마를 것이다. 극중 모든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정서는 목마름이었다. 그래서 박쥐보다 Thirsty가 백번 낫다. 차라리 한국 제목도 갈증, 혹은 목마름 정도로 했더라면 많이 촌스러웠을라나? 뭐 그렇다고 해서 박쥐가 그것들에 비해 월등히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는다만. 그리고 박쥐는 어쩐지 영화를 안본 사람이나 단 한 장면만 본 사람이 지었을것 같은 제목이다. 누가 그랬을까?~ 

어쩌면 여성 관객들은 이 영화가 여전히 박찬욱 영화답게 관객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 영화는 그 불편함마저 철저하게 계산에 넣고 만든 영화같다. 마치 노이즈 마케팅처럼 말이다. 금자씨 이전 작품들은 어쩐지 박찬욱 감독이 '어? 난 불편하라고 그런거 아닌데...다들 불편하시다니 뭐 그런줄 알밖에요' 했을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자 아까 고기서 웃음 터질꺼니까 이쯤해서는 한번 불편하게 해줘볼까? 했을것만 같다.   

끝으로. 웃겼다. 많이 웃겼다. 그런데 좀 너무 많이 웃겨버린 기분이 든다. 조금만 덜 웃겼더라면 좋았을 영화였다. 코믹이 양념처럼 들어가는건 좋지만 박쥐에서의 코믹함은 맛있긴 맛있되 다시다 (요즘에는 다들 산들애나 맛선생을 쓰실라나?)가 너무 많이 들어간 식당서 파는 김치찌게 같았다.  

별점에 관한 변명 및 기타등등 : 별점 하나를 뺀 이유는 순전히 이 영화의 감독이 박찬욱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찍은 장소인 모 고등학교. 작년 여름 우연히 놀러갔다가 시커먼 '촬영차량' 들이 서너대 학교내로 들어오길래 '뭘 찍지? 드라만가?' 했는데... 학교 계단을 내려가다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박찬욱 감독과 딱 마주쳤다. 촬영지마다 와이프를 데리고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과연 진짜였다. 그때 조금 놀라서 싸인을 못 받은것이 천추의 한이된다. 다행스럽게도 잠시 쉬고 있는 송강호씨에게는 싸인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하니 한참 감정씬이 극에 다달았을 부분이었을텐데 -박인환씨와의 촬영분- 그 어렵게 유지하고 있을 감정선을 내가 겨우 싸인해주세요 따위로 방해한것 같아 조금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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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0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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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0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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