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성석제의 소설은 재밌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없을 정도로 그의 소설은 입에서 짝짝 붙는다. 독자를 들었다 노았다 하는 솜씨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래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순정이 참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조금 삐딱하게 보기로 했다. 내가 책에서 추구하는 것이 오로지 재미이긴 하지만, 그래서 성석제의 소설은 재미만으로 볼때는 별 넷 내지는 별 다섯이 마땅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빈약한 스토리와 모자라는 재미의 책이었다면 나는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성석제의 책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래서 옥의 티 마냥 더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굳이 이 소설에서 여자라고는 달랑 두명 등장하는 그녀들의 삶을 그런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그 글빨로 보아 얼마든지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었다.

순정에 등장하는 여자는 두 명이다. 하나는 주인공 이치도의 엄마 춘매여사고 하나는 이치도의 대부 왕학의 딸 김두련이다. 이치도의 엄마는 술집 작부이다. 이치도의 아버지는 그녀가 군부대 앞에서 몸을 팔때 그녀의 몸에 올라탔던 수많은 군인중 한명이다. 하지만 춘매는 땜장이에게 마치 이치도가 아들인양 행동하여 그와 함께 산다. 그녀는 지지리 복도 없어서 어리하나마 남편이라고 있던 땜장이를 먼저 저세상에 보내고 작은 술집에서 해장국밥 집을 하며 이치도를 키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어머니상 처럼 이치도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건 아니다. 이치도가 아기일때는 니나도 장단을 치느라 젖을 제대로 못 먹였고 커서는 아예 무관심으로 밀고 나간다. 춘매는 중간중간 남자를 만나지만 그들은 마을에 잠깐 머물렀다 가는 뜨네기일뿐 춘매의 인생에 십원한장 보탬이 되지 않는 인간들이다. 나중에 이치도가 돈을 훔쳐 달아나는 피눈물에게 잡혀서 늙은 나이에 식모로 죽도록 고생하다가 결국 혼자 병원에서 죽어버린다.

내가 분계하는 것은 춘매가 순정이 없는 작부여서도 아니고 이치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정성으로 키웠더라 따위의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도 관심없던 아들 이치도로 인해 말년에 늙은 가정부가 되어 온갖 학대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아들의 삶을 위해 춘매가 희생한 것 처럼 되어버렸다. 관심이 있건 없건 여자의 삶은 그를 스쳐간 남자들로 인해 막판까지 개판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간 춘매의 성격으로 볼짝시면 피눈물 밑에 들어가 구박댕이 식모를 하느니 무슨 사단을 내어도 냈어야만 했다.

다음으로 이치도가 연정 비슷한걸 품고 있는 김두련. 그녀는 촌구석이 싫다며 대도시로 나가서 공부를 한다. 시골이 싫어 방학이 되어도 한번도 내려오지 않은 그녀는 처음 예상과는 달리 힘든 상황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아버지 왕학을 찾아 오게 되는데 거기서 왕학이 고자요 동성연애자임을 알게 된다. 그길로 충격을 받아 두련은 고급작부가 된다. 여태 어렵게 공부를 해 왔지만 아버지가 고자요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은 모든걸 포기하고 이남자의 품에서 저남자의 품으로 옮기고 것도 모자라 직업 여성이 된다. 그러나 춘매가 마지막에 보여줬던 이해할 수 없는 희생(피눈물의 식모로 전락하여 결과적으로는 이치도를 돕고 마지막에는 죽음으로써 이치도를 살리는)을 두련 역시 보여준다. 어릴때 언청이였던 그녀가 술집에서 몸팔아 번 돈으로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물론 순정에 등장하는 이치도를 비롯한 남자들도 모두 허접한 삶을 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 그들을 스쳐간 여자들 때문에 인생이 개판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순정의 유일한 두 여자 춘매와 두련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환경 즉 남자로 인해 인생이 개판이 된다. 이걸 읽고 좋아라 할 여자는 없을 것 같다. 그녀들이 그녀들의 선택에 의해 삶이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소설속의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 내지는 남자의 방귀만으로도 인생이 들썩거리는 존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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