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 쾌락주의자 전여옥의 일본 즐기기
전여옥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코끼리표(조지루쉬라는 상표가 있지만 대게는 그 로고인 코끼리표로 통했었다.) 밥통과 보온 도시락통이 주부들에게 꼭 가지고 싶은 가전중 하나로 꼽힐때가 있었었다. 누군가가 일본을 간다고 하면 부탁을 하거나 밥통만 전문적으로 사다 나르는 보따리 장수가 있을 정도였으니 코끼리표 밥통이 하나 있으면 그 집은 적어도 밥걱정은 안하는 집이었었다.

우리집에도 밥통과 보온 도시락이 있었는데 밥통보다 반찬통이 더 큰것을 보고 우리 어머니는 선진국에선 역시 밥보다는 반찬을 더 많이 먹는 법이라며 자랑스러워 하셨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니 워크맨을 사가지고 오셔서는 외출할때는 물론이거니와 집에서도 오디오 대신 소니 워크맨을 듣곤 하셨었다. 나에게 있어 일본은 코끼리표 밥통과 소니 워크맨의 나라였으며 유치원생에게도 타이즈 하나 신기고 반바지를 입혀 외출시킨다는 일본 어머니들의 교육법에 크게 감동받은 우리 엄마 덕분에 한동안은 추위에 덜덜 떨며 학교를 다녀야만 했었다. 그들의 식민통치와 그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접한것은 이미 소니 워크맨이 아버지에게서 내 손으로 넘어온 이후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반미 감정을 가지고 지난 역사속의 일본은 물론 현재의 일본도 용서하지 못하는 부류. 또 하나는 일본의 전자제품에 이어 문화상품마저도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하여 광적으로 일본에 대해 신봉하는 부류.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내기 전에는 후자의 부류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근검절약하는 일본. 우리와 조건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큰 나라 미국에다 빌딩을 여러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 많은 나라.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30년이나 앞서 있는 나라. 만약 중국이 그러했다면 우리는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일수도 있었을 테지만 일본이기에 우리는 밉기도 밉고 부럽기도 부러운 이중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는 시원하고 통쾌했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속에 한 여자가 나서서 일본에 살아보니 일본에서는 (미래가)없더라 라고 외친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지침이라도 내린듯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고 일본보다는 우리의 미래가 밝음에 안도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책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는 굳이 표현하자면 김빠진 맥주같은 책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즐길것은 음식 뿐이라고 작정이라도 한듯. 일본 음식의 특징부터 파는장소 가격까지 상세하게 안내했다. 차라리 일본 음식 100배 즐기기 같은 제목을 달고 나왔더라면 훨씬 솔직해 보였을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일본의 절이랄지 백화점기행도 있고 일본은 없다 이후 정말로 없어져버린 (우리가 일본인의 특징으로 알았던) 가업잇기나 근면 성실에 대해 잠깐씩 언급을 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금전적 여유도 있는(그녀가 먹은 음식은 대게 아무리 싸다고 해도 우리나라 회사원들이 먹는 5천원짜리 정식은 없다.) 전여옥 개인의 일본 식도락 여행기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당연하게 여행기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며, 이 책이 그녀의 베스트셀러인 일본은 없다같은 접근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제는 일본에 대해 조금은 편해져버렸다는 그녀에게 결국 일본은 맛있는 음식을 파는 거대한 식당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어디에 뭐가 맛있으며 어떤 음식을 먹고 다녔는지를 읽기위해 책값을 지불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제목에서 처럼 다소 사색적인 일본 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권하지 않는다. 지금 일본은 10년째 경기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다. 그걸 안됐다며 혀를 찰 것 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처럼 여봐란듯 고소해할 필요는 없다. 어떤 나라이건 불황이 닥치면 평범한 중산층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그걸 기뻐하는 것은 놀부심보인듯 하다. 비교적 여유로운 그녀가 일본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비싼돈들여 즐기는 것을 대리만족할 정도로 일본에 한이 맺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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