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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성석제는 나만 모르고 있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작가였나보다. 벌써 여러명이 나에게 성석제의 글을 읽어보기를 추천했고 그 중에서도 내 독서 취향으로 볼때(재미를 상당히 추구한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제일 나을것이라고들 했다. 유달리 귀가 얇은 나는 지인들의 추천에 힘입어 이 책을 구입했다. 결론은 다행스럽게도 아주 재밌었다. 나는 재미있고 짤막한 글들에 환장을 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을때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장편을 생각하지만 나는 치즈케잌 모양을 한 가난이랄지 세라복을 입은 연필(정말 무지하게 좋아하는 단편이다.)같은 단편들을 떠 올린다. 짧고도 재미있는 글들은 우선 시간을 많이 뺏지도 않고 일하는 틈틈히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 볼 수 있어서 좋다.(그렇다고 내가 무진장 바쁜인간이냐 하면 뭐 꼭 그런것도 아니다.)
성석제의 글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많이 웃긴다. 나는 어렵지 않고도 재밌는 글을 좋아하지만 (철이 없으면 사는게 즐겁다 같은 류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그에 비하면 영 아무생각 없이 웃기지는 않는다. 또 성석제는 나름대로 나이를 좀 먹어서인지 지금 내 세대와는 약간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우리 삼촌뻘 되는 사람의 할랑한 인생기 정도로 보면 되겠는데 알다시피 그들은 우리보다는 조금 복잡한 세대들이다. 중간중간 재미없는 단편들이 한두개 끼여 있지만 대체적으로 재밌으며 처음 두개의 단편은 사냥에 관한 얘기를 연달아 하고 있어서 이거 온통 사냥에 관한 단편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는 사냥에 관해 나오지 않는다.(나는 실로 사냥에 대해서만 떠들었을까봐 걱정했었다.)
성석제의 다른 책들도 보고 싶지만 솔찍히 소설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가지 궁금한것은 이 책에 실린것들이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것인데 몇몇개는 논픽션처럼 보인다. 만약 그게 픽션이라면 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상당히 높다. 과거에 관한 얘기들도 몇몇개 등장하는데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바로 윗대의 얘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아주 젊은 사람들이 본다면 옛날 옛적에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실린 단편중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온통 사투리로만 쓰여진 것이 있는데 내가 지방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