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의 화장법.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말 그대로라면 화장이란 흔히 여자들이 얼굴에 칠하는 그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적이 그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취하는 방법이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적은 낯모르는 타인이다. 생각해 보면 타인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다. 이쪽에서 그를 알 가능성은 제로인 반면 그쪽에서 나를 훤히 알 가능성은 충분하게 있다. 어디선가 숨어서 나를 훔쳐봤을 수도 있고 내가 버린 메모를 주워서 나의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을 수도 있다. 거기에다 내가 한 일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그것으로 인해 나에 대한 증오를 키워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에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들 다닥다닥 붙어살았기 때문에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똥개가 새끼를 몇 마리를 낳았는지 까지 내 집처럼 훤하게 꿰고 있겠지만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다. 아파트에 살다보면 아랫집 윗집은 고사하고라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다만 늦은 밤에 못을 친다거나 쿵쾅거리며 뛴다거나 혹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에만 그들은 서로를 인식 할 뿐이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은 밤에 못을 밖고 쿵쾅대고 악쓰며 싸운다는 이유로 몰상식한 타인이 된다.

또 현대인들은 활동 영역이 넓혀졌다. 인터넷이 구석구석 깔리고 부터는 사이버상에서 모르는 타인들과 대화도 하고 가끔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일가지고 싸우기도 한다. 예전보다 많은 인간들과 관계를 맺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것에서부터 두려움은 출발한다. 전날 사이버상에서 활발하게 토론을 하다 의견 충돌로 싸운 누군가가 알고 보니 컴퓨터 도사에다 성격도 이상해서 나의 정보를 다 빼낸 다음 나를 곤란에 빠트린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이 책에 보면 타인은 지옥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그렇게 되면 정말 타인은 지옥이 된다. 그것도 죽고난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지옥처럼 추상적인 지옥이 아닌 바로 살아있는 동안의 지옥이 되는 것이다. 책에는 한 남자와 또 한 남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화자이고 한 사람은 그 화자가 알지 못하는 타인이다. 그 둘은 우연히 공항 대기실에서 만나게 되고 단지 귀찮게 굴던 타인은 어느새 지옥으로 변한다. 아밀리에 노통의 적의 화장법은 신선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소설이다. 마치 내가 당하는 것처럼 끔찍함에 그대로 전해진다. 마지막에 대단한 반전까지 준비 해 두었으므로 무료한 여름 장마철에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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