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미술관
황록주 지음, 손정목 사진 / 아트북스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게으른 나는 여행기를 몹시도 좋아한다. 게을러서 직접 가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가보고픈 마음을 생짜로 억누르기에는 갈증이 가시질 않을 때 나는 잘 쓴 여행기를 골라잡는다. 그리고 침대 위나 방바닥에서 뒹굴며 그들이 고생고생해서 얻은 기쁨을 간편하게 수혈 받는다. 가본 것만 하겠냐만은 조금의 수고도 들이지 않고 이미 초등학교 때 다 땐 한글을 읽는 것만으로 얻는 것 치고는 수확이 크다. 더구나 여행기에는 의례 사진까지 들어가 있으니 읽는 것 이외에 보는 즐거움도 솔솔찮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다소 의아해 하실지도 모르겠다. 이건 여행기가 아니라 미술에 관한 책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맞다. 이건 미술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술관이라는 곳을 여행하기 위한 책으로 그 어떤 여행기들 보다 친절한 책이다. 일반인들에게 미술관 하면 난해하고도 어려운 작품이 걸려 있으며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는 발소리마저 선명하게 찍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미술관을 찾은 일은 지인이 작품 전시전을 연다고 해서 갔을 때 였다. 예전 신문사 기자시절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분이라 인사삼아 갔더랬다. 내가 갔던 미술관은 방송국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다소 좁고 분위기도 너무 엄숙했다. -방송국은 엄숙하지 않으나 그 부대시설인 미술관은 무척이나 엄숙했다.- 거기다 걸려있는 작품도 추상화라서 ‘내가 발로 그려도 어쩌고’ 하는 불손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미술관도 하나의 테마 여행이 되겠구나 하는.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는가. 음식 기행이라고 해서 각 나라 음식이란 음식은 다 돌아다니면서 먹어 본다던가 아니면 해외의 유명한 쇼핑몰은 다 돌아보고 온다거나 하는 테마 여행 말이다. 책에 소개된 미술관은 우리나라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미술관을 가 볼만한 곳으로 느끼도록 했다는 것이다. 난해한 작품 설명이 아닌 그 미술관이 생기게 된 이유며 미술관의 풍경. 부대시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정보를 황록주 개인의 심상과 함께 딱딱하지 않은 필체로 그려놓았다.

일반 건물들과 달리 용도 자체가 감상용인 미술관들은 하나같이 특이하고도 아름답다. 공간의 높은 효율도나 투자비용등을 건지기 위한 여타 건물들과는 다른 여유롭고도 넉넉함이 존재하는 곳이 미술관이다. 미술 작품을 보지 않더라도 단지 건물과 주변 풍경을 보기 위해서 간다고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로 현대 미술관이 소개된 곳이기는 하지만 그림과 조각 그리고 여러 가지 미술품들이 골고루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가장 친절한 점이라면 약도부터 시작해서 휴관일 입장료 주차시설 등등 정말로 그 미술관을 찾아가려고 할 때 필요한 정보들이, 소개된 미술관의 각 뒷장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여행기보다 더 친절하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다.

이 책을 보다가 보면 당장이라도 가까운 미술관을 찾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든 미술관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바람에 지방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갈 만한 미술관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미술관뿐이겠으며 이 책 탓이랴. 나도 서울에 한 두 번씩 갈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꼭 하나씩은 미술관을 둘러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현대미술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하여도 미술관은 내게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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