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만화가와 뻔뻔한 작가의 유쾌한 영화 답사기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사실 나는 김영하라는 작가를 잘 모른다. 아니 잘 모르는게 아니라 아예 모른다. 만화가 이우일? 그는 조금 안다. 페이퍼에 맨날 딸년에 관한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고 두건을 쓰고 다니고..음. 그래 그의 책도 한권 샀다. 무슨 만화책인데 안에 온갖 만들기와 스티커가 득시글 거렸던. 내용은 그다지 기억이 나질 않는 만화책.

영화를 워낙 좋아하기에 거기다 만화도 좋아하기에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내가 주문한 많은 책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읽어 치우면서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책은 일단 재밌다. 그리고 미장센이니 뭐니 하면서 어려운 영화 용어는 절대 쓰지 않았다. (영화를 전공했기에 그간 읽어야 했던 많은 영화평론들처럼 영화용어 사전을 펴놓고 용어에 낑낑거리지 않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이우일이 중간중간 별로 아프지도 않은 머리를 식혀주느라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재밌게 볼 수 있는 작은 만화들까지 그려놓았으니 참으로 친절하고도 재미난 책이다.

영화에 관한 책들은, 모르긴 해도 한해에 수십권도 넘게 쏟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마다 다들 비슷비슷한 포맷으로 간다. 소 제목들을 모두 영화제목으로 채워놓고 해당하는 단락을 펴 보면 어김없이 그 영화에 대한 어려운 평이 좌르륵 쏟아진다. 화양연화 하면 왕가위 감독의 화려한 작품 연보부터 그의 단짝인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까지 한차례 썰을 풀어놓은 다음. 과연 감독이 이렇게나 복잡한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어렵디 어려운 평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는 일상생활을 이야기 한다. 그러다가 스리슬쩍 영화 얘기를 한다. 마치 직접적이진 안지만 은근히 야시러운 얘기가 더 야하듯. 그는 그걸 이미 알고 있는 듯. 그렇게 영화를 살짝 건드리며 이야기 한다. 또 소개되는 영화중 다른 영화평론서에서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뭐 그 비슷한 류의 대작들도 없어서 좋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아프지 않는 영화이야기를 다룬 책들도 나와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다 다를것이다. 그건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태 살아온 경험들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간혹 같이 영화를 본 옆의 친구녀석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할때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들여다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으면 딱 좋은 책이다. 간만에 어렵지 않고 재밌으며 동시에 시원시원한 영화 이야기를 만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