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여류작가란 말. 여자들은 참 싫어한다. 남자들에게는 굳이 앞에 성을 붙이지 않아도 여자들에게는 꼭 성을 붙이니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싫어함에도, 혹은 전혀 그런 성향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세상이 붙인 이름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그런 이름에 합당한 만큼만 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책이야 말로 여류작가라는 이름을 반드시 붙여야 하는 책이구나 하고 말이다. 박경리씨나 박완서씨에게 우린 여류작가라 부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선생님이 되었다. 물론 연세를 고려한 명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그 분들에게 여성 남성을 가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 일 것이다.

같은 여성적 감수성에 기대에 책을 쓰는 작가 중에서는 <새의 선물>의 은희경씨도 있다. 그러나 은희경씨는 기대어 쓰되 잘 쓰는 편에 속한다. 여성의 감수성을 최대한 장점으로 부각시켜 일상의 자잘한 기억을 끄집어 내는 솜씨는 놀랍다. 얼마전에 읽은 <마당 깊은 집>보다 나는 <새의 선물>의 디테일함이 더 맘에 들었었다.

그러나 전경린씨는 어떤가? 그녀도 여성적 감수성에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위태롭게 기대어 서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과연 전경린씨가 여자에 관해 뭘 알기는 아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원작으로 '밀애'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영화의 미흔을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작의 미흔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남자들에게 100%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여자이다. 오히려 같은 여성들에게서 더욱 이해를 받을 수 없는 여자에 가깝다.

영화 '밀애'와 이 책은 완전하게 다르다. 원작을 옮길때 꼭 같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 두가지는 완전하게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아주 큰 줄기만 빌려 왔을뿐 그 가지들은 모두 새로 생성된 것이 밀애인것 같다.

맞다. 나는 영화 '밀애'를 보고 반해서 원작을 찾아 읽은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에 관해 별 달아주기를 망설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글쎄 그래도 많은 별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 감기는듯한 문장들. 밥을 떠 주는것 까지는 좋은데 전경린씨는 우리가 소화불량에라도 걸릴까봐 아예 씹어서 준다. 마치 할머니들이 손주에게 밥을 씹어주듯이 말이다.
다 커서 받아먹는 씹은 밥은 유쾌하지 않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제발 한번이라도 취재를 하긴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배경들이 너무 생뚱맞다. 작가의 필요에 따라 바다도 이층 집도 폐가도 마구 집어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길가에 있는 조그만 휴계소 그리고 모텔과 여관 목욕탕등도 급조한 느낌이 짙다. 조그만 서점을 운영하는 남편이 집을 팔고 아내에게 아파트라도 장만하라고 하는데 시골 서점 팔아서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단 소리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다 완전한 시골 깡촌과 도시를 억지로 이어 붙인듯한 주변 사람들도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밭에 나갈 뿐 시골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정서라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너무 심심한 나머지 남의 일이나 시시콜콜 캐내고 다닌다는 엄한 설정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자잘한 오류들이 모이면 결국 그 책에 관한 신뢰를 잃게 한다. 소설이 허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읽는 내내 '뻥치고 있네'라는 기분이 든다면 좀 곤란하다.

이 책이 도대체 왜 베스트셀러이고 수작인지 아는 사람들은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독자 서평들을 보고 내 나름대로 영화도 봤기 때문에 며칠씩이나 기다려서 받은 책이었는데... 그래 이 책에 운이 없었다고 치자. 영화도 봐 버렸고 배송기간이 평소와 달리 2주 씩이나 걸려서 그 기다림 때문에 기대감이 필요 이상으로 증폭되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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