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것은 고등학교 학급문고에서 였다. 책을 유달리 아끼는 나와 달리 아해들은 선생님이 책을 가져오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 한번도 들춰보지 않은듯한 책들을 산더미처럼 가져왔고 '개미'도 그 속에 끼여 있었다. 어린시절 개미를 가지고 장난을 쳐 보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만은 나는 유달리 개미를 가지고 잔인한 장난(물론 난 그걸 실험이라 생각했다.)을 쳐 왔던터라 책의 제목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그리고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그 심상찮은 책 덕분에 중간고사 기간에도 내내 책만 읽었고 결국 심상찮은 성적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 내가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개미 후속작이랄 수 있는 '개미혁명'(재밌는 영화의 재미없는 속편쯤에 해당한다.)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이다. 그 중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작품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뿐이여서 나는 한동안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를 첫 작품에서 장타를 날리고 이후로는 계속 안타만 쳐대는 작가로 기억했다. 그리고 최근에 '뇌'라는 책을 다시 냈음을 알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품의 특징이라면 하나로 귀결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동시선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보이지 않던 에피소드들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가 된다. 마치 M.나이트 샤말란의 영화같이 모든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프렉탈 곡선처럼 하나로 융화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듯 보였던 것들이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최종적인 문양의 작은 셈플이었음을, 그리고 그 본질은 최종 문양이건 작은 셈플에서건 여전하게 똑같음을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방식의 소설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화자들이 모두 1인칭 작가시점을 씀으로써 우리는 마치 다중인격자가 된 듯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사고하며 행동하게 된다.

'뇌'에는 몇가닥의 큰 줄기가 존재한다. 첫번째는 정신의학자인 핀처, 뇌와 왼쪽귀, 왼쪽눈의 신경만 남은 마르탱. 그리고 기자인 이지도르와 뤼크레스가 각각의 독자적인 이야기 줄기를 끌고 나간다. 사실 광고에서는 허를 치는 반전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허를 치는 반전 따위는 없다. 알다시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몹시 치밀한 작가여서 어딘가 섬광처럼 나타나 사건을 종결 시키고 그동안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그 사건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추리작가들과는 다르다. 그는 책의 처음부터 이 모든 사건들이 '뇌'와 깊숙하게 관련이 되었음을 암시하고 우리는 그 암시가 어떻게 스토리로 풀어져 나갈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책에서 (제목을 까먹었다.)마치 나 혼자에게만 이 책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 놓은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책은 내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작가와 은밀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다들 한번씩 경험해 보는 오직 나만을 향한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그 책은 그걸 의도하고 쓴 것이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뇌'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최근에 겪었던 작은 일들과 끊임없이 연관되어 있었다. 마치 '맞아맞아'라는 코너(이홍렬씨가 진행하는 코미디 프로 중에서 요리중에 어떤 글귀들을 말하고 방청객들이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면 '맞아맞아'하고 외치는 코너이다)를 보는 것 처럼. 책의 스토리와는 큰 관계는 없지만 거기에 나와있는 작은 것들이 마치 일부러 나 때문에 쓴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진 인간들에게 큰 감동을 받는다. 이 외롭고 넓은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어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우린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쉽게 친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 계속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