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에게 인간이여야만 한다.

다중 인격 - 24개의 인격을 가진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
캐머론 웨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린비 / 2002년 4월

다중인격. 흔히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소제이다. 저 먼 옛날 히치콕의 사이코에서 부터 시작해서 스트레인저, 컬러오브 나이트, 프라미얼 피어, 마인드 게임, 섀터드 이미지에서 부터 모 방송국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중인 RNA 까지 무척 다양하다. 다중인격은 말 그대로 자신의 인격 이외에 다른 인격을 지니고 있는 일종의 정신장애로 정확한 명칭은 '해리성 장애'이다.

자신의 내면에 하나 혹은 두개의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주로 자신이 그러한 장애를 지녔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건이 뻥 하고 터지는 것이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이 한 행위는 기억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재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다중인격자 본인이 직접 썼다는것. 그리고 드물게 자신 안에 있는 24개의 인격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인격이 나타났을때 자신은 비록 의식 저편에 밀려 나 있지만 적어도 어떤 인격이 나와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할 수 있기에 책을 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아니라면 관찰자가 써야 했을 것이다.) 해리성 정신장애를 앓는 주인공은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심리학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고백서가 아니다. 아무리 저명한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도 환자를 100% 알거나 이해할 수 없는 법인데 책의 저자 캠은 자신이 직접 그 병을 앓는 동시에 심리학자이기 때문에 놀랍도록 문제의 본질에 잘 접근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다중인격이라는 책을 덮고 나면 다중인격이란것 그 자체 보다는 아동 성 학대에 관해 관심이 더 많이 가는 자신을 발견 할 것이다. 왜냐면 캠도 그랬지만 해리성 정신 장애를 앓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수가 어릴때 겪은 성적 학대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흔히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증오하거나 저주하고 그 사람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기 이전에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근친상간의 경우 돌봐주는 부모가 자신에게 나쁜짓을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오히려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주인공 캠도 처음에는 다중인격자임을 부인하고 단순하게 자신이 미쳤다고만 믿는다. 그래야만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낯모르는 남자가 어린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 했다는 그 어려운 진실을 외면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누구나 공부를 다 잘 하는게 아니듯. 누구나 다 좋은 부모가 될 자질이 있지는 않다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걸 보면 용감하다 못해 무섭다고 말이다.

설사 다중인격에 대해 별 다른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인간들은 인간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책의 저자 캠 처럼 스스로 스물네개의 인격을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하며 고통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