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열림원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몇해전 일본을 발칵 뒤집은 지하철 사린 살포 사건에 관해 하루키가 인터뷰를 한 것을 쓴 것이다. 알려진대로 사린 사건은 옴진리교라는 이단적인 종교집단의 광신도들이 벌인 짓이며 별다른 이유가 없는 무작위적인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으며, 그일을 저지른 옴진리교 신도들은 정신병자나 사회에 불만이 있을만한 저소득층이 아닌 엘리트집단 들이여서 더더욱 그 충격이 컸었다.

사린은 공기중에 노출이되면 유독가스를 내뿜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화학물로 예전부터 생화학전에 사용되곤 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사린이 유포된 것은 어떤 전쟁이나 이념의 대립 때문이 아닌 그저 한 종교 집단이 그곳의 최고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별 이유도 없이 살포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당시 옴진리교 신도들은 아침 출근시간 사린이든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지하철을 탔으며 내리기 직전에 우산의 뾰족한 부분으로 비닐봉투에 구멍을 냈었다. 바쁜 출근시간이라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비닐에 구멍을 내고 내리는 사람은 물론 그 비닐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 결과 막힌 공간인 지하철에서 사린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번졌다.

흔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청바지와 통기타 그리고 맥주의 시대가 그의 글에 고스란히 살아있어서 좋다고들 한다. 그 시대에는 아무도 심각하지 않았으며 소리높여 외치는 사상이나 이념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하루키의 글은 냉소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따지고 들거나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다소 관조적인 그의 책들은 현실보다 더 리얼한 소설들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하루키는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와 아시아 전역. 그리고 유럽에서도 꽤나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루키에 관한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었다. 그가 쓴 책들을 보며 '이 사람은 세상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라고는 없군' 하며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을 직시하며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이 책은 하루키가 썼다고 하기 보다는 사린사건의 피해자나 옴진리교 관계자들이 썼다고 하는것이 옳다. 그만큼 방대한 분량의 인터뷰가 들어가 있으며, 하루키는 일일이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내용을 녹취하고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의 분량은 그가 섰던 어떤 장편소설보다 두꺼우며 일이 그정도가 되면 하루키로써는 차라리 단편소설을 몇개 쓰는편이 훨씬 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자 출신도 아닌 그가. 이미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져서 솔찍히 이런 귀찮은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가 이 번거로운 수고를 기꺼이 했다는 점에서 나는 기립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무겁지 않으며 감각적인 그의 소설이나 단편 그리고 수필집과 사진집을 열심히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루키는 해외여행을 장기간 다니면서 편하게 글을 쓰는 아주 팔자 늘어진 작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루키는 단지 시대적 감성을 잘 건드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케이스가 결코 아님을 이 책은 충분하게 증명하고도 남는다.
주변에서 하루키의 광팬이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사람들에게 말 할 정도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당신이 하루키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 중에서 많은 부분은 잘못 생각했거나 깊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책이 아주 재미있다고 말 하지는 못하겠다. 이 책은 앞에서도 말 했다시피 하루키의 입을 빌린 책이 아니다. 물론 곳곳에 그의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 책의 분량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오대양사건이 한번 더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렇게 수고를 해 줄, 그것도 아주 유명한 작가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아주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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