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다 보고 난 이후에서야 비로서 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의 팬이라면 당연히 그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느라 작가가 쓴 시기대로 읽혀지겠지만 나는 은희경을 잘 몰랐으므로 그냥 닥치는대로 읽었다.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새의 선물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마지막 춤은 나와함께를 새의 선물 다음에 읽게 된 것 정도.

그녀의 글솜씨는 놀랍다. 비록 여류작가를 폄하하는 내 친구가 일기장같은 책들을 언제까지나 발표할 꺼냐고. 조금이라도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함을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사실 박경리씨나 박완서씨등 여류문학의 대가라 불리우는 사람들도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혐의점을 부인하기 힘드리라) 그래도 그녀의 일기던, 책이던 암튼 그것은 놀랍다. 알맞은 정도의 읽기 템포를 유지시켜주는 문장과 간혹 불거져 나오는 시니컬하고도 블랙코메디같은 유머들은 빛나는 발상의 승리이다.

아주 조숙해서 세상을 한 4~50년 산 여편네의 정서(?)를 가진 12살난 여자아이가 바라본 세상을 그린 '새의 선물'은 일종의 성장기 소설이다. 그렇지만 여자아이는 이미 소설이 시작할때 부터 다 자라있다. 오히려 성장하는 것은 그녀 주변의 어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철딱서니 없으나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이모이다.

내 친구의 믿을만한 정보에 의하면 이 소설은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졌었다고 한다.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홍어'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좋아하는 작품을 망치지 않고 잘 살려준 특집극 '홍어'팀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친구가 기억하는 유일한 등장 인물은 이모인데. 극중 이모분을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중인 윤손하가 맡았었다고 한다. 나는 그러니까 책을 읽기전에 윤손하를 이모로 생각하고 나머지 인물들도 내 멋대로 기존에 있는 배우들을 대입시켜서 읽기 시작했다. 시각적 정보를 하나 제공받은 셈이었고 거기다 내 상상력까지 더했으니 당연히 책읽기는 평면속의 글자가 내 뇌리에 박혀 사고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드라마를 보는것 처럼 내 머리속에 삼차원의 영상으로 떠올랐다.

책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워낙 실감나게 묘사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적당한 배우를 찾아 끼워맞추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예를들어 세들어 살던 이쁜 언니는 강수지(이렇게 되면 배우에 국한된 캐스팅이 아니군...) 철딱서니 없는 이모 윤손하의 친구는 이혜영. 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새의 선물에서는 심오한 메세지를 기대하지는 않아야 하지만 읽기의 재미를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작가란 모름지기 발로 뛰며 써야한다는 치들도 있지만 그런사람은 그런대로 또 은희경처럼 자신의 경험과 여러가지 상상력들을 뒤범벅시켜 작품을 내놓는 사람들은 또 그런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더구나 이렇게 재미있다면) 것이 내 생각이다.

모든 예술이 다 어렵고 심오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대중을 상대로 한다면 재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요소중의 하나이다. 대중을 싸구려로 보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재미가 없다면 영화도 연극도 책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환영받는 이른바 잘난 컬트가 될 뿐이다.(물론 컬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저 고명한 럭키호러 픽처쇼나 이블데드에 미쳐있던 나날들은 내가 생각해도 낮뜨거우니까...) 오타쿠만이 문화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은희경의 책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몹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적어도 그 재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별 무한대를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조금 투터운 책이지만 속도감이 있어서 몹시 빨리 읽히며 그 다음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도 셋트로 사서 읽는것이 좋을것이다. 나처럼 한밤중에 새를 다 읽고 마지막 춤은을 주문해 놓고는 안절부절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플라시보의 스무자 평 : 재밌다. 무조건 아주 많이 재밌다.
*함께하면 좋을 음식 : 김치전 (읽는 내내 먹고팠는데 한으로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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