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이충걸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는 언제나 자식과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나보다. 나는 나와 우리 엄마만 별종이여서 그런 줄 알았는데 커 가면서 알았다. 다른 집 엄마와 자식들도 심심찮게 싸운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우리의 모든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는 단지 엄마가 되고 난 이후의 엄마이지 엄마가 되기 전의. 한 사람의 여자이자 귀한집 딸네미로써의 엄마는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종종 착각한다. 엄마는 태어 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났다고.

이충걸.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것은 페이퍼였다. 그러나 페이퍼가 어떤 잡지이던가! 너무나 화려한 필진들에 가려서 사실 그의 이름은 그다지 각인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의 이름을 다시 GQ에서 발견했고. 나는 페이퍼의 이충걸은 잊어버렸다. 왜냐면 온갖 럭셔리한 것들이 판을 치는 잡지 GQ와 언더그라운드 삶의 대표주자격인 페이퍼 사이엔 너무나 공백이 컸고. 솔찍히 나에게는 GQ가 더 고운 떡이었다.

GQ에 있는 이충걸의 글은 깔끔하다. 미사어구를 많이 동원하지도 않고 아는척도 아주 조금만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이충걸은 무언가 불안한것 같은 문체를 보여준다. 아마도 엄마에 관해 쓰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 누구라서 냉정해지고 멋지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엄마를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건 불가능 할 것이다. 엄마라는 말을 입밖에만 내어도 우리는 막 응석을 부리고 싶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달라고.. 나 지금 힘들고 아프니까 무한한 사랑으로 위로해 달라고.

이충걸이 엄마에 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와 지금 현재 엄마와 단 둘이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아버지를 미워했고 그 만큼 엄마를 자신의 마음에 많이 담았다. 그런가보다 부모중 어느 한쪽의 사랑이 부족하면 아이는 나머지 한 부모의 사랑이라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나보다.

며칠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필요한거 없냐고. 그건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말 해보라는 소리가 아니라 당신이 만들 수 있는 밑반찬이나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군입거리임을 나는 안다. 그러나 못된 자식인 나는 거절한다.요즘은 집에서 밥 해먹을 시간도 없다고...그런 의미에서 이충걸은 효자이다. 비록 자기는 케빈 클라인 수트를 카드로 북 긁고 그의 엄마되는 분은 백화점에 납품할 옷의 단추를 달아 한개 20원을 받는다고 해도 말이다.

적어도 그는 아직 엄마와 함게 살며 당신이 구워주시는 꽁치를 맛나게 먹어준다. 다소 흔들리는 그의 문체와 불안정한 어휘 사용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읽을만한 책이다. *플라시보의 스무자 평: 엄마처럼 할 수 있는 자식은 없다. *함께하면 좋을 음식 : 엄마가 만들어주는건 아무거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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