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로커 베이비스 2
무라카미류 지음 / 삼문 / 1994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무라카미 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읽은 그의 책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였는데 그걸 읽을 당시에 봤던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앞구정동으로 가야한다.]라는 영화와 함께 오버랩되어서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구토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그러나 이후에 읽은 그의 책들은 대충 읽어 줄 만했고 어떤 이들은 하루키보다 류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나는 J.D셀린저의 계보를 잇는 하루키쪽에 점수를 더 주고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다.)

이 책은 내가 류의 책 가운데 최고로 꼽는 책이다. 물론 그의 책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것 중에서는 가장 수작이다. 이 책에 얽힌 이야기로는 이걸 읽은 하루키가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썼다고 한다. (세계의 끝을 읽어 본 결과 이 책 못지 않게 좋다. 그러나 전혀 닮은 구석은 없다.)

여기에는 코인로커에 갇힌 두 젊은이가 등장한다. 기쿠와 하시(난 이 이름을 미친 듯이 좋아해서 한때 내 열대어 두 마리를 기쿠와 하시라 부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코인로커에 갇혔다가 고아원에서 다시 양부모를 만난 두 젊은이의 삶을 그린 것으로 내가 좋아하는 외상후증후군 즉 트라우마가 모토이다.

트라우마란 어떤 외적, 물리적 충격이 오랫동안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인이 알던 모르던 그것은 자아에 깊이 각인되어 그 사람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자면 나는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서 지금껏 운전대를 멀리하고 있다.(실은 음주로 면허가 취소되기도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떤 종류의 트라우마던 몇 개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설사 그 충격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내면에서 받았던 충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므로 난 아무렇지도 않아 따위는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 주인공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채 형성되기도 전인 유아기에 코인로커에 버려져서 죽을 뻔 한다. 그들의 그 죽을 뻔한 기억은 비록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성 저 깊은 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트라우마는 자신의 의지로 어떻게 해결하거나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끝...에서 등장하는 그림자는 어떻게 보면 코인로커에서의 트라우마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칼 융을 좋아하거나 프로이드의 이드 자아 뭐 이런걸 할랑하게 좋아했던 이라면 그걸 소재로 쓴 소설이므로 틀림없이 재미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가지긴 했는데 전문서적을 읽을 용기는 없어서 그냥 관심만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다소 책이 두껍기는 하지만 재미 면에 있어서 상급에 속하므로 읽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특히 뒤로 가면 갈수록 류의 엽기적인 면이 여실히 드러나서 소설은 더욱 흥미진진해 진다.

*플라시보의 스무자 평 :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운자 그 누구인가! 이 책을 읽고 나의 트라우마 목록을 작성해 보자.
*읽으며 함께 하면 좋은 음식 : 자신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괴로울 수도 있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혀 줄 수 있는 딸기향 홍차나 자스민차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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