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 스타일 - 시크한 여자들의 스타일링 & 쇼핑 노하우
이선배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한참 캐리 브레드쇼에게 미쳐 있을때, 나는 비교적 비싸게 주고 산 곱창 밴드를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극중에서 작가와 사귀게 된 캐리가 그의 책에서 뉴욕 출신의 여자가 곱창 밴드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데. 결론은 뉴욕 출신의 여자들은 절대 곱창 밴드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정하지 않는 남자에게 캐리는 함께 간 식당에서 곱창밴드를 한 여자에게 뉴욕 출신이냐고 묻고, 관광차 뉴욕에 온 그 여자는 남편에게 '여보 나 보고 뉴욕 출신이냐고 물어요' 라며 기뻐한다. 뉴욕 출신이라는 것은 그만큼 세련되었다는 것을 뜻하므로. 한참 열광해서 보고 있는 드라마에서 최악의 아이템으로 지적한 곱창밴드. 긴 생머리로 올림머리를 할때나 일명 X머리를 할때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했던가 따위는 한 순간에 박살이 났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곱창 밴드를 화장대 서랍 깁숙한 곳에 쑤셔박아뒀었다. (과감하게 버리기에는, 곱창밴드라는 것만 빼면 너무 예뻤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그 곱창 밴드를 아무 생각없이 하기 시작했다. 바나나 핀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곱창 밴드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꼴사납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셔너블하지도 시크하지도 않은 나는 같은 연애칼럼니스트지만 캐리처럼 패션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솔직히 그녀에게서 가장 궁금한것은 대체 어디다가 원고를 기고하길래 집구석에 마놀라 블라닉과 디자이너 브랜드 옷들, 그리고 잇백이 넘쳐 흐르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캐리의 통장 잔고는 놀라 나자빠질 정도로 빈약하지만, 그리하야 아파트를 사는데 결혼에 실패한 친구의 티파니 다이아몬드 반지가 필요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런걸 다 사대면서 카드값 돌려막기나 카드깡을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는건 신기하다. 이게 뉴욕과 서울의 차이인건가?  아니면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인걸까?

패션에 대해 예리한 심미안을 가진것도, 그렇다고 패션은 내 삶의 이유. 이지도 않으면서 이런 패션 관련 책들을 보는 이유는 딱 한가지 이다. 나 역시 더 예뻐지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진 여자이기 떄문이다. 아무리 엉망인 행색을 하고 있는 여자라 하더라도 스스로 못나 보이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자는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그게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건 아니면 옷차림도 전략이라는 일 때문이건, 그도저도 아니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건. 우리는 날마다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없다고 한숨을 쉬고 어디선가 50%를 넘어 70% 세일을 한다면 마그네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카드를 긁어대게 된다. 좀 더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미용실에서 엉덩이에 욕창이 날 만큼 앉아있고, 피부과에서 아파 기절할 것 같은 레이저 시술을 참아내며, 심지어 몸에 영양 공급을 중단하기도 한다. 허나 이런것에 비해 패션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게 우리를 아름답게 해 준다. 단지 다음달 카드값에 기절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은 2007년에 나왔고, 지금은 대망의 2009년이다. 3년이나 지난 패션은 이제 한물 간 유행이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저자 역시 글을 쓰는 그 동안에도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했으며 자신이 잇백이라고 써 놓은 것이 지금은 '한때 유행했던 백' 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패션의 주기가 얼마나 빠른지 안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것이 패션 혹은 유행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만한 이유는 잇백이나 핫 아이템만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패션에 대한 고전. 그리고 유행을 타지 않는 베이직 아이템들이 나열되어 있다. 각종 패션 잡지에 글은 기고할 망정. 날아오는 패션 잡지들을 탐독하며 패션 감각의 끝을 날카롭게 다듬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뭐야? 한물 간 얘기들만 하고 있잖아?' 하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책에서 주장하는 잇백이나 모스트 해브 아이템 같은것들 중에는 대부분 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수두룩했다.) 

나도 기고했던 잡지의 기자 출신인 저자는 패션 잡지 기자답게 온 대한민국을 휩쓴 유행은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제 3의 백이나 패션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대단히 발빠른 패셔니스트가 아니라면 3년이 지난 책이라 무용지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앞서서도 말했듯 이 책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패션들을,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아울렛에서 괜찮은 아이템을 고를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 해 준다. 하나 마음에 드는것은 흔히 여자들에게 패션이나 사랑이나 일이나 암튼 뭐나 가르쳐주겠다는 책들 처럼 '너 어쩔래?' 하고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과 함께 읽었던 택도아닌 여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충고서를 미련없이 집어던졌다.) 곱창밴드나 바나나핀을 한다고 촌년 취급을 하지 않으며, 패션에 수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넌 여자도 아니야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책의 목적은 분명하다.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스타일에 변화를 주거나 남들에게 세련되게 보이고 싶다면 지갑을 열어라. 다만 일~이 년 쓰고 마는 아이템에 지갑을 열지 말고 십년이 지나도 이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아이템에 집중 투자를 하라 이다. 그렇게되면 매 시즌마다 새 옷을 사댈 필요도, 옷장에 옷 뿐이건만 입을 옷은 하나도 없는 괴이한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린제이 로한이나 올슨 자매. 혹은 저 유명한 쇼핑 광에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많은 페리스 힐튼이 아니라면 귀담아 들을 만 하다. 책은 오히려 자신만의 견고한 스타일을 가진 지젤 번천이나 시에나 밀러처럼 패션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것을, 그리고 오직 자신에게만 드러나는 분위기를 내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잇백이건 핫 아이템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으면 그런걸 들고 걸쳤다고 해서 절대 패션 아이콘처럼 보이지 않는다. 책에는 많은 패셔니스트 스타들이 등장하지만 결코 그들을 따라하라고 말 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는 것. 그래서 평범한 소품과 싼 물건도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굉장히 유용한 팁은 아마도 싸게 살 수 있는 쇼핑 정보일 것이다. 책은 비싸더라도 하나쯤은 장만해서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과, 그때 그때 싸게 사서 단품용으로 그칠 것들을 구분 해 두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만 휘감을 수 있는 돈이 있다면야 싸게 살 필요가 뭐가 있겠냐만. 알다시피 우린 호텔을 상속받지도 않았고 (심지어 상속 받은 그녀도 세일기간이나 아울렛을 좋아한단다.) 한도가 끝이 없다는 골드 카드를 발급받을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왕 살 거. 싸게 살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것은 없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쓸데없는 아이템에 고가의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용 빈도도 높지 않고 주변에서 '저거 뭥미?' 할 정도의 패션 소품들을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면, 그러면서 정작 어떤 옷에도 매치 가능하거나, 혹은 모든 옷의 기본이 되는 매우 베이직한 아이템은 지독스런 싸구려나 카피 제품을 산다면 그야말로 헛돈을 쓰게 되는 경우인 것이다.  

책에 나온 말 중에 백번 공감한 말이 드레스룸을 마치 연예인의 그것처럼 꾸미라는 말이었다. 비싼 돈을 들여서 드레스룸을 비까번쩍하게 만들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만큼 눈에 딱 보이는 곳에 모든 옷, 모든 소품을 배치하라는 것이다. 나만 해도 빌어먹을 깊은 서랍장 안에는 대체 무슨 옷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제일 아래 깔려있는 옷은 1년 365일중 단 하루도 내 눈에 띄지 않고, 따라서 그건 없는 옷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짐만 되는 경우이다.) 돈을 벌어서 작업실을 환장하게 아름답게 꾸미겠다는 목표 외에, 드레스 룸 제대로 만들기라는 목표가 또 하나 생성되는 순간이었다. 옷만 잘 정리해도 우리는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건데' 하며 집에 있는 비슷한 아이템을 또 사들이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 옷장 앞에서 당췌 나갈래도 걸칠 옷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나는 일단 우리네 서랍장부터 좀 없애든가 아니면 정 사겠다면 깊이가 얕아서 옷 위에 옷이 겹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짓말 같다면 지금 당장 집에있는 우물처럼 깊은 서랍장을 한번 열어보길 바란다. 아마 나처럼 거기에는 '어? 이것도 있었네?' 싶은 옷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물론 니트 같은건 옷걸이에 걸기 보다는 서랍장을 이용하는게 더 올바른 보관법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개 옆에 한개. 이런식이여야지 한개 위에 또 한개. 그 위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 이쯤 되어버리면 옷의 활용도는 최악이 될 것이다. 

이런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당장 걸어다니는 패션이 되거나 런어웨이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시크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책 한 권에서 단 몇 가지의 팁만 얻는다 하더라도 (책에 나와있는 아울렛 주소나 싸게 살 수 있는 인터넷 쇼핑 주소만 찢어서 코르크판에 붙여놔도) 본전은 뽑는 셈이다. (책 값에 대한 본전이 아닌 읽는 노력에 대한 본전이다.) 패션? 시크? 개나 물어가세요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것도 저렴하게, 혹은 돈 아깝지 않게) 있다면 이 책은 적극적으로 읽어 볼 만 하다. 더구나 저자의 글 솜씨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목욕 중에도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패션 잡지는 안보더라도 패션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은 내가 장담하건데 이 책은 상위에 랭크될 만 하다. 실용적인 면과 재미. 그리고 주장하는 바가 모두 합리적이다. 제일 뒷 장에는 내 남자친구를 위한 팁도 있는데,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의 스타일을 확 바꿔주고 싶은 여성이라면 참고할 만 하다. 

끝으로 내 주변에는 브랜드 알러지가 있어서 옷부터 소품까지 모든걸 보세만 사는 이가 있다. 그녀는 싸다는 이유로, 또 브랜드는 턱없이 비싸기만 하다는 이유로 그러는데 글쎄다. 그녀는 70%에서 최고 90%까지 저렴하게 파는 브랜드 아울렛을 가 보지 않은게 틀림없다. 그리고 알다시피 요즘에는 보세라고 해서 결코 싸지 않다. 브랜드 아울렛에서 싸게 건진 옷은 그 어떤 보세들 보다 저렴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소재나 바느질이 보세보다 월등하게 더 훌륭하다. 보세는 아무리 예뻐도 저런 면에 소흘해서 해를 넘기면 후줄근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싸다는 이유로 보세를 입었건만 다음해에는 역시 그 이유로 그 옷을 활용하지 못하고 또 다시 싼 제품을 사야 한다면? 제대로 된 브랜드를 싸게 잘 사서 오래 입는 것과 경제적인 측면만 봐도 어느쪽이 이익인지는 자명하다. 브랜드만 걸친다고 해서 브랜드에 미친 인간 취급을 하기 전에 자신이 산 보세가 진짜 싸게 잘 산건지 부터 체크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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