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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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쓴지가 한참 되었다. 물론 일주일에 한번은 직업상 마이크 앞에 앉아 내가 정한 두 권의 책에 대해 떠들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떠듬을 위한 대본을 쓰기는 하지만 정작 책에 대한 리뷰를 쓴 기억은 한참전이다. 일로써 책의 리뷰를 쓴지도 오래되었지만 알라딘에 쓴 것도 꽤나 오래된듯 하다.

이렇게 장황하게 내가 그동안 얼마나 책 리뷰를 쓰지 않았는가를 설명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꼭두새벽에 (적어도 나에게는) 잠 한숨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책 리뷰를 쓰게 하는건 그만큼 타블로의 책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너무 유명하거나 그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일 경우. 각기 장단점이 있겠지만 특히나 단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독자들은 글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인물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력의 폭은 좁아진다. 주인공이 1인칭 작가 시점이건 전지적 작가 시점이건간에 그 주인공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와 자꾸만 대입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 타블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가수이며, 이 나라에서 가수라는 것은 더 이상 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아닌 노래'도' 부르는 사람. 좋게 말해 만능 엔터테인먼트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는 한껏 노출 시켜야하는 연예인이다.

하지만 타블로는 솜씨있게 저 단점을 비껴나간다. 아니 오히려 그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한다. 단편속의 주인공들은 대게 남자인데 그 남자를 타블로라고 생각해버려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대게는 그렇게 하면 글 읽기에 방해가 되거나 앞서 말했듯 상상의 폭이 좁아지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처음 몇 페이지만 빼놓고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타블로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엉뚱함. 그리고 오랜 외국생활 덕에 약간은 어리버리해 보이는 (흔히 유학파 출신이 무지하게 똘똘하게 굴면 엄청 반감을 가지므로 타블로가 보여주는 어리버리함은 어쩌면 회의 끝에 내려진 설정인지도 모른다) 모습들을 이 책에서는 단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읽으면서 내내 이거 타블로가 쓴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착 가라앉아 있고 약간은 우울하다. (허나 팀 버튼의 우울함과는 또 다르다. 타블로의 우울함에 재기발랄은 없다.) 이 계절과 아주 꼭 맞아떨어지는 우울함 정도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앞의 몇 단편은 솔직히 말해 아주 쏙 마음에 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쥐' 라는 단편에 이르렀을때 나는 결심했다. 오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간만에 리뷰라는 것도 한번 써봐야겠군 하고 말이다. 정말이지 단편 '쥐'는 아주 썩 마음에 들었다. (쏙과 썩중 어떤것이 우위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자라 답하겠다.

책 소개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연예인이나 혹은 기타 등등의 직업군. 그러니까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들의 책을 참 많이 소개했었다.(그래야 원고에 쓸 거리가 넘쳐흐른다. 저자 소개만 해도 몇 분은 후딱 지나간다.) 물론 소개하는 입장이니 '이것도 좋아요 저것도 좋아요' 라고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진짜로 좋았던 적은 거의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지금 언뜻 생각나는건 김주하와 이적 정도?) 그리고 몇몇은 대필도 이정도면 예술이다 싶었고. 또 몇몇은 이런 후루꾸같은 대필은 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단언컨데 타블로의 이 단편 소설집은 단연 상위권이다. 엄청나게 재미있으면서 심지어 대필까지 아니라니. 전업 작가도 아닌데 더 뭘 바라랴. 올해 워낙 소설을 적게 읽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까지 읽은 소설 책 중에서는 올 한해 읽은 것 중제일 재미있었다.

타블로는 이 글을 영어로 썼다고 한다. (오...신기하기도 하여라. 영어로 말하거나 읽는게 아닌 영어로 글을 쓴다고? 그것도 소설을?) 그리고 이걸 다시 한글로 옮겼는데 덕분에 묘하게 번역서 같은 느낌이 난다. 어쩌면 그건 단지 그런 물리적 과정 때문이 아닌. 타블로의 실로 코스모폴리탄적인 성장과정 (앞에 소개글을 읽어보면 안다. 인도에 홍콩에 미국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국적불명 (이건 결코 욕이 아니다. 나는 민족성이 너무 짙거나 지역색이 강한 소설은 별로 안땡긴다.) 스런 느낌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 민족 중에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작가를 찾아냈다니 나로써는 '심봤다' 라고 할 밖에. 솔직히 타블로가 아니라면 (혹은 그렇게 코스모폴리탄적인 성장 배경이 없는) 우리나라 작가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마크니 메이니 했을때 그 말을 입에 착 붙게 쓸 수 있는사람이 누구겠는가.

나는 타블로가 지금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서 예전의 습작들을 한데 엮어 낸 것에 의의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실로 그의 필모그라피에 작가 라는 이름을 쓸 수 있도록 이 책 한권으로 끝낼것이 아닌 또 다른 소설을 쓰면 좋겠다. 물론 그러기에는 워낙에 바쁘긴 하지만. 뭐 그들의 시간 쪼개 쓰기야 내 알바 아니므로.

끝으로 이 책과 아무런 상관없는 얘기 하나. 세 살난 내 딸년은 에픽하이의 광팬이다. 태어나자 마자 에픽하이의 플라이에 맞춰 춤을 췄던 녀석은 이제 원 이라는 곡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심지어 뽀로로 주제가보다 더 사랑하는데. 애들 안키우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애들에게 뽀로로는 신이다.) 내 핸드폰에는 그녀가 에픽하이의 원에 맞춰 제법 나름의 안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춘 춤사위를 찍은 동영상이 있다. 내가 좋아하니 (사실 나도 그 두 곡을 좋아한다. 그러니 딸년이 그걸 쉴 새 없이 들었겠지만) 저도 좋아하나 싶었는데 아니다. 다른 가수들의 곡들은 안무가 신기할 경우에만 약간 좋아한다. (이를테면 내가 미쳤어 하는거 아니면 저 지겨워 미칠 노바디) 거기다 놀랍게도 타블로가 노래를 하지 않고 그냥 TV에만 나와도 '원' 하고 외친다. 안다는거지. 원 부르는 아저씨란걸 말이지. 

아무튼 '당신의 조각들' 은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이야기꾼 타블로가 들려주는 아주 재밌는 열개의 단편이 들어있는 실한 책이다. 얇다는게 좀 불만인 이유는 가격대비 두께가 이게뭐냐 하는게 아닌 순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금방 끝날 것 같은 조바심에서 오는 불만이다.  12월달에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지 않는 한. 나는 이 책을 올해 읽은 가장 재미있는 단편소설 1위로 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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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osh 2008-11-2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까말까 망설이던 차에 단박에 해결해주시네요..주저말고 지릅니다~~~ㅋㅋ
돌아오셨군요^^ 역시 녹슬지 않은 평~~반가워요!!